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몸’과의 화해

394
등록 : 2002-01-22 00:00 수정 :

크게 작게

요즘 신문들에는 다이어트 등 ‘몸’과 관련된 상품과 결혼알선회사들의 전면 광고들로 가득하다. 각종 다이어트와 비만치료의 효과는 구체적인 유명 연예인들의 성공사례들을 통해 증명되고, 이렇게 다이어트를 해서 ‘몸’이 만들어지면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을 준다. 새해가 되면 나도 늘 이번 해는 몸을 잘 돌보고 가꾸겠다는 결심을 한다. 다이어트, 운동, 섭생을 통해 나이와 노동 중독에서 오는 몸의 ‘이그러짐’을 단번에 교정해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즐기는 운동이 없는 나에게 지속적인 시간과 자원의 투자를 요구하는 현대식 몸 만들기는 가능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주위에서 갑자기 혈색이 좋아지거나 몰라보게 젊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과 같은 흥분과 모험담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나는 게으르고, 나태하며 ‘몸’의 느낌을 모르는 사람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몸 만들기는 ‘전쟁’

몸의 지위가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몸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돈을 벌고, 더 좋은 사회적 대우를 받는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을 잘 보존하는 것이 도덕성의 지표가 되었던 시대는 가고, 의료 과학의 힘을 빌려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적극적으로 장려되는 시대가 왔다. 한국사회에서 몸을 만드는 일은 이제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우리는 몸을 가꾸고 몸의 욕구를 만족시키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언설들에 유혹당하고, 순간적인 결심에 의해 신용카드의 번호를 여기저기에 노출시킨다. 성형, 마사지, 다이어트, 보디빌딩, 각종 운동 등을 통해 몸은 사회적 요구에 맞게 주조되며 변화된다.

어떤 몸을 지니고 있는가가 문화적 취향과 사회적 지위를 반영한다는 세속적 신념들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몸에 대한 투자는 곧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투자들은 적절한 운동을 통해 자신의 신진대사를 조절하겠다는 소박한 욕구보다는 매력적인 몸이 가져다줄 부가가치를 상상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성적 매력은 종종 ‘전쟁’으로 묘사되는 몸 만들기의 주요한 동기가 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비단 한국사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몸이 일으키고 있는 전지구적 영향력은 이제 개인의 몸이 문화, 경제, 정치 등의 영역과 분리될 수 없는 문제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몸의 지위가 부상할수록, 몸과 자본이 결합될수록, 몸들간의 계층적 위계는 심화할 수밖엔 없다. 몸은 나이, 성차, 인종 등에 따른 사회적 기대가 반영되는 장이 되기 때문에 권력이 작동되는 지점이며, 또한 이에 대한 개별적인 수용과 저항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권력 차이는 여성의 몸을 ‘공적 전시물’의 위치로 전락시키고 있다. 남성들은 여전히 노련하고 경험 많은 구경꾼으로서, 여성의 몸을 평가하는 특권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여성들은 비현실적으로 이상화된 몸을 지향하며, 현실 속의 자기 몸을 학대하고, 가학적인 다양한 실험들을 한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것은 여성의 본성이고, 부족한 부분을 고쳐서 자신감을 얻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주장과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다소 여성주의적으로 위장된 선언들은 몸에 대한 폭력들을 적극적인 선택의 행위들로 포장한다. 여성이 ‘몸’으로 환원된다는 것은 여성의 억압을 영속시키는 사회적 조건을 구성하기 때문에 여성들을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전쟁터로 몰고 있다.

몸을 쉬게 하자

몸에 대해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은 여전히 취약점이 많은 ‘자연적 존재’라는 사실이며, 과도한 인위적 간섭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여성에게 ‘지방이 다 빠진’ 바짝 마른 몸을 기대하는 것은 인간 종으로서 생존의 한계를 시험해보라는 살인적인 요구이다. 실제로 지방이 빠진 몸에서 스태미나나 지구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남성들 또한 몸 만들기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에서 나온 <남성의 몸>(The Male Body)이란 책에서 남성들은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이상시하고 있는 몸을 만들어내고 실현시키기 위해 여성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자아와의 싸움을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근육 세포를 공기를 주입한 것처럼 곧추세우는 근육질 몸매나 정력의 상징으로 이미지화되는 대단한 발기 등이 사실은 중력의 법칙을 위반한 행위라는 해석은 유머스럽지만 진지한 지적이다. 남성적 매력과 건강의 상징으로 추앙되는 근육질 몸매도 사실 ‘자연성’을 위반한 몸인 셈이다. 사실 근육질 남성이 ‘장수’한다는 사례는 어디에도 보고된 바가 없다. 자연적 몸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몸을 변형시키기 이전에 자연적 몸이 요구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각자 과도한 몸과의 전쟁을 끝내고 자기 몸과 휴전을 선언하자. 몸을 좀 그만 다치고 쉬게 하자.

김현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문화인류학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