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5일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이 농민 백남기씨의 사망 원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두 번째 이유는, 정권 교체다. 박근혜 정권을 타도한 촛불집회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서울대병원이 더 이상 기존 입장을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5월22일 발간한 ‘신정부 국정환경과 국정운영 방향 보고서’의 촛불개혁 10대 과제를 보면,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의 재수사를 지시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 보고서에서 “촛불 민심이 요구하는 개혁과제 가운데 즉시 시행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개혁과제는 정부가 선제적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대선 한 달 전인 4월13일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고인이 돌아가신 진상을 낱낱이 밝히겠다”고 말했다. 경찰 지휘부 발등에 불 떨어져 이런 시선에 대해 서울대병원의 입장은 조심스럽고 단호했다. 김연수 부원장은 “지난해 12월 중순 또는 올해 1월 이후 논의를 지속한 결과가 6개월 정도 걸린 것이지, 그 사이 정치적 상황 변화 때문에 서울대 병원 교수들이 이같은 결정에 동의했다고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김 부원장은 이어 “전공의는 피교육자 신분이지만 사망의 종류를 판단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이 있고, 법률적 책임이 작성자에게 있으므로 사망진단서를 직접 작성한 전공의에게 수정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후속 조처에도 나섰다. 6월 초 사망진단서 수정 관련 논의 기구인 ‘의사직업윤리위원회’를 만든 것이다. 병원은 위원 위촉 등 실무 절차가 끝나고 세부 지침이 마련되는 대로 위원회를 가동할 방침이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의 설명과 달리 백남기씨 사망에 대한 판단은 애초 정치적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이번 사태의 핵심 당사자인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는 백씨가 숨지기 이틀 전에 유족이 소견서를 부탁하자 “정치적 사건이니 (내가) 의견을 내는 것은 맞지 않다. 법원에서 쓰라면 쓰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제1132호 특집 ‘주치의가 정치적 이유로 소견서 발급 거부’ 참조).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은 이제 시작이다. 사인을 하나 바로잡는 데 무려 8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서울대병원이 백남기씨의 사망 원인을 외인사로 수정하면서 이와 관련한 검찰 수사도 급물살을 탈지 주목된다. 남은 과제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백남기씨 가족은 백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지 나흘 만인 2015년 11월18일 당시 강신명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7명을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했다. 백도라지씨는 “지난 3월에도 검찰에서 ‘수사 중’이라고 했을 뿐 기소 여부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수사가) 많이 진행됐다고 들었다”며 “아버지의 사인이 외인사로 재확인된 만큼 수사도 진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까지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피고발인 자격으로 조사했고, 당시 상황보고서 등 경찰 자료를 토대로 현장 살수차 운용에 당시 경찰 지휘부가 어떤 방식으로 개입했는지 등을 따져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6월16일 기자회견을 열어 유족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여전히 직사살수 물대포 사용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이 이미지를 쇄신해보겠다며 한 조처는 물대포를 ‘참수리차’라고 바꿔 부른 것뿐이다. ‘참되게 물을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참수리차로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족인 백도라지씨는 “사전에 사과와 관련한 경찰의 협의는 없었다. 사과는 유족에게 와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경찰의 사과에 부적절함을 지적했다. ‘물대포 살인’ 멈출 수 있을까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월 “개인의 신체와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사람을 향한 직사살수를 금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도 지난해 직사살수와 최루액을 물대포에 혼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백남기씨를 겨냥했던 물대포 ‘충남살수9호’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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