설 연휴, 고속도로 차량의 홍수를 비추는 헬리콥터의 카메라를 끌어올려보면 어떨까요. 인공위성의 높이에서 한반도의 연휴 나흘을 연속촬영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이동의 의식(儀式)이 한폭에 그려질 것 같습니다.
고향을 떠나서 대처로 나온 이들이 명절에 고향을 찾는 것은 수구초심입니다. 흩어져 사는 일가 친지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북녘에 두고온 고향이 아니라면 꿈에 그릴 정도로 가기 어렵거나 먼 곳도 없어져, 수구초심만으로 설명이 부족합니다. 현대의 삶에서 풀어볼 수 있습니다.
문화이론가들은 현대 자본사회라는 것이 모빌리티와 사유화로 이뤄져 있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의 삶의 조건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직업을 찾기 위해, 또는 보존하기 위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유목민 생활과 같다는 것입니다. 문화연구가 조흡씨는, 현대인은 그로 인해 뿌리가 뽑힌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만큼 존재론적 안정감이 결여돼 있다고 합니다. 귀성은 현대 자본사회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식이라는 것입니다.
평소 몇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을 10여 시간, 많게는 20여 시간 걸려 굳이 명절 때 찾는 것은 현대적인 의미로 보면 존재론적 안정감의 문제와 관련있어 보입니다.
이것은 고향을 찾는 이들의 입장이고, 고향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가, 잠시 다녀가는 고향의 참모습은 어떤가?
고향인 경남 진주- 원래는 함양- 에 가끔 가면서 갖게 되는 의문은 도대체 뭘 먹고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진주의 경우 서부경남의 중심이란 입지가 있지만 농기계 공장 등도 IMF 사태로 쓰러져 산업기반이 없습니다.
설을 앞두고 지방 중소도시인 경상도의 김천과 전라도의 정읍을 르포한 것은 고향의 현주소를 알아보자는 뜻입니다. 대도시와 농촌, 그 사이에서 주목받지 못한 채 살아왔지만 전국적으로 200여개에 이르는 중소도시. 우리 대부분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의 삶은 어떠한가.
산좋고 물좋은 곳, 답답할 때 내려가버릴까 싶은 마음의 고향이기도 한 곳. 그러나 그곳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고 떠나온 이들이 막연하게 그리는 정겨움과는 큰 거리가 있습니다.
재래시장과 대형할인점의 대비처럼 계층 세대간에 분화가 일어나고, 젊은이들은 희망이 없다며 탈출을 꿈꾼다고 합니다. 분열적 사회상입니다.
이는 김천·정읍만의 문제가 아니고, 중소도시에 사는 주민들의 탓만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고 서울에서 호령하는 일극주의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향 중소도시의 속병은 집단적인 고향방문으로 치유되지 않습니다. 균형있는 발전, 개성있는 지방시대는 불가능한 과제인가요?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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