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추세는 비단 한국사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몸이 일으키고 있는 전지구적 영향력은 이제 개인의 몸이 문화, 경제, 정치 등의 영역과 분리될 수 없는 문제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몸의 지위가 부상할수록, 몸과 자본이 결합될수록, 몸들간의 계층적 위계는 심화할 수밖엔 없다. 몸은 나이, 성차, 인종 등에 따른 사회적 기대가 반영되는 장이 되기 때문에 권력이 작동되는 지점이며, 또한 이에 대한 개별적인 수용과 저항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권력 차이는 여성의 몸을 ‘공적 전시물’의 위치로 전락시키고 있다. 남성들은 여전히 노련하고 경험 많은 구경꾼으로서, 여성의 몸을 평가하는 특권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여성들은 비현실적으로 이상화된 몸을 지향하며, 현실 속의 자기 몸을 학대하고, 가학적인 다양한 실험들을 한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것은 여성의 본성이고, 부족한 부분을 고쳐서 자신감을 얻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주장과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다소 여성주의적으로 위장된 선언들은 몸에 대한 폭력들을 적극적인 선택의 행위들로 포장한다. 여성이 ‘몸’으로 환원된다는 것은 여성의 억압을 영속시키는 사회적 조건을 구성하기 때문에 여성들을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전쟁터로 몰고 있다. 몸을 쉬게 하자 몸에 대해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은 여전히 취약점이 많은 ‘자연적 존재’라는 사실이며, 과도한 인위적 간섭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여성에게 ‘지방이 다 빠진’ 바짝 마른 몸을 기대하는 것은 인간 종으로서 생존의 한계를 시험해보라는 살인적인 요구이다. 실제로 지방이 빠진 몸에서 스태미나나 지구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남성들 또한 몸 만들기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에서 나온 <남성의 몸>(The Male Body)이란 책에서 남성들은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이상시하고 있는 몸을 만들어내고 실현시키기 위해 여성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자아와의 싸움을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근육 세포를 공기를 주입한 것처럼 곧추세우는 근육질 몸매나 정력의 상징으로 이미지화되는 대단한 발기 등이 사실은 중력의 법칙을 위반한 행위라는 해석은 유머스럽지만 진지한 지적이다. 남성적 매력과 건강의 상징으로 추앙되는 근육질 몸매도 사실 ‘자연성’을 위반한 몸인 셈이다. 사실 근육질 남성이 ‘장수’한다는 사례는 어디에도 보고된 바가 없다. 자연적 몸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몸을 변형시키기 이전에 자연적 몸이 요구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각자 과도한 몸과의 전쟁을 끝내고 자기 몸과 휴전을 선언하자. 몸을 좀 그만 다치고 쉬게 하자. 김현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문화인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