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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청계천, 그리고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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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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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박경리 선생이 <한겨레>와의 새해 인터뷰에서 말한 ‘생명의 청계천’이 상상됩니다. 맑은 물과 나무가 있고 그 속에 물고기가 뛰노는 청계천. 그 옆으로 센강변처럼 공연장, 미술관, 전시장이 들어서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다.

청계천은 원래 북악과 인왕 남산에서 흘러온 물들이 모여 서울의 한복판을 흐르는 곳입니다. 서울의 중심을 쓰레기통처럼 만들어놓았다며, 그는 청계천의 복원은 우리가 20세기적 물질문명의 외투를 벗어던지고 생명의 21세기로 나아감을 보여줄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고가도로의 낡은 상판 교체작업을 계기로 아예 고가도로를 뜯어내고 청계천을 복원하자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상큼한데요, 서울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고 피돌기를 원활하게 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용산입니다.

청계천 문제는 복원을 주장하는 환경단체와 서울시 사이에 견해가 팽팽히 맞서 있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을 재기가 쉽지 않습니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문제는 미군과 한국 정부가 이전하기로 합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전하기로 했는데 비용과 대체부지 마련이 만만찮다’고 몸통 같은 사족을 붙여, 도대체 되는 일인지 안 되는 일인지 헷갈리게 합니다.

협의 수준으로 보면 용산기지 이전이 청계천 복원보다 훨씬 앞서 있지만, 실현 가능성으로 보면 차라리 청계천 복원이 더 손에 잡히는 듯한, 이상한 교착입니다.

실제로 지난 90년 용산기지 이전을 합의했다가 얼마 뒤 이전 비용이 막대하다는 등의 이유로 무산됐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10년 뒤에도, 우리 아들 세대인 30년 뒤에도 “이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한다. 그런데 비용과 대체부지가…”라는 레퍼토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굳이 용산 미군부지가 청일전쟁 때 청군이 주둔하고 일제 때 일본군의 유숙지였다는 아픈 역사를 떠올리지 않아도, 지구상 어느 나라도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은 없다는 사실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하루빨리 서울시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눈여겨볼 대목은 한·미 당국 모두 주한미군의 영구주둔을 전제로 기지 이전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점입니다. 그러다보니 미국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한국은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여의치 않다는 동어반복적 떠넘기기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한국 정부의 저자세가 두드러집니다.

우리 군은 왜 철군·감군 등을 주체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통일 이후에도 미군이 필요하다며 현재의 주한미군을 상수로 놓고 일을 풀어가려 하는가? 용산부지와 민족 자존심을 되찾는 일이 과연 국가안위의 우선순위에서 뒤처지는 일인가? 미군이 필요하다고 해도, 한반도 전 지역이 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 안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군이 꼭 서울이나 서울 주변에 있을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다시 푸른 용산과 청계천을 상상해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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