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조선인을 죽인 것은 민간인이 주체가 된 자경단(自警團·한국어로 의역하면 자율방범대다)인 경우가 많았다. 가게 주인이, 월급쟁이가, 일반 노인이 죽창을 들고 조선인을 찔렀다. 일본 사회는 “죽여라” “때려라” 소리 지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조선인을 죽인 것이다. 최근 ‘혐한 시위’를 보며 당시 기억을 떠올리는 자이니치 코리안이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혐한 시위는) 새로운 현상인 듯 비칠지 몰라도 내실을 보면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학살이 발생하진 않지만, 인터넷에서 자이니치 코리안을 멸시하는 소문이 유포되고 이를 근거로 배외주의가 확장되는 점에서 차별의 회로는 90년 전 간토대지진 때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 사회의 일부는 과거 기억을 봉인한 채 차별을 새로운 움직임으로 인식하며 이에 편승하거나 슬퍼할 뿐이다.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9월1일을 맞아 올해도 도쿄 변두리 지역인 스미다구 요쿠야미초 공원에서 간토대지진 때 학살된 조선인 추도식이 열렸다. 예년처럼 많은 자이니치 코리안과 일본인이 모였지만 올해는 평소와 다른 풍경을 발견했다. 아니, 그보다는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지난해까지 해마다 보내던 도지사와 지역 구청장의 ‘추도문’이 답지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전대미문의 일이다. 역대 도지사 가운데 추도문을 보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차별주의자로 자주 비판받던 이시하라 신타로(재임 기간 1999~2012)마저 도지사 시절 추도문을 빼먹는 일이 없었다. 결국 추도식은 지자체장의 메시지 없이 치러졌다. 8월25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추도문을 보내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희생자를 추도한다. 조선인 희생자만을 위해 특별한 형식으로 추도문을 보내는 일은 하지 않겠다.” 기자가 ‘조선인 학살’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자 고이케 지사는 “재해로 숨진 분, 그에 부수해 불행한 형태로 돌아가신 분 모두 위령하는 마음이 있다”고 답했다. 이 말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애초 고이케 지사의 인식이 이상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재해가 아니라 ‘학살’이다 학살된 조선인은 ‘재해의 희생자’가 아니다. 재해로부터 살아남았음에도 사람에게 ‘학살된’ 것이다. 말 그대로 숨진 원인이 다른 사람들이다. ‘함께 추도’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학살을 ‘없었던 일로 하는 것’과 같다. 일본 사회 일부에선 고이케 도지사를 ‘개혁자’ 또는 ‘새로운 유형의 정치가’라며 떠받드는 움직임이 있다. 이는 말도 안 된다. 역사적 사실로부터 눈을 돌린다는 점에서 차별과 편견을 안은 보수적 남성 정치가들과 다를 바 없다. 이런 흐름을 끊어내는 때야말로 비로소 일본인들이 ‘새로움’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야스다 일본 독립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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