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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노란 불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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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30 03:51 수정 : 2017-12-0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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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미수습자들 장례까지 마쳤으니 이제 이 배지와도 그만 헤어져야 할까.

지난 1315일 동안 며칠 잊고 있다가도 갑자기 죄스러워져 소스라치면서 가슴에 꽂아 여미던 이 작은 다짐을 이제 어디에 갈무리해두어야 할까.

그러다 다시 또 잊게 되면 어찌할까.

또다시 가슴 쥐어뜯으며 후회하고 속죄할 일이 생기면 어찌할까.

그래도, 일단, 아이들아.

이 노란 불도장을 이제 옷깃에서 내리고 대신 가슴 깊은 곳에 눌러 찍어두기로 하겠다.

영원히! 라고는 차마 못하겠지만 내 죽는 날까지는 지워지지 않을 거다.


잘 가거라. 다신 이 저주받을 땅에 오지 마라.”

유해 없는 빈 무덤

고창석·박영인·남현철·권재근·권혁규,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5명의 장례와 발인이 끝난 지난 11월2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다소 감상적인 글을 올렸다. 더 이상 수색 작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유족들의 뜻에 따라 다섯 희생자들은 유해 없는 빈 유택(幽宅)으로 돌아가게 됐다. 안타깝지만 이것으로 세월호 참사 사건은 일단 매듭 하나를 짓게 됐다고 생각했다.

앞의 글을 쓴 것은 유족들이 피눈물을 삼키며 ‘빈 관’을 가슴에 묻었듯, 나 역시 이 노란 리본 배지를 장송하는 나름의 의식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었다. 유족들이 그들을 ‘놓아주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붙잡고 있는 건 예에 어긋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물론 이 글은 당연히 이제 그만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뜻은 아니었다. 슬픔 어린 추모의 시간에서 냉철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색출, 처벌의 시간으로 옮겨갈 국면이라는 뜻이 전제된 것이었다.

내 글에 공감하는 댓글도 있었지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끝날 때까지 이 노란 배지를 떼지 않겠다, 아니 못 떼겠다는 내용의 댓글이 더 많았다. 나는 아직 배지를 뗄 때가 아니라는 댓글들이 이제 배지를 떼어 갈무리하겠다는 내 생각의 경솔함와 순진성을 넌지시 책망하는 듯해 부끄러웠다.

그리고 4·19 혁명 때 “우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이 붉은 선혈로 나부끼는/ 우리들의 깃발을 내릴 수가 없다”던 박두진의 시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가 떠올라서 조금 더 부끄러워졌다.

지난 3년여 동안 나는 가끔 잊을 때도 있었지만 양복 상의를 입을 때마다 노란 배지를 달고 다니려 노력했다. 특히 공식적인 의전이나 행사가 있을 때는 더 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너무 유난스러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어떤 자리에선 슬그머니 배지를 떼어 주머니 속에 넣어두기도 했다. 마음 한쪽은 결기가 살아 고집스럽게 배지를 달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던 반면, 다른 쪽에선 너무 고지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이다.

다시 단 노란 배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 노란 배지를 달고 다니리라’, 더 나아가 ‘내 마음의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달고 다니리라’ 하는 고집스러운 결기가 많은 것이 아니라 그런 결기가 너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세상을 뒤흔든 엄청난 재난이나 참사, 국가폭력과 부정부패를 우리는 너무나 빨리 잊는다. 그리하여 그 범죄자와 책임자에게 너무나 쉽게 면죄부를 주어왔다. 그렇기에 늘 같은 사고, 같은 사건, 같은 범죄가 사라지지 않고 반복돼온 것이 아닌가.

비록 SNS에서 노란 배지를 이제 옷깃에서 떼어 깊이 갈무리하겠다고 공언한 터라 좀 계면쩍기는 하지만, 나는 다시 노란 배지를 달고 다니기로 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김명인 인하대 교수·계간 <황해문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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