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엔 다양한 조선인 군상이 등장한다. 이들은 제국주의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피해자였으며 때로는 잔혹한 가담자이기도 했다. 네이버 무비
제국주의 대변하는 비틀린 사료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대다수 조선인 노동자들 가운데, 느닷없이 이뤄지는 이런 설명을 이해한 이는 얼마나 됐을까. 실제 일제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의 노무계약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배경음성으로 표현되는 것은 이른바 일본제국이 남긴 공식 사료다. 이를 보면 조선인 강제동원은 노동기간, 노동조건 등을 문서화해 피고용자의 동의를 얻어 이뤄진 합리적 고용계약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양립하기 힘든 우리 기억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계약이 있다. 조선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강제동원은 느닷없이 트럭에 태워져 도착해보니 일본의 어느 탄광 지역이었으며, 작업 현장에서 열악한 식사를 제공받았고, 매일 죽도록 일하는데 임금은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고통의 연속일 뿐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일본의 군이나 관헌이 조선인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사료를 발견할 수 없다”는 주장은 제국과 식민지 제도의 비틀린 사료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조선인 강제동원은 1938년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해 이듬해 7월 시행된 국민징용령에 따라 이뤄졌다고 한다. 법과 제도를 통해 강제적이지만 ‘합법적’으로 동원한 것이고, 그 피해 보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해결됐다는 것이다. 이에 근거해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배·보상 요구를 거부했고, 일본 법원도 그 논리로 피해자의 요구를 기각해왔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이 겪은 강제동원 사실은 문서 기록과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징용령에 따른 동원은 법적 강제동원이기 때문에 원호(援護)를 통한 국가보상이 약속돼 있었다. 법에 따라 강제동원한 만큼 그로 인한 피동원자의 피해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계약 방식이다. 이에 따라 식민지 조선에서 국민징용령이 시행됐다. 그러나 제도 도입 초기에는 국가와 직접 계약을 맺는 ‘징용’이 아니라 ‘모집’이나 ‘관 알선’의 방식으로 노무자를 동원했다. 모집은 일본 기업의 채용 공고에 조선인 노무자가 응모했다는 ‘자발성’에 근거하고, ‘관 알선은 식민지 국가기구가 일본 기업에 조선인 노동자를 취업할 수 있게 알선한다는 ‘행정 지원’을 전제한다. 모집이든 관 알선이든 실제 근무 형태는 징용과 다르지 않았지만, 계약으로 발생하는 문제의 책임을 회사에 떠넘긴 것이다. 국가가 저지른 전쟁에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이 아니라, 회사가 책임지는 이익 구조를 만들었다. 이 구조에서 조선인은 때로 제국의 일원이 된다. 돈을 벌기 위해 위안부를 동원하는 업자가 되기도 하고, 영화에서 ‘노무계’로 표현되듯 조선인 노동자 관리인이 되기도 한다. 조선인 피해자들은 강제동원의 경험을 회상하며 “모집당해 탕꼬(탄광) 갔었어”라고 말한다. 모집은 기업의 요청에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나서는 행위이기 때문에 ‘모집당하다’라는 말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모집당하다’에 거절할 수 없는 강제동원 사실을 ‘모집’이란 말로 표현하는 제국의 사료에 대해 “우리는 당한 것”이라는 조선인의 저항 의지가 담겨 있다. ‘모집당하다’에 담긴 진실 ‘모집당하다’란 형용모순은 단순한 ‘기억 착오’가 아니라, 식민지 제도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낸 ‘사실 언어’다. <군함도>의 장점은 두 사료의 차이를 포착해 관객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두 사료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치열한 긴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강제동원 피해는 우리에게 미해결의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한혜인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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