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사이 모든 것이 확연히 나아졌다. ‘당신의 건강상태는 전반적으로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11명(84.6%)이 ‘좋다’ 또는 ‘보통’이라고 했다. ‘나쁘다’고 한 응답자는 2명(15.4%)뿐이다. 해당 항목에 답하지 않은 2명은 분석에서 제외했다. 2년 전인 2015년만 하더라도, 이들 13명의 응답 분포는 반대였다. 9명(69.2%)이 ‘나쁘다’고 답했고, 4명(30.8%)만 ‘좋다’ 또는 ‘보통’이라고 답했다(상단 그림1 참조).
김수경(55)씨는 복직 뒤 몸무게가 7kg 빠졌다. 그는 8년간 해고자로 살면서 공사판 막노동, 부동산 분양 영업, 보험설계사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생활은 불규칙했고, 빚에 허덕이는 마음은 늘 불안했다. “밥도 제때 먹고 규칙적 생활을 하니까 살이 저절로 빠지더라고요.” 김씨와의 전화 인터뷰는 밤 10시 넘어 이뤄졌다. 그는 요즘 아침 8시까지 경기도 평택 공장에 출근해 하루 종일 일하다가 밤 9시 넘어서야 퇴근한다. G4 렉스턴 주문이 밀려 평일 닷새 중 나흘은 잔업을 뛴다. 토요일에도 8시간씩 특근을 나간다.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즐겁다. “8년 만에 일하니까 자부심과 긍지 같은 것도 느껴져요. 휴식 시간에 보면 복직자들 표정이 대개 밝아요. 달라졌어요.”
설문조사에서 지난 일주일간 ‘모든 일이 힘들게 느껴졌다’ ‘세상에 홀로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등의 감정을 얼마나 자주 느꼈는지 물어보는 방식으로 우울증상을 측정해봤다. 우울증상이 나타난 응답자는 6명(46.1%)이었다(상단 그림2 참조). 13명 가운데 6명이면 많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2년 전 13명(무응답자 2명 제외) 가운데 우울증상이 없었던 사람은 단 1명뿐이다. 92.3%인 12명이 우울증상을 보였다. 보통 해고자들은 우울증과 대인공포증, 낮은 자존감 등 ‘실업자 증후군’을 겪는다. 응답자마다 해당 시기에 서로 다른 생애 경험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우울증에 무엇보다 효과적인 치료약이 복직이었음을 알려주는 결과다.
이는 <한겨레> 토요판이 2017년 2월 진행한 1차 복직자 18명의 설문조사 때도 비슷했다. 우울증상이 있다는 답변이 85.7%(응답자 14명 가운데 12명)에서 50%(9명)로 줄었다. 우울증 관련 11개 항목의 답변을 바탕으로 우울증상 척도(CES-D-11)를 이용한 점수를 매겼을 때도 평균 28.7점에서 평균 14.6점으로 점수가 절반 가까이 낮아졌다. 16점 이상이면 우울증이 있다고 판단한다. 이번 2차 복직자들의 우울증상 척도 평균점수는 19.1점으로 나타났다. 2015년의 32.1점보다 상당히 호전됐다.
눈에 띄게 좋아진 가족의 행복
“아빠가 오늘 이기면 공장에 돌아가서 일할 거야.” “거~짓말~.” 2014년 11월13일 아침, 대법원에서 ‘해고 무효’ 판결이 나올 거라고 굳게 믿고 집을 나섰던 아빠는 아이들 말처럼 거짓말을 한 셈이 되어버렸다. 해고자 153명이 쌍용차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대법원은 해고자 손을 들어줬던 2심 판결을 뒤집어 ‘정리해고가 정당했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 길바닥에 주저앉은 아빠는 “아이들한테 거짓말쟁이가 돼버렸다”고 기자에게 말하다 울음을 터뜨렸다. 그랬던 아빠 고동민(43)씨가 2017년 4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공장으로 복귀했다.
고씨는 “어제 퇴근했다가 오늘 출근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구사대로 나선 회사 동료들과 싸워야 했던 옥쇄파업의 기억, 더 이상 사람이 죽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지난 8년의 시간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일부러 잊으려 노력”해온 탓이다. 2009년 받은 퇴직금은 전액 차압된 상태지만, 복직 뒤 월급이 나오면서 경제적 형편은 나아졌다. 국가는 2009년 파업 때 물리적 충돌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노조 상대로 냈고, 2심에서 16억여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고씨 등 대부분의 노조 간부들은 손배·가압류 소송에 이름이 걸려 있다.
“지금 제 안에는 두 마음이 혼재돼 있어요. 하나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축하해줄 때마다 느끼는 안도감, 심리적 안정감이겠죠. 그런데 복직 두 달 만에 당장 상황이 좋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해고자들 대부분 빚이 많아 거의 파산 상태에다 이혼 등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어요. 두 번째 마음은 아직 복직하지 못한 분들을 생각할 때 느껴지는 상대적 위안인 것 같아요.”
이런 마음 때문인지 몰라도, 복직자들이 가족이나 경제 상황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눈에 띄게 호전됐다. ‘1년 전보다 가족의 행복 정도가 나빠졌다’는 응답이 2015년에는 78.6%였으나, 복직 이후엔 반대로 ‘좋아졌다’는 응답이 92.9%를 차지했다(상단 그림3 참조). 현재의 안도감은 미래 낙관으로 이어진다. ‘경제 상황이 현재와 비교해 1년 뒤 어떻게 될 것으로 생각하냐’는 질문에, 2015년에는 모든 응답자(14명)가 ‘나빠질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복직 뒤 2017년에는 1명을 제외한 13명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다(그림3-1 참조).
들어간 자와 남은 자
복직은 해고자들의 어깨를 활짝 펴게 만들었다. 해고자들에게 10개층으로 된 사다리(가장 높은 곳이 최상위층인 10, 가장 낮은 곳이 최하위층인 1)를 보여주며 사다리가 한국 사회를 나타낸다고 가정할 때 자신은 어느 위치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2015년 응답자 13명 가운데 8명(57.1%)이 최하위층인 1을 선택했다(상단 그림4 참조). 중간층에 해당하는 4 이상을 답한 이는 1명도 없었다. 복직 뒤 응답에선 사다리의 분포가 상향 조정됐다. 중간층 이상인 6이라고 답한 이도 2명(15.4%)이나 되었다.
김승섭 교수는 “복직이 해고자의 건강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자존감 등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확인시켜준 결과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건강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아직도 해고자 130명은 공장 문 바깥에 서 있다. 2009년 정리해고 대상자인가 아닌가로 ‘산 자’와 ‘죽은 자’가 갈렸듯이, 지금 쌍용차 해고자들 사이에는 다시 한번 ‘들어간 자’와 ‘남은 자’라는 슬프고도 아픈 강이 흐른다.
쌍용차는 티볼리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9년 만의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해고자들의 ‘희망고문’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지난 7월3일 열린 복직점검위원회에서 회사는 “정부의 예상치 못한 환경규제 정책 시행 등으로 인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라 추가 복직 계획을 낼 수 없다”고 밝혔다.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들을 복직시키겠다던 약속을 존중하냐’는 노조의 질문에 회사는 “합의서에 대해선 무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상태라면 연말까지 추가 복직을 기대하기 어렵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지금까지 회사에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2015년 노·노·사가 신뢰를 갖고 합의한 만큼 희망고문이 길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희망을 갖고 합의 이행을 기다려온 해고자들에겐 공장 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지금 하루하루 더 고통스럽다. 공장 앞 1인시위, 쌍용차 대주주인 마힌드라그룹이 있는 인도 원정투쟁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7월 중에 이후 대응 계획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동료들보다 먼저 공장 안에 들어간 복직자들의 마음도 편치 않다. 김수경씨는 더 열심히 자동차를 만든다고 했다. 차가 많이 팔려야 “복직 못한 130명이 더 빨리 공장에 들어올 수 있다”고 믿어서다. 하지만 공장 안에도 ‘희망고문’이 존재한다. 언제 다시 회사가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그래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노동자들 마음 구석구석 깊이 스며든 탓이다. 고동민씨는 그 마음들이 커지고 해고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질까봐 “공포감을 느낀다”고 했다.
30번째 부고가 들리지 않기를
그들은 늘 간절히 희망한다. 하루빨리 130명의 해고자가 모두 복직하기를, 그래서 30번째 부고를 듣는 비극이 오지 않기를, 고통스럽게 견뎌온 8년의 잔인한 시간이 더 이상 길어지지 않기를.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