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평화공원에서 7월16일 시민들이 ‘같이 행복하게’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고 헤이트 스피치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조기원 기자
문제의 글을 쓴 남학생에게 대학이 ‘주의 처분’을 내리고 정기적인 상담을 받도록 조처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남학생을 선동한 사람은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것일까. 나는 수년간 일본의 차별 문제를 뒤좇았다. 이 문제를 취재하면서 즐거웠던 경험은 한 번도 없다. 눈앞에 날아드는 것은 언제나 일본 사회의 추악한 풍경뿐이다. “자이니치 코리안을 일본에서 몰아내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을 “사회의 천덕꾸러기”라며 죽인 이가 있고, 가난한 사람에게 “사회복지에 의존하지 말라”고 공격하는 이도 존재한다. (지진이나 원전 피해 등으로) 가설 주택에 사는 사람들에게 “국가에 응석 부리지 말라”고도 한다. 이들은 꼭 ‘애국자’라 자칭하며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에게 (남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논리를 제공하는 것은 늘 권력 있는 사람이다. 정치인이, 영향력을 가진 저명인이 ‘증오’의 연료를 사회 전체에 흩뿌리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애국도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의 마음과 사회를 파괴하는 일이다. 나는 자신을 ‘애국자’라 칭한 적은 없다. 그러나 차별의 현장을 보면 결국 국가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더 이상 국가를, 내가 사는 사회를 부수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 “내가 사는 사회를 부수지 말라” 어깨를 붕붕 휘저어도 모자랄 만큼 차별이 횡행하는 일본 사회이지만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7월16일 자이니치 코리안이 많이 사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차별주의자들이 ‘외국인 배척 시위’를 했다. 이런 시위를 용납했다는 자체가 일본 사회의 오점이다. 그날 아침 이 추악한 시위에 반대하는 시민 약 1천 명이 가와사키에 모였다. 대부분은 노조나 정당에 속하지 않는 보통 시민이었다. “차별을 용납할 수 없다”는 현수막을 걸고 시위대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대를 가로막는 사람들로 인해 시위는 겨우 몇 분 동안, 거리상으로 300m를 나아간 상태에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차별주의자들을 물리친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희망의 등불을 보았다. 차별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 힘을 믿고 싶다. 그런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사회를 사랑한다. 야스다 고이치 일본 독립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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