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7월24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 여론 조작 사건 결심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검찰은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구형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두 줄기가 뿌리를 암시하다 두 번째 줄기는 <한겨레21>이 지난 4월 국정원의 민간 여론 조작 조직 ‘알파팀’을 수면 위로 끌어내면서 ‘발견’됐다. <한겨레21> 취재 결과, 국정원은 2008년 12월부터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를 리더로 하는 10명 안팎의 민간인 조직을 운영하며 다음 ‘아고라’ 등에 정부를 옹호하고 야당 등을 비판하는 글을 쓰도록 했다. 국정원은 알파팀에 게시글 하나당 2만5천~5만원의 대가를 지급했다. 조금씩 보인 고구마 줄기를 당겨 뿌리 전체를 드러낸 것은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적폐청산 TF)였다. 지난 6월 국정원 개혁위 산하에 꾸려진 적폐청산 TF는 내부 예산 사용 내역, 직원 조사 등을 통해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방대한 규모의 민간인 여론 조작 조직을 꾸린 사실을 밝혀냈다. 알파팀원으로 활동한 ㄱ씨는 이번 발표가 이뤄진 뒤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알파팀 외에 (여론 조작을 위한) 여러 팀이 있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른 팀에 비해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야기 등을 들었기 때문이다. 알파팀 내부에서 다른 팀들을 ‘베타팀들’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작업이 이뤄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때도 댓글 부대를 운영했는지에 대해선 “물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댓글 작업 경험을 통해 판단해보면, 2012년 이후에도 비슷한 활동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에서 내가 과거에 활동했던 것과 유사한 패턴이 보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적폐청산 TF는 국정원의 여론 조작 작업과 청와대를 잇는 연결고리도 찾았다. 국정원 개혁위는 최근 <세계일보>가 보도한 ‘SNS의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 문건이 “‘SNS를 국정 홍보에 활용하라’는 청와대 회의 내용을 전달받고 국정원이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는 “총선·대선 대비 여당 국회의원 등 보수권 인사의 SNS 여론 주도권 확보 매진 제안” “중장기로 페이스북 장악력 확대 및 차세대 SNS 매체 선점” 등의 내용이 담겼다. 사실상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의 선거운동 방향과 여론 주도권 획득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정원은 2011년 여당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여론 조사도 자체 예산으로 집행한 뒤 이를 분석해 청와대에 보고했다. 정당이 해야 할 일을 국정원이 대신한 셈이다. 국정원이 이명박 정부 시절 야당이던 민주당 출입 국정원 정보관의 첩보를 바탕으로 손학규·안철수·박원순·우상호 등 주요 야당 정치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전달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처럼 파편적인 각각의 사건은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진다. 국정원의 여론 조작, 여당 정책 방향 분석, 야당 정치인 사찰 의혹 등의 활동은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목표에 수렴된다. 큰 그림을 맞추기 위한 퍼즐의 한 조각을 적폐청산 TF가 채운 셈이다. 국정원 대선 여론 조작 사실을 처음 세상에 알린 전직 국정원 직원 김상욱씨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국정원 심리전단의 활동을 처음 접했을 때 후배에게 ‘이대로 두면 민주주의가 완전히 파괴된다. 선거가 의미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규모 여론 조작 활동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사건은 단순히 ‘댓글 사건’이 아니다. 국정원뿐 아니라 국군 사이버사령부와 청와대 등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민주주의를 붕괴시킨 사건이다. 지금 밝혀진 것도 빙산의 일각뿐이다. 더 많은 사실이 터져나올 것이다. 그리고 최종 책임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국정원 적폐청산의 막이 오르다 국정원 개혁위는 “적폐청산 TF는 향후 면밀한 추가 조사를 통해 국정원법상 정치 관여, 직권남용 등 위법 행위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하나둘 드러나는 국정원 활동은 위법성이 명확하기 때문에 조만간 검찰 수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석연찮은 혼외자 의혹, 윤석열(현 서울중앙지검장) 당시 국정원 사건 특별수사팀장의 직무배제와 좌천 등으로 인해 박근혜 정부 초기에 이뤄진 검찰의 첫 번째 국정원 수사는 상처투성이로 끝났다. 하지만 ‘국정원 수사 시즌2’는 다를 것이다. 수사 대상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뿐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까지 닿을 가능성이 있다. 적폐청산의 막이 올랐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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