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가 주최하는 예술행사에서 세월호 참사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를 다룬 작품을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수정을 요구하거나 전시를 못하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지역 예술가들은 이 일을 ‘대구판 블랙리스트’ 사건이라며 항의하고 있다. 대구 예술인들은 대구시의 이런 움직임에 저항하기 위해 대안예술제 ‘대구갑질박멸예술난장: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를 12월10일까지 대구 북성로 일대에서 펼치고 있다. 다른 작가의 작품 검열에 반대하며 자신의 작품 전시도 보이콧한 김태형 사진작가가 대구판 블랙리스트 사건의 전모를 전한다. 이번 사태는 놀랍게도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을 배제한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소된 뒤에 벌어졌다. _편집자
‘대구갑질박멸예술난장: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 행사장의 포토존에서 대안전시 참여작가 박경제씨가 사진을 찍고 있다. 이만수 레인메이커 대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며 청년미술프로젝트에서 검열을 받은 윤동희 작가의 작품 <망령>. 박문칠 감독
좁은 지역 미술계 안에서 블랙리스트로 낙인찍히면 작가로서 생명은 끝이 난다. 이제 작가로서 삶을 시작하는 20대 작가들에게 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벽으로 느껴진 것이 사실이었다. 반대로 화이트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권력에 치열하게 빌붙어야 하는 구조였다. 불과 몇 개월짜리 행사일지라도 전시에 목마르고 기회가 간절한 작가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특히 대구시가 주최하는 행사를 보이콧한다는 것은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한 개인의 표현 수단이자 선언이었다. ‘내용이 문제’ ‘형식이 문제’ 오락가락 해명 10월30일 전국 300여 명의 예술인과 예술단체와 함께 이번 사태에 따른 성명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주최 쪽인 대구시와 주관사인 대구미협의 사전 검열과 부적절한 대응에 대해 공개 사과를 요청했다. 또한 엑스코와 대구시청 앞에서 보이콧 작가들과, 전시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뜻을 같이하는 외부 작가들이 함께 추운 겨울 1인시위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주최 쪽은 책임 회피와 거짓말, 변명으로 일관하며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주최 쪽은 사드 관련 작품이 (작가들에게는 한 번도 공지된 적 없는)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작품을 배제한다는 대원칙’에 따라 작품 교체를 권고했을 뿐이라며 사실상 사전 검열을 시인하는 견해를 내놨다. 이와 다르게 김이삭 전시감독은 “박문칠 감독의 단편 다큐멘터리 작품은 순수예술이 아닌 상업영화라는 형식 때문에 제외된 것이지, 작품 소재와는 무관하다”는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전시 주최 쪽이 스스로 작성한 회의록에 따르면 “정치적 성향이 강한 작품 내용 검토 후 권고”라고 돼 있지, 작품 형식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역 언론을 통해 ‘대구시는 행사를 지원하고 개입하지는 않는다’는 견해를 내놨다. 그러나 최초 문제 제기자도 대구시 공무원이라는 정황이 있고, 검열이 논의된 조직위원회 회의와 이어 열린 실무진 회의 모두에 대구시 공무원이 배석했다. 대구시가 이번 사태와 무관하다고 발뺌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조차 못 느끼는 적폐 청년미술프로젝트는 끝났지만, 보이콧 작가들이 함께 모여 따로 대안 전시를 열기로 했다. 대구시와 대구미협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면, 우리끼리 진짜 ‘사회적 예술’과 ‘청년 예술’이 무엇인지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11월24일부터 대구 북성로 일대에서 20여 개 단체와 70여 명의 아티스트와 함께 항의성 대안예술제 ‘대구갑질박멸예술난장: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를 열고 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전시·공연·토론·라운드테이블·파티로 이루어진 행사에서는 검열당한 사드·세월호·국가폭력(박정희)이 다뤄지고, ‘열정페이’로 피해 본 예술가들의 음악, 박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라피티로 벌금을 맞은 작품, 대구시에 ‘갑질’당한 청년들의 목소리가 모여들어 한판 난장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까지 과정을 볼 때 검열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당사자들이 검열해놓고도 검열을 한 것인지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검열 사태가 다름 아닌 미술계를 대변한다는 미술협회에서 일어났다는 것도 지역 미술계의 단면을 보여준다. 2015년 대구예술발전소에 입주하고 2016년 대구문화재단 기획자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대구 미술계의 여러 문제를 볼 수 있었다. 2015년 대구사진비엔날레에선 국외 초빙된 전시감독 요시카와 나오야가 대구시 공무원과 조직위의 잦은 간섭으로 감독직을 사퇴할 뜻을 내비치는 등 마찰을 빚기도 했다. 최근 대구문화재단에서도 한 간부가 “대구민예총(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대구지회)은 대구에서 사라져야 할 좌파 집단이고, 블랙리스트 작가는 지원에서 배제하라”고 직원들에게 공공연히 이야기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 이 사건이 접수됐다고 한다. 이렇듯 관의 부당한 개입과 예술기관들의 공공연한 검열과 갑질이 지속됨에도 대구 미술계는 제대로 목소리를 내본 적이 없다. 그동안 지역 미술계에서 사적·공적 자리에서 진보적 발언을 아끼지 않던 인사들도 이번 검열 사건에는 침묵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음에도 이해관계에 묶여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라고 실망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대구 미술계에 오랫동안 쌓여온 적폐가 아닐까 한다. 대안 전시를 준비하는 중에 한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대뜸 화내며 “검열 당사자도 아닌데 왜 전시를 하지 않았냐”고 했다. 선배는 진심으로 걱정해서 말한 것이었다. “보이콧하면 개인적으로 얻는 게 있어서 그런 거냐? 돈은 받고서 보이콧을 하는 거냐? 네가 80년대 운동권은 아니지 않느냐? 작품 활동 외에 정기적 수익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판매되지 않는 전시를 하더라도 실속은 챙겨야 하지 않느냐?” 이러한 질문들은 전업작가라면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익숙한 내용이다. 불리한 보이콧, 오히려 자랑스럽다 불이익을 받을 것이 뻔히 예상되는 보이콧이었지만 동참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미술계의 부당함에 온몸을 부딪쳐 저항하는 의미로 전시에 참여하지 않고 최전선에서 문제 제기를 하며 자기 작품을 지켜온 선배 작가, 전업작가로서 사명감과 소신을 힘겹게 지켜내는 동료 작가, 전시회를 전시회답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전시기획자, 그리고 차가운 이성으로 작품을 평가하지만 작가와 작품 자체를 본인처럼 아끼는 독립큐레이터와 함께하고 있어 든든하다. 이번 검열 사태를 보고 겪은 청년 작가들로부터 대구의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전국에 계신 많은 시민과 미술 애호가들이 어렵게 내디딘 이들의 첫걸음을 따뜻한 애정으로 격려하고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김태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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