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원전'의 역설
“소련의 원전은 사모바르(러시아의 전통 주전자)만큼이나 안전하다. 크렘린 궁전 옆의 붉은 광장에 원전을 지어도 된다.”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핵마피아’들의 허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이다. 소련 핵산업의 선구자로 꼽히는 아나톨리 알렉산드로프(1903~94)가 한 말로 알려져 있다. 1954년 오브닌스크 핵발전소에서 세계 최초로 핵발전을 시작한 소련에서 32년 만인 1986년 4월26일 사상 최악으로 꼽히는 ‘체르노빌 핵사고’가 터졌다.
4부에서는 안전 신화에 가려진 불안하고 위태로운 핵발전소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안전하다는 말, 믿어도 되나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가 터진 지 20여 일이 지난 2011년 3월30일, 드론으로 촬영한 후쿠시마 제1원전의 모습이다.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이 일어난 3호기(왼쪽)의 잔해가 보인다. 오른쪽 4호기 건물도 수소폭발로 인해 크게 파괴됐다. EPA 연합뉴스
“우리 원전은 일본 원전과 특성이 달라서 안전하다” “원전의 격납건물은 항공기가 시속 800km로 부딪쳐도 균열이 가지 않는다.” 한국 핵전문가들은 소련이나 일본의 전문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안전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홍보 슬로건은 ‘우리 땅, 우리 가족, 우리 국민이기에 우리의 기준은 단 하나, 안전입니다’이다. 안전하다는 말, 믿어도 될까. 비행기가 부딪쳐도 끄떡없다는 핵발전소의 격납건물 내부 강철 내벽(라이너플레이트)에선 원인을 알 수 없는 부식 현상이 발생했다. 한빛 1·2·4호기와 한울 1호기, 고리 3호기 등에서 6mm 강철 내벽이 완전히 부식돼 아예 뚫린 곳까지 발견됐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영화 <판도라>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영화에서 격납건물이 폭발할 때까지 12시간 정도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6시간이나 3시간 만에 터진다”(<프레시안> 2017년 9월23일치)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8월 한빛 4호기에서는 길이 11cm의 망치 모양 금속 이물질이 발견됐다. 결국 정부는 가동 중인 핵발전소 24기 전체에 전방위 조사를 한다고 9월18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2015년 7월 시행된 ‘원전 비리 방지를 위한 원자력발전사업자 등의 관리·감독에 관한 법률’(원전감독법)의 첫 번째 적용 사례다. 이 법은 2013년 핵발전소 6기의 가동 중단 사태를 불렀던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 이후 마련됐다. 한국은 핵발전소의 안전한 운영을 위해 핵마피아 비리까지 법으로 규율해야 하는 나라다. 핵발전에는 체르노빌·후쿠시마 같은 고위험 핵사고만 있는 게 아니다. 핵발전소는 언제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핵마피아들의 비리는 물론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황당한 실수로 방사성폐기물이 누출되는 크고 작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IAEA는 INES를 통해 전세계 핵발전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고장 및 사고 사건을 0등급에서 7등급까지 모두 8단계로 분류한다. <한겨레21>은 한국이 국제등급평가를 실시한 1994년 이후 발생한 1등급 이상 사건 26건을 전수조사했다. 원전안전운영정보시스템(opis.kins.re.kr)에 올라온 사건 개요와 사건조사보고서와 원전사건등급평가위원회의 회의록 등을 참고했다. 지난해 9월12일 경북 경주 5.8 지진 당시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해변에 위치한 월성 1~4호기가 지진 경보 작동으로 수동 정지한 사건이 0등급 평가를 받았다. 1등급 이상 사건은 경주 지진 때보다 원전 내부에서 더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한국 고장 사건의 최고 등급은 2등급이다. 26건 가운데 3건이 2등급을 받았다. 핵발전소 약한 고리는 ‘사람’
핵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서쪽으로 40km 떨어진 후쿠시마현 니혼마쓰시에서 한 아기가 방사능 피폭 검사를 받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저선량 방사선과 백혈병의 인과관계
‘기준치 이하’는 정말 안전할까
핵발전소 안전과 관련된 대표적 신화는 ‘기준치 이하’론이다. 그동안 정부와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발전회사들은 방사선 누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기준치 이하’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해명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왔다. 그렇다면 ‘기준치 이하’의 저선량 방사선 피폭은 정말 안전한 것일까.
주영수 한림대성심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핵없는 세상을 위한 의사회)는 “최근 들어 기준치 이하 저선량 방사선이 암이나 백혈병 발생에 인과적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주 교수가 소개한 대표적인 연구 성과는 2015년 공개된 국제 연구 ‘방사선 노출을 모니터링 받는 근로자들의 전리 방사선과 백혈병 및 림프종에 의한 사망 위험에 대한 연구’이다.
이 연구를 진행한 팀은 프랑스·영국·미국의 핵발전소와 핵연구시설에서 일한 작업자 30만8297명을 27년 동안 추적 조사해 조사 대상 원전 노동자의 22%(6만6632명)가 관찰 기간이 끝나기 전에 사망했으며, 사망자의 2%(4752명)는 백혈병처럼 림프조직과 조혈조직에 악성종양이 생기는 병으로 숨졌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특히 이 연구를 통해 피폭량이 많을수록 노동자의 사망 확률이 높아지는 ‘인과관계’가 확인됐다. 그동안 이뤄진 피폭 연구가 극심한 고선량 방사선에 피폭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번 연구는 저선량 방사선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피폭된 이들이 관찰 대상이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저선량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대형 핵사고로 인해 고선량 방사선에 피폭된 이들처럼 백혈병이나 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이 연구보고서는 “장기간의 저선량 방사선 노출과 백혈병 사망률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며 갑작스럽게 고농도 방사선에 노출되는 급성 노출만을 제한하는 현행 방사선 보호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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