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군중이 모여 모의와 자축을 하는 공간이라구요. 그 공간은 어떻게 작동하나요? 망해가는 세계의 모자이크를 벙커 바닥에 즐겁게 그리는 파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주 동안 세상을 주유하고 온 패널들이 퍼즐을 맞추는데, 그들이 무엇을 그리든 결과는 항상 김어준 총수의 초상화로 귀결되지요. 가령 이명박의 육성을 채집하고 편집해서 만든 노래는 한 정치 지도자에 대한 벙커의 ‘명명’일 뿐 아니라, 그의 이미지를 김어준의 이미지로 대체한 것이기도 합니다. 발터 베냐민이 말하듯이 “자신을 알리는 행위와 다른 모든 것을 부르는 행위는 하나”입니다. 망해가는 세상은 우스꽝스럽게 해체된 후, 그 조각들은 거인의 형상을 한 민속의 왕 형상(김어준의 이미지)으로 재조합됩니다. 한겨레TV의 이전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서 시작된 <나는 꼼수다>(<나꼼수>) 그리고 다시 태어난 <파파이스>에 대한 의견은요? <나꼼수>의 패널들은 축제 장터에 설치된 임시 극장의 캐릭터처럼 분배되었습니다. ‘광대’ 정봉주, ‘악당’ 주진우, ‘바보’ 김용민이죠. 그들은 각각 자신의 방식으로 우주의 이미지를 끌어모으고 모자이크를 구성했습니다. 자기가 말하는 진리의 무게에 못 이겨 균형을 잃고 마는 ‘광대’(정봉주의 깔때기), 단서를 찾아 괴도 루팡처럼 신출귀몰하는 ‘악한’(디테일), 모든 규범을 저능아의 무례함으로 천연덕스럽게 오염시키는 바보(목사 아들) 삼형제였지요. <나꼼수>는 <파파이스>로 발전하면서 자신감을 획득했습니다. 고정 배우 없이 초청된 인사 누구도 광대, 악한, 바보의 가면을 자유롭게 썼습니다. 김어준 총수의 배가된 역량, 방청객의 견고한 지지 그리고 제작진의 열정이 모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시민이 <파파이스>를 시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파파이스>는 세기말 정서에 흥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왜냐하면 민중적 그로테스크는 항상 지옥의 구름이 세계를 뒤덮을 때 왁자지껄하게 벌어지는 축제의 기호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문재인 정권이 탄생하기까지 <파파이스>는 한국 사회 구성원이라면 반드시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던 답답하고 어둠침침한 공기를 ‘메이드 인 벙커’에 걸맞은 상쾌한 공기로 정화하여 꾸준히 공급해왔습니다. 우리가 최소한의 기운을 차려서 좌절하지 않고 광장에 결집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창우 박사와 나눈 대화를 소개하다보니 그만 <파파이스> 예찬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하나의 시사프로그램을 예술·철학적 관점에서 비평한 의견이 저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현재 ‘출구’를 찾고 있는 <파파이스>의 역기능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취재한 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경주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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