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전 죽음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 이한빛 신입 PD가 tvN 16부작 드라마 <혼술남녀> 제작진에 합류한 지 꼭 1년이 되던 날이었다.
지난 4월18일 유족과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혼술남녀> 마지막 방송 다음날인 2016년 10월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PD의 죽음에 대해 회사가 공개 사과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고용노동부는 <혼술남녀> 제작 과정에서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이 있었는지 내사에 착수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유족과 회사 사이에 세 차례 면담과 두 차례 서면 응답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tvN을 운영하는 CJ E&M은 ‘고인의 근태 불량’은 있었지만, ‘고인에 대한 모욕이나 학대’는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대책위는 밝혔다. 유족은 회사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맞섰다.
<한겨레21>은 이 PD가 죽음에 이른 과정과 가족·지인들이 기억하는 그의 삶을 추적했다. 이 PD의 어머니 김혜영(59)씨, 대책위 관계자, 유족 자체 조사에 참여한 친구 이○○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대학 친구 권준희씨, 옛 스터디모임 친구 박수정씨, 군대 선임 김○○씨, <혼술남녀> 제작에 참여한 외주업체 관계자, CJ E&M 관계자, 고용노동부 관계자와는 전화로 인터뷰했다. 군 복무 중인 남동생과 입원 중인 아버지는 사정상 인터뷰하지 못했다. 대책위의 ‘사건 조사 보고서’, , 이 PD의 글을 모아 엮은 추모자료집 ‘빛이 머문 시간’, 지인들이 이 PD에게 보낸 엽서 사본 등의 자료도 참고했다. _편집자
고 이한빛 PD의 방. 어머니 김혜영(59)씨는 장례식이 끝난 뒤 아들의 유품 몇 가지를 치워버린 걸 못내 아쉬워했다.
보이지 않게 따뜻한 사람 아들의 ‘마지막 결정’을 엄마는 이해할 수 없다. 아들은 엄마를 ‘너무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대학 1학년 2학기부터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자취하는 아들에게 엄마는 반찬을 보냈다. 집에서 밥을 잘 안 먹는 줄 몰랐다. 아들은 엄마가 온다고 하면 그대로 남아 상해버린 반찬을 다 버리고 청소를 해놨다. “엄마가 마음이 상할까봐 그랬는지 힘들어할까봐 그랬는지 다 치워놨어요. 말로는 엄마가 온다고 하면 친구들 약속도 잘 안 잡았대요.” 조조, 심야를 가리지 않고 ‘무진장’ 영화를 많이 봤던 아들은 엄마에게 “이건 너무 슬프고, 이건 너무 잔인하니까 보지 마라”고 했다. 친구들은 ‘위악적인’ 것 빼곤 모든 게 괜찮았던 친구로 이 PD를 기억했다. 위악은 그가 즐긴 장난이자, 그의 특별함과 따뜻함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장치였다. ‘세월호 팔찌’를 선물한 친구에게 ‘이런 걸 왜 주냐’고 핀잔했던 그는 세월호 2주기가 되는 날 페이스북에 썼다. “아침마다 노란 팔찌를 차고 리본 열쇠고리를 가방에 단다. 기억을 위해 행하는 작은 의식이랄까.” 친구 조○○는 엽서에서 그를 ‘보이지 않게 따뜻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2011년 서울대 법인화 반대 ‘비상총회 성사를 위한 TF팀’ 집행위원장을 맡은 이 PD는, 그 활동을 제안한 친구 이○○를 두고 평소 “쟤한테 말려서 했다, 쟤는 피해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활동이 끝난 뒤 어느 글에선 ‘오랜 동지의 제안’이었다고 썼다. 이씨는 지난 4월26일 “서로 논쟁하고 나면 그에 대해 다시 고민해서 글을 쓰곤 했어요. 내 말을 하나도 안 받아들이는 줄 알았는데, 그걸 다 듣고 다시 고민해서 쓴 글이었어요. 그는 자기가 얘기하고 싶은 주제를 깊이 파고들었고 그럴 때 가장 반짝반짝했어요”라고 말했다. 아들은 공부를 잘했다. 2008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 입학했다. 2009년 전공을 정치학으로 정했다. 그는 대학에서 기존 학생운동에 갇히지 않는 학생운동을 하고 싶었다. 2학년 말 서울대 웹진 ‘자하연 잠수함’을 만들었다. 그가 2009년 11월 창간호에 쓴 ‘ACE를 꿈꾸던 소년’이란 제목의 글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지금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여러분들에게 잉여로 분류되고 있지만 난 원래 항상 어디서든 ACE로 살아온 인생이란 말이야.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항상 우수하게 수행했고, 언제나 주목받았으며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온 사람이라고.” 이 PD는 2010년 5월 이랜드그룹 박성수 회장의 서울대 강연을 맞아, 이랜드 비정규직 집단해고 3주년맞이 ‘플래시몹’ 항의시위, 일명 ‘성수대첩’을 같이 기획했다. 행사 정식 제목은 ‘글로벌 구조조정과 불안정노동 리더십’이었다. 참가자들은 고깔모자를 쓰고 케이크를 들어 박 회장을 환영했다. 박 회장 강연은 취소됐다. “그가 좋아했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활동은 ‘성수대첩’처럼 학생들이 발랄하고 재기 넘치게 참가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친구 이○○) 검을 테면 철저히 검어라 아들은 “패션 좌파(세련된 좌파)가 되고 싶어 했지만 패션 좌파가 되지 못한 활동가”였다. “기본적으로 너무 성실한 활동가”였다.(친구 이○○) “그는 활동하면서 악역을 도맡거나 자기가 책임지는 게 모두에게 깔끔하다고 판단하면 그렇게 했다.”(친구 권준희) 한 친구는 그의 책임감을 다른 곳에서 봤다. “(언론사 입사) 스터디모임에서 팀장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다른 팀원도 도왔다. 보통 입사 스터디에선 자기한테 이득인지 손해인지를 따지는 경우가 많은데, 한빛은 객관적으로 늘 손해 보는 쪽이었고, 그걸 따져가며 하지 않았다.”(스터디모임 친구 박수정) PD가 됐을 때 친구들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역할 조율을 잘해야 PD를 잘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한빛은 일을 잘 조율하고 안 보이는 데서 결과를 잘 이끌어냈다. 스스로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친구 권준희) “스터디모임을 하면서 그는 ‘기자는 팩트를 그대로 다루는데 드라마 PD는 세계관을 담을 수 있어서 자신의 이상향을 드라마에서 구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명 PD가 되면 사회적 발언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그렇게 해서 정당 러브콜이 오면, 어려운 상황에 있는 노조나 신경 쓰라고 말할 것’이라고도 했다.”(친구 박수정) 아들은 2013년 2월 현역 공군에 입대했다. 그때부터 PD 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그는 ‘목표를 정하면 매우 확고한 친구’였다. 그의 페이스북 대문에 써놓은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의 대사 “검을 테면 철저하게 검어라. 단 한 개의 깃털도 남기지 말고”는 그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친구 권준희씨는 생각했다. 엄마는 아들에게 “넌 지금껏 너무 열심히 살았으니 군대에 가면 단순하고 멍청하게 살라”고 조언했다. 아들은 열심이었다. 온갖 스펙을 쌓고 입사 준비를 했다. 영어·중국어·경제 자격시험, 방송비평 공모전, 지상파 PD 공채 시험, 군대 독후감 대회에 응모했다. 군에서 논술·작문 온라인 스터디모임도 했다. “그가 군 복무 중인 걸 정말 몰랐다. 한 번도 ‘마감’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어서다. 책임감이 강했다.”(친구 박수정) 군대 선임 김○○도 그가 거의 매일 저녁 군대 독서실에 갔던 것으로 기억했다. “자기 말도 잘했지만 남의 말도 귀담아듣는 사람이었어요. 사령부 사병 50명 중 연락·인솔·회의주재 등을 맡아야 하는 ‘으뜸 병사’에도 자원했고, 축구를 잘하진 않았는데 골키퍼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군대 선임 김○○) “원래 신입사원은 그런 거야”
4월24일 CJ E&M 건물 앞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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