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23일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례식에 나란히 참석한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삼남 이건희 회장, 차남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앞줄 오른쪽부터). 이맹희 회장과 이건희 회장은 25년 뒤 법정에서 치열한 유산 다툼을 벌였다. 한겨레
단 1주도 없이 경영권 행사 하지만 호락호락하게 당할 재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강제 기업공개에 대비해 비상장 상태에서 차명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경향신문> 보도(1974년 10월30일치)에 따르면 국세청이 주요 공개 기업 48개사의 대주주 실질지배율(차명 지분 포함)을 조사해보니 60%가 넘었다. 임직원과 친·인척은 물론 가공의 인물까지 내세워 차명으로 지분을 분산해놨다. ‘5·29 조치’에 앞선 선제적 대응인 셈이다. 삼성이 단연 발군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1975년 6월11일 상장된 삼성전자 실명 주식을 단 한 주도 보유하지 않았다. 1986년 7월1일 당시 1억3천만 주이던 삼성전자 주식은 이듬해 1월 주식 10주를 1주로 병합하는 액면병합을 거쳐 1300만 주로 줄었다가, 같은 해 9월 유상증자로 90만 주가 발행돼 총 1390만 주가 됐다. 이병철 회장은 이 가운데 단 1주도 자기 명의의 주식을 갖고 있지 않았으면서도 1987년 11월19일 타계할 때까지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행사했다. 삼성생명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삼성에 인수된 삼성생명(옛 동방생명)은 이병철 회장 타계 당시 발행주식 총수가 총 60만 주였으나, 주주 20명 가운데 이병철 회장은 없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 특검 수사 결과, 이병철 회장은 임직원 15명의 명의로 된 16만8천 주를 차명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룹의 핵심인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차명으로 보유한 탓에 이병철 회장의 ‘공식’ 상속재산은 237억2300만원에 불과했다. 매출액이 14조원(1986년 결산 기준) 넘는 그룹 총수의 재산치고는 너무 적었다. 덕분에 아들 이건희 회장이 낸 상속세도 150억1800만원에 그쳤다. 이처럼 차명주식은 이병철 회장의 두 가지 숙제(경영권 방어와 상속세)를 동시에 해결해준 만능열쇠였다. 그 효력은 아들에게도 이어졌다. 이건희 회장은 1995년 자신의 오랜 꿈이던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다가 큰 실패를 맛봤다. 재벌들의 대마불사식 경영으로 촉발된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는 집권 직후 ‘빅딜’ 정책을 추진했다. 삼성자동차도 1998년 12월 대우전자와 빅딜을 추진했으나 기업 가치평가 등의 이견으로 무산됐다. 그러자 이건희 회장은 1999년 6월 법원에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사업 실패에 따른 후폭풍은 컸다. 이 회장은 채권단과 협력업체의 손실을 보상해야 하는 처지가 되자 사재를 털기로 결심하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삼성생명 차명주식 약 400만 주(2조8천억원 상당)를 출연했다. 차명주식 덕분에 무리한 사업 추진에 따른 피해를 어느 정도 보상할 수 있었다. ‘핵폭탄급 악재’ 비자금 사건 하지만 숨겨놓은 재산이 탈이 안 날 리 없었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주가 상승으로 차명주식의 덩치가 커지자 크고 작은 사고가 터졌다. 일부 차명주주들이 차명주식을 몰래 빼돌리거나 그들의 후손이 상속재산임을 주장하는 일이 발생했다.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차명주식 보유가 원칙적으로 금지된 것을 노린 것이다. 이 회장의 차명주식에 대한 각종 소문도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2007년 말에 터진 삼성 비자금 사건은 이건희 회장 일가에 핵폭탄급 악재였다. 삼성 법무실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드러난 이 회장의 천문학적 차명주식 규모에 여론은 들끓었다. ‘삼성공화국’이라 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삼성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남겼을 뿐 아니라, 삼성의 ‘관리’에 길들여진 공권력의 신뢰도도 크게 추락했다. 당시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조준웅 특검 수사로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삼성은 이 회장 일가의 재산 관리를 전담하는 ‘관재팀’을 별도로 뒀다. 관재팀은 고위 임원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이 회장의 차명주식을 분산했다. 차명주식은 옛 삼성그룹 본관(서울 중구 태평로2가) 28층에 마련된 비밀금고에 보관했기 때문에 임원들은 자기 주식을 구경도 못했다. 다만, 매년 5월 종합소득세를 신고할 때 자기 명의로 된 주식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주식배당금에 대한 소득세는 명의자가 직접 신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주식배당금은 개인 통장으로 입금된 뒤 곧바로 관재팀이 인출해갔다. 대신 소득세는 회사에서 내줬다. 차명주식 관리에는 관재팀장을 비롯해 단 3명만 참여했다. 경영권 승계 도와준 법원 특검은 이 회장의 차명주식 규모가 4조5천억원에 이른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 돈의 출처가 어디인지 등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삼성의 조직적인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했으나, 조준웅 특검은 ‘차명주식은 이병철 회장에게 물려받은 상속재산’이라는 삼성 쪽의 해명만 받아들인 채 무혐의 처분했다. 특검 수사에 이은 법원의 재판은 오히려 이건희 회장의 숙원 사업을 말끔히 해결해줬다. 아들 이재용 부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겨줄 기반을 마련해준 것이다. 대법원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 발행 혐의로 특검이 기소한 이건희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룹 지주회사 구실을 하는 에버랜드의 경영권을 상속세나 증여세 한 푼 내지 않고 이재용 부회장에게 넘겨준 것을 법적으로 추인해준 것이다. 삼성은 특검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삼성생명 주식 324만4800주, 삼성전자 보통주 224만5500주, 우선주 1만2398주를 이건희 회장 명의로 실명 전환했다고 발표했다. 또 4조5천억원 규모의 차명재산은 사회공헌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이 회장으로선 1996년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 이후 다시는 서고 싶지 않았던 포토라인에 서는 수모를 당했지만, 삼성 차명주식을 둘러싼 법적 논란을 종식한 대가임을 고려하면 충분히 참을 만한 것이었다.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던 삼성 차명주식은 3년 뒤 형제간 재산 다툼으로 또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1986년 말 이병철 회장 타계 직전 이뤄진 형제간 재산 분배에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25년 전 재산 분배 때 차명주식은 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특검 수사 결과 드러난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을 유산 상속 비율로 다시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친형의 소송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 “건희는 늘 자기 욕심을 챙겨왔다. 한 푼도 안 주겠다는 그런 탐욕이 이 소송을 초래한 것”이라고 언론에 소송 배경을 밝힌 이맹희 전 회장을 겨냥해 이 회장은 “(이맹희씨는) 감히 날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아니오. 날 쳐다보지도 못하고, 바로 내 얼굴을 못 보던 양반이라고. 우리 집에서 완전히 퇴출당한 양반”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회장이 그동안 “기업은 이류, 관료조직은 삼류, 정치는 사류”(1995년 중국 베이징 발언), “삼성을 범죄 집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이상한 집단”(2008년 특검 소환 때 발언) 등의 ‘작심 발언’을 한 적은 있었지만 특정인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처음이었다. ‘세기의 소송’ 뒤 쓰러진 형제 ‘세기의 소송’이라 하던 삼성 형제간 상속 소송은 동생 이건희 회장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삼성 일가에는 상처뿐인 승리였다.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상상조차 못했을 소송이었다. 이맹희 전 회장은 180억원의 빚을 남긴 채 2015년 8월14일 숨을 거뒀다. 이건희 회장은 소송이 끝나고 3개월이 지난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아직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소송 과정에서 겪은 마음고생이 그의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31일 이사회를 열고 올해 4조8천억원인 주식 배당을 내년부터 9조6천억원으로 늘리는 등 향후 3년간 29조원 규모의 배당을 실시하는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했다. 천문학적 실적을 올린 만큼 적극적인 배당으로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이 글로벌 기업의 위상에 맞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삼성은 지금 또 다른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받고 있다. 4조5천억원의 차명재산에 대한 세금을 정당하게 내라는 것이다. 외국인 주주에게 화끈한 배당 잔치를 하기에 앞서 자국의 법과 규정을 제대로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을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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