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9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남성 관료들에게 에워싸인 강 장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여자 열등’ 발언은 2차에서도 이어졌다. ㄱ기자는 2차에서도 같은 발언이 나오자 “국장님, 무슨 여자들은 다 DNA에 열등하다고 써 있고 남자들은 DNA에 다 우등하다고 써 있고 그래요? 대체 계속 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ㄷ기자 역시 “국장님 요새 무슨 우생학하세요?”라고 거들었다. 이날 자리를 주선한 ㄷ기자는 일행이 헤어진 뒤 따로 ㄱ기자에게 메시지를 보내 “행여 기분 상한 거 아니냐” “내가 진땀을 흘렸다”고 안부를 확인했다. ㄱ기자는 “젊은 여기자들 앞에서 여자는 열등하잖아 이러면서 키득거리는 것은 우롱이었는데…”라고 답했다. ㄷ기자는 “A국장이 실수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도 했다. 앞뒤 맥락을 보면 이날 A국장의 ‘여자는 열등하다’는 발언은 실제로 있었다. 또 해당 발언이 그 자리에서 여성 비하 의도로 이해된 것을 동석한 두 기자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ㄴ기자 역시 감사관실에 “열등이라는 단어나 일부 관련된 발언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현명한 처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여성 비하 의도가 아니었다면, ㄱ기자가 불편함을 표현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해명했으면 될 일이지만, A국장의 해명은 여성 기자 앞이 아니라 외교부 감사담당관 앞에서 이뤄졌다. A국장은 조사에서 “과거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성적 면에서 앞서 있었고 여성이 뒤처져 있었지만, 현재는 모든 교육과정에서 여성이 월등히 우수한 상황이고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해명했다. 외교부 “여성 비하 아니다” 결론 그러나 외교부는 “여자는 열등하다 발언을 실제 한 차례 이상 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전체적인 발언 취지가 전적으로 성차별·여성 비하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박차옥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애초에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에 맞는 명확한 언어를 사용해야지, 문제제기가 이뤄진 뒤에야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부정하는 것은 여성 비하 발언이 갖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흔한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보면, 9월14일 술자리에서 A국장의 여성 비하 발언은 계속 되풀이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성 기자들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두고 충돌한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육아는 기쁨인데 여자들이 그걸 모르고 너무 피해의식에 빠져 있는 것 같아.” “(여자가) 애를 낳았으면 (여자가) 키워야지”라는 A국장의 발언을 두고도 마찬가지였다. ㄱ기자는 ‘육아는 기쁨인데, 출산·육아 후 경력이 단절되기 때문에 요즘 여성들이 출산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설명했고, ㄴ기자는 ‘여성이 출산·육아의 본능적인 기쁨을 알고 있지만, 남자들이 그 사실을 일부러 여성에게 주지시킬 필요는 없다’고 했다. “지금은 여성이 강자야”라는 발언에 ㄱ기자가 “아니 계속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라고 반발하자 A국장은 “아니 조선시대를 생각해 봐”라고 대꾸했다. 외교부는 A국장의 해명대로 “육아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맥락의 발언이었다”고 결론 냈다. “조선시대 생각해봐”라는 발언에 대한 외교부의 해석은 A국장의 ‘선의’를 과장한 탓인지 우스꽝스럽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관련 논쟁 중 과거에 비해 현재는 많이 향상되어 여성이 강자가 되고 있다는 맥락의 발언으로 ‘조선시대 여자들에 비하면 지금은 양반인데 무슨 불만이냐’는 식의 여성 비하적이고 조롱 섞인 취지의 발언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국회 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의 조주은 입법조사관은 “외교부는 중앙 부처들 가운데 여성 신임 사무관들이 많은 곳이고, 더군다나 최초의 여성 장관이 임명된 곳인데 이런 조직에서 여성 혐오 발언이 나온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으로 파면당한 교육부 공무원의 사례와 경중을 따진다면, 우리 국민의 절반인 여성을 모욕한 ‘여자는 열등하다’는 발언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환경부 1급 공무원이었던 김시평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위원장의 김명자 당시 환경부 장관을 상대로 한 성차별 발언(“내 부인과 동갑인데도 아키코상은 아직도 곱다” “환경부가 힘이 없는 부처라 그런지 개각 때마다 전문성과 상관없이 여자 장관만 보낸다”)은 2000년 7월28일 당시 동석한 기자들 다수에 의해 많은 언론에 보도됐다. 당시 기자들은 “여자가 안경을 쓰면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50% 이상 뚝 떨어지니 벗고 다니라”고 한 말도 성차별 발언의 사례로 기사에 썼다. 김시평 위원장은 당시 ‘의도’ 따위를 해명할 새도 없이 보도 직후 사표를 냈다. 기자들이 먼저 나서 A국장 두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수위가 더 높은 A국장의 여성 비하 발언에 대해선 <세계일보> 말고 다른 언론사의 보도를 찾기 어렵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며 말과 의도를 분리한 것은 A국장보다 기자들이 먼저였다. <세계일보> 단독 보도 다음날인 9월19일 <조선일보> 기사(“외교부 국장급 간부가 여성 혐오 발언했다는데…”)를 보면, ‘동석했던 다른 매체 기자 두 명의 이야기는 다소 달랐다’며 동석한 ㄴ기자(“맥락은 외교부, 그리고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이 오히려 우등하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여성 비하라고 생각지 않는다. 진상조사나 징계위에서도 증언할 예정”)와 ㄷ기자(“A국장이 ‘예전에는 여자들이 공부도 못하고 열등했는데 지금은 공부도, 일도 더 잘한다’고 했다”)의 ‘열등 발언’은 있었지만 여성 비하 ‘의도’가 아니었다는 ‘대리 해명’을 소개했다. 되레 A국장 보도를 한 ㄱ기자는 기자단 안에서 ‘왕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기자실에서는 A국장의 구명성 기사를 쓴 남성 기자가 기사와 관련해 서운함을 표시한 ㄱ기자에게 고성을 지르고 막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이 상황을 본 한 기자는 “남성 기자가 <세계일보>에 정식으로 문제제기하겠다고 하고, ㄱ기자는 선배 회사에 정정보도 청구를 하겠다고 맞섰다. 남성 기자가 ‘피해자면 고소를 하지 왜 기사를 쓰냐’는 말도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ㄱ기자의 기사가 회자되기보다는 ㄱ기자가 예전에 ‘페미니즘 운동’을 했던 ‘이상한 애’라는 얘기가 돌았다고 들었다. 외교부와 일부 기자들이 ㄱ기자에 대해 보인 태도는 일종의 여성 혐오”라고 했다. A국장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외교부가 징계에 나섰다고 주장하는 기사까지 나왔다. 10월25일 <경향신문> 기사(“외교부 ‘이상한 감사’ 놓고 술렁”)는 A국장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야당 정치인의 주장에 동원됐다. 10월30일 외교부 국정감사 마지막날 이주영 자유한국당 의원은 강경화 장관에게 <경향신문> 기사를 들어보이며 “장관의 사적인 감정이 거기에 개입돼서 결론이 이상하게 나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고 따져물었다. 여당 의원실의 한 보좌진은 “외교부 직원들이 A국장 여성 비하 발언과 관련해 일종의 Q&A 자료를 만들어 갖고다니면서 상임위 국회의원들에게 국정감사에서 관련 질의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외교부 직원들의 조직적인 ‘구명 로비’는 국감 현장에서도 실체가 드러났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12월 외교부 국정감사에 출석한 강경화 장관에게 “(A국장) 본인에게 직접 질문도 하고 싶고 그랬었는데,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해서, 이런 의사들이 전달돼 와서 본인의 명예를 소중히 생각해 여기서 직접 질문을 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파면당한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발언에 대한 보도가 나온 직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불려나와 국회의원들의 호된 질타를 받은 바 있다. <거리에 선 페미니즘>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등을 쓴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일부 정치인이나 언론 보도는 장관이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강경한 대응을 했다는 것을 문제 삼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나가라고 하는 분리 행위와 철저한 진상조사를 지시한 강경화 장관의 대응은 조사 결과와 무관하게 조직의 수장으로서 외교부 안에서 이같은 성차별 행위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천명하는 훌륭한 리더십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방부 방산 비리와 관련해 검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격노했고, 이적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성차별에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개혁의 메시지를 보낸 외교부 수장의 태도를 폄훼하는 것은 이같은 변화에 저항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겠나”고 말했다. 감사담당관이 애초 강경화 장관에게 조사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심각한 사안’이라며 중징계 가능성을 거론하자, 동석하고 있던 또 다른 외교부 고위 관료가 ‘왜 이상한 말을 듣고 처리하냐’며 감사담당관에게 욕설을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직원들과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 일을 두고 ‘항명’이라는 얘기까지 돌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외교부가 장관에게 보고한 징계 의결 요구안은 1안을 중징계로 2안을 경징계로 보고했으나, 최종 경징계 방침으로 결정됐다. 실제 A국장을 비호하는 기사에 등장하는 외교부 관계자들은 대체로 강경화 장관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문제 국장 비호 세력의 '항명'
지난 6월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옥선·이용수·이옥선 할머니(왼쪽부터). 이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강경화 후보자가 외교부 장관이 돼 우리 문제를 꼭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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