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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빠의 책이 인터넷서 떳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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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9-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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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둘러앉은 저녁식탁, 아버지는 밑줄 그은 책구절을 정성껏 아들에게 읽어준다. 수험생 큰 아들은 아버지 산문집 제목을 고르느라 고심한다. 작은 아들은 인터넷에 아버지 책이야기를 올리느라 여념이 없다. 컴맹 아버지와 N세대 아들이 끙끙거리며 함께 홈페이지를 만든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현실과 동떨어진’ 가족드라마 각본이 아니다. 대전에 사는 윤승원(47·사진 오른쪽)씨 가족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얘기다. 21년을 근속한 현직 경찰관 윤씨는 올 8월 <우리동네 교장선생님>이란 산문집을 냈다. 경찰관으로 살아온 평범한 일상이나 소소한 주변 이야기를 소박하게 담았다. 이름난 작가의 책도 아니고, 유명한 출판사의 뒷받침도 없었지만 이 책은 인터넷에서만큼은 꽤 유명하다. 작은 아들 종운이(16·사진 왼쪽)가 인터넷을 통해 열심히 알린 덕분이다. 아버지는 “민망하다”며 말렸는데도 아들은 열심이었다. 아버지의 산문집은 아들에 의해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글을 쓰면 애들한테 가장 먼저 읽어 주지요. 그러면 녀석들은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말을 해줍니다. 제 글의 첫 번째 독자이자 비평가인 셈이지요. 때묻지 않은 눈으로 보니까 신선할 때가 많아요. 오히려 제가 많이 배웁니다.”

경찰관이 되어서도 ‘문학소년의 꿈’을 접지 않은 윤승원씨. 남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딱딱한 직업이지만 항상 문학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고 틈틈이 글을 썼다. 90년 드디어 등단에 성공했고 <우리동네 교장선생님>이 벌써 세 번째 책이다. 경찰관이란 직업이 으레 그렇듯 늦은 귀가와 외박이 되풀이되기 일쑤였지만 틈만 나면 아들과 대화하려고 애썼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 그저 자신이 쓴 글을 읽어주고, 이런저런 책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부자간의 대화가 이어지게 마련이었다.

부전자전일까. “지난 봄 둘째 승원이가 ‘한밭백일장’에 입선했다”며 뿌듯해하는 윤씨. 오늘도 둘러앉은 저녁식탁에서 그는 구수한 사투리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할 게다. “나 오늘 이 책 읽었어야. 니들 시간 없제? 이거 한줄 읽어줄 테니 밥 먹으면서 들어.” 어제 그랬던 것처럼 ‘부자유친’의 현실 드라마는 오늘도 이어진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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