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안보란 국민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안 보이는 안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대화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가동된 2008년 7월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 모습. 연합뉴스
딸은 글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아빠는 NLL을 포기하지도, 양보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북한을 양보시키려 했습니다. 난 그런 아빠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님을 믿습니다.” 한때 딸을 학원에도 보내지 못하는 무능한 아빠였습니다. 그래도 부끄러운 아빠만큼은 되지 않았나봅니다. <한겨레21> 독자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의 김동엽 교수입니다. 백수를 탈출해 정식으로 ‘교수’ 직함을 받아 월급을 받은 지 이제 1년 남짓이라 여전히 어색합니다. 주로 북한 군사 문제와 국방안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지만 아직 내세울 만한 성과는 없습니다. 부족함이 많음에도 앞으로 3주에 한 번씩 여러분과 만날 기회를 가지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여느 학자들과 다른 독특한 이력이 있습니다. 1992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20년간 해군장교로 군에 복무했습니다. 2011년 중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항해과 장교로 여러 함정에서 근무했습니다. 연평해전(1999년·2002년), 대청해전(2009년) 하면 생각나는 고속정 참수리의 정장과 편대장으로 지휘관 직책도 수행했습니다. 가슴 아픈 일인 ‘천안함’과 동급의 초계함 부(함)장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함께 군생활을 한 사관학교 동기생들에 비하면 함정 경험이 적은 편입니다. 바다보다 육지에서 근무한 시간이 많아 ‘드라이 네이비’(Dry Navy·해군이 마른땅을 밟고 다닌다는 의미)라고 놀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대신 국방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고 통일부도 1년간 경험했습니다. 어쩌면 지금 총을 들었던 손에 펜과 책이 들린 것도 그 때문인지 모릅니다. 제게 북한은 운명이었나봅니다. 동해에 있는 1함대 사령부에서 근무하다 갑작스럽게 발령 난 곳이 해군대학의 북한학 교관이었습니다. 당시 제게 북한은 그저 싸워서 이겨야 할 적 이상,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아는 것이 없었지요. 모르면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범죄입니다. 결국 사비를 들여 몰래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땐 그저 후배들에게 제대로 가르쳐보자는 욕심이었습니다. 북한 한번 제대로 공부해서 가르쳐보자는 꿈은 결국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해군대학에서 강의 준비를 하다 말고 갑작스럽게 통일교육원으로 1년간 연수를 가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지요. 지금도 진행 중인 ‘통일미래지도자과정’ 1기생으로 강제(?) 차출된 것입니다. 덕분에 북한학 박사과정도 중단하지 않고 마칠 수 있었습니다. 통일교육원 연수를 마치고 국방부에 들어간 것은 2006년 제1차 북핵 실험 직후입니다. 당시까지 없었던 새롭게 만든 북핵 문제를 담당하는 자리를 꿰차는 행운을 얻은 것입니다. 제가 가진 핵 지식은 대부분 이때 공부한 것입니다. 육군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말 미친 듯이 자료를 파고 또 팠던 기억이 납니다. 총대에서 펜대로
6자회담이 사실상 기능을 멈춘 뒤 한·중·일 3개국 수석대표들이 모여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했지만 해결의 길은 멀기만 하다. 2016년 5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수석대표 회의. 한겨레 박종식 기자
*2·13 합의: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6자회담의 가장 큰 성과물이던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 사항에 대해 2007년 2월 체결한 합의. 북한이 60일 이내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을 복귀시키는 대신 북-미, 북-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개시하기로 하고 이행에 들어갔다. 2·13합의는 북핵 불능화 단계까지 진전됐지만 2009년 북한의 장거리로켓발사 및 2차 핵실험 등으로 사실상 중단됐다. 이후 북핵 시설도 원상 복구됐다.
가짜 북핵·미사일 전문가에 자칭 사드 독립운동가
사실 제 전공은 안보와 북한학입니다. 핵이나 미사일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습니다. 사관학교와 군에 있을 때 배운 무기체계공학이 전부일 뿐 독학을 한 것입니다. 일천한 공부로 북핵과 미사일 전문가를 사칭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국민을 향해 더 심한 거짓말을 하는 양치기가 있기 때문이지요. 가짜 늑대로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고 안심하며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진짜 늑대가 언제 올지를 알고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지난 1년간 북한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미사일 발사에 북한이 실패하면 국방부는 신속하게 발표하지만 성공으로 보이면 목소리가 작아집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국방부 발표보다 북한 관영 통신인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 발표를 기다리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뜻하지 않게 그 틈새를 공략한 것이 오늘의 제 인기 비결입니다.
사드 역시 배치에 찬성하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 모두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합니다. 이미 사드가 경북 성주 골프장에 들어간 시점에 국회에서 사드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제가 한 말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였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왔음에도 사드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사드가 여기까지 온 것은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사드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오늘도 저는 사드 독립운동가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16년 9월 일본 아오모리현 샤리키와 교토부 교가미사키에 있는 주일미군 엑스(X)밴드 기지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기차를 15번이나 갈아타며 겪은 모험(?)에 대해서도 천천히 얘길 풀어볼까 합니다.
안보는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1999년 6월 발생한 연평해전 모습. 해군 고속정과 북한 경비정이 충돌했다. 국방부 제공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