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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다시 기자와 촌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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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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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봉투에서 주식·골프·부동산으로… 윤태식과 기자·PD의 유착은 조직적 개인비리

사진/ 고개 숙인 언론인.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된 에스비에스 PD(사진)에 이어 매일경제신문 기자가 윤태식씨로부터 대가성 주식과 현금을 받은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기소됐다.(한겨레 김진수 기자)
이번에도 언론은 빠지지 않았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수지김 살해 피의자인 윤태식씨의 패스21 주식을 보유한 언론인은 25명이다. 쇠고랑을 찬 언론인은 지금까지 두명. 프로그램 방영을 막아주겠다는 사기 혐의와 대가성 기사를 많이 써줬다는 배임수재 혐의가 각각 적용됐다.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다른 언론인들은 “대가성이 아니다”라거나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후안무치한 신문·방송사들

언론개혁 공방으로 뜨거웠던 한해를 보낸 뒤 새해 벽두에 터져나온 이 사건으로 언론은 고개를 들 수 없게 됐다. 언론계는 과연 이번 일을 “폭포수에서 어쩌다 튄 물 한 방울”이라고 무시할 수 있을까.


윤태식씨의 패스21 주식을 보유한 언론인들은 한국방송, 문화방송, 에스비에스 등 방송 3사는 물론, 서울경제, 매일경제, 대한매일, 조선일보, 동아일보, 연합뉴스, 심지어 방송위원회까지 줄줄이 포진해 있다.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시세보다 헐값에 사서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 이들의 소속 언론사에서는 이렇다할 해명이나 자정 움직임이 없다. 전국언론노조,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등 3개 단체가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해당 언론인·언론사의 대책마련을 촉구했을 뿐이다. 해당 언론사에서는 이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덮으려는 인상이 짙다. 자사 PD와 기자가 구속된 서울방송과 매일경제신문은 눈에 띄게 축소보도를 했고, 구속된 이들의 소속 언론사 역시 밝히지 않았다. 기자와 부장이 연루돼 검찰조사를 받았던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검찰 수사에) 정작 중요한 ‘몸통’은 빠져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본질시비를 부각하는 역공까지 가했다.

“기자는 주식 및 증권 정보에 관해 최근에 기사를 썼거나 가까운 장래에 쓰고자 할 때 그 주식이나 증권의 상업적 거래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참여해서는 안 된다.” 신문윤리강령이 못박고 있는 ‘소유주식 및 증권의 거래 금지’ 조항이다. 또한 언론사별 윤리강령에는 취재원으로부터 금품·향응·특혜를 제공받는 것을 금지한다는 조항과 취재중에 얻은 정보를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조항이 빠짐없이 들어 있다. 자정선언이 공허한 선언으로 그치고 윤리강령이 서랍 속 강령으로 잠자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기자와 촌지는 운명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샴쌍둥이인 탓일까.

권력형 비리마다 언론인들이 개입된 모습을 본 국민들에게 “촌지를 받더라도 기사만 떳떳하게 쓰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실제 한국언론재단이 전국 기자 780명을 대상으로 한 ‘촌지수수가 기사작성에 미치는 영향’ 설문조사(2001년 10월)에서 촌지가 기사작성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응답한 경우는 신문사 7.5%, 방송사가 6.1%에 불과했다. 심지어 촌지액수에 따라 달라진다는 응답도 나왔다(신문사 4.7%, 방송사 3.0%).

91년 수서비리와 보사부 기자단 촌지수수 사건이 터져 톡톡히 망신을 산 뒤 언론계에서는 자정바람이 불기도 했다. 그 결과 ‘돈봉투’에 대한 암묵적 가이드라인도 형성됐다. 노골적으로 봉투를 요구하는 관행은 많이 사라졌고 받은 봉투를 돌려주는 것 역시 튀는 행동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자리를 새로운 ‘변종촌지’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금품수수나 향응·접대 등 전통 방식에서 호화외유, 골프접대, 주식·부동산정보 수수까지 신종 방식들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운동하시죠? 언제 한번 나가시죠.

사진/ 윤태식 게이트냐 언론 게이트냐. 1월11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 언론단체들의 언론 자정촉구 시위. 해당 언론사들은 별다른 해명이나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이정용 기자)
골프접대는 가장 속수무책으로 확산돼 왔다. 한 일간지 경제부처 출입기자는 “출입처에서 ‘운동하시죠? 언제 한번 같이 나가시죠’라는 권유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또다른 방송사 기자의 말이다. “취재원하고 운동하러 갔을 때 업자가 나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번은 스폰서였던 업자가 나중에 내 이름을 팔고다녀 골치 아팠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기자는 “모두의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한 내 몫은 내가 내겠다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중요 정보가 골프장에서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일면 타당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 돈으로 치지 않는 골프이다. 지난해 12월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지회는 ‘접대골프와 부킹청탁 자정선언문’이라는 이례적인 제목의 내부발표를 했다. “한회에 20만원에 이르는 골프접대는 거절해야 할 과도한 수준의 접대임에 분명합니다. ‘취재편의’나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는 우리의 잘못에 눈감아왔습니다. 심지어는 기자가 스폰서를 적극적으로 불러내 골프접대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자들의 부킹청탁은 ‘권력을 이용한 부당한 청탁’입니다. 언론사의 힘을 빌려 타인(회원)의 권리를 박탈하는 잘못된 행위입니다.”

기자협회 한국방송지회는 접대골프를 거절하고, 취재원이나 스폰서에게 골프접대를 요구하지 않고, 골프장에 부킹청탁을 하지 않고, 기관이나 동료 기자에게 부킹을 부탁하지 않는다는 네 가지 내부지침을 정했다. 용태영 지회장은 “막연한 윤리의식만으로는 근절될 수 없다는 생각에 설문조사를 거쳐 이러한 지침을 정했다”며 “사내 부킹청탁에 시달렸던 경기도 출입기자, 스포츠레저부 골프담당 기자들은 환영하는 눈치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국방송 기자들 안에서는 “대체 얼마나 실효가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뚜렷한 처벌기준이 없는 탓이다.

골프를 비롯한 ‘변종촌지’들은 기자들마다 심리적 가이드라인이 다른 탓에 어디까지가 ‘취재’를 위한 것이고 어디서부터는 ‘거래’인지 알 수 없다.

99년말부터 휘몰아친 벤처의 유혹

사진/ 윤태식의 패스21 주식을 보유한 언론인의 소속 언론사에서는 이 문제를 축소보도하며 검찰수사에 몸통론을 제기하는 등 낯뜨거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80년대 건설열풍 때 언론계에도 돈바람이 불었다. 당시만 해도 일반 기업보다 월급이 적었던 기자들 가운데 일부는 이 바람에 편승했다. 아파트 분양, 재건축조합 결성에 참여해 업자들의 방패막이가 되기도 했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종 인허가에 해결사 노릇을 하기도 했다. 10여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주식이다.

한 경제지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벤처투자는 99년 말부터 급속도로 기자들을 환각상태에 몰아넣었다.” 호의적인 기사 한줄 나오는 게 광고보다 더 효과가 크니 벤처회사는 기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했고, 구제금융기를 거치며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기자들은 한몫 잡아보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이 바람은 경제부처 기자들 사이에서만 분 것은 아니다. 경찰청을 출입했던 한 기자는 “한번은 경찰간부가 기자실에 들러 자기가 아는 회사가 곧 상장할 텐데 싸게 살 방법이 있다고 제안해 솔깃했던 적이 있다”고 말한다. 환각상태라고 표현된 이런 분위기는 원칙을 지키려는 기자들과 벤처관계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기도 했다. “누구누구는 단숨에 얼마를 벌었다”는 식의 ‘카더라 통신’은 다수의 줏대있는 기자들과 벤처인들을 이중삼중으로 소외시키기도 했다.

만약 자신이 쓰는 기사가 주가 등락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유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윤태식씨의 패스21 역시 이런 토양에서 자라났다.

언론계 안팎에선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상장사의 주주장부는 비공개이므로 수사대상이 아닌 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주식파트뿐만 아니라 다른 경제파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 경제지 기자는 “부동산담당 기자로 분양정보를 많이 쓴다. 부동산 기사는 업체의 홍보성 기사가 많다보니 유착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어느 재벌의 기자관리 방법

또다른 변종촌지는 취재를 빙자한 해외유람이다. 천문학적 규모인 80조원의 도산으로 한국경제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탁월한 언론 플레이어였다. 99년 꽁꽁 얼어붙었던 경기가 풀릴 기미가 보이자 대우는 앞장서 기자들을 해외로 ‘모시고’ 다녔다. 이에 질세라 현대는 금강산 관광에 또 기자들을 ‘모셨다.’ 불과 반년도 안 돼 대우는 세계 자본주의사상 최대 규모로 몰락했고, 규모는 다르지만 현대도 풍비박산이 났다. 두 재벌이 휘청거릴 때 쏟아부은 돈은 모두 공적자금 부담으로 국민들에게 되돌아왔다. 해외취재에 따라나섰던 기자들은 과연 여기에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한 언론사 간부는 “자체 해외취재를 가려면 경비가 만만치 않아 ‘얹혀 가는’ 취재를 규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제일 좋은 것은 우리 돈 내고 동행하는 것이겠지만, 편의를 제공받은 해외취재의 경우 그에 걸맞은 기사를 생산해내는 것을 나름의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언론사든 해외취재 편의제공에 대한 구체적인 선별기준이나 지침을 정하고 있지 않다.

변종촌지의 ‘지속성’과 기자들의 상대적인 ‘불감증’은 그대로 부메랑이 돼 기자들에게 날아온다. 특별한 목적을 가진 이들에게는 기자를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전직 언론인들이 모여 만든 인터넷신문 프레시안(www.pressian.com)은 최근 ‘언론신화의 이면’이라는 기획기사에서 재벌이 기자를 관리하는 구체적인 사례를 밝혔다.

프레시안의 보도에 따르면 국내 5대 재벌사의 하나인 A그룹은 홍보실 임원과 오너만 열람할 수 있는 독특한 장부를 갖고 있다. 그 장부는 출입기자별로 신용평가표 같기도 하고 성적표 같기도 한 A, B, C, D 등급을 매겨놓았다. “홍길동 AAA+, BB+, C+, D+/ 이성계 A-, BB-, C-, D-/ 이몽룡 A0, B0, CCC0, D0….”

이것을 해석하면 이렇다. 홍길동은 술을 대단히 좋아하고(AAA) 홍보실이 권하면 골프도 치러 나가나(BB) 촌지는 받지 않고(C) 청탁도 하지 않는다(D). 이성계는 술을 마시지 않고(A) 골프도 치러 나가나(BB) 촌지는 받지 않고(C) 청탁도 하지 않는다(D). 이몽룡은 술을 싫어하고(A) 골프도 치지 않으나(B) 촌지는 받고(CCC) 청탁은 하지 않는다(D). +와-, 0는 출입처에 우호적이거나 비우호적, 중립적이라는 표시이다. 부킹청탁이나 접대골프를 즐겨 하는 기자라면 당연히 BBB표시가 될 것이다. 홍보실 입장에서는 단 한 가지라도 ‘트리플’ 등급이 매겨진 사람은 공략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서로 감시자가 돼 고발하자”

사진/ 주식투자를 비롯해 골프접대, 취재를 빙자한 해외유람 등 새로운 변종촌지들이 언론계를 얼룩지게 하고 있다. 스폰서를 부르거나 부킹청탁이 기승을 부리는 골프는 언론계 내부에서도 자정 선언이 나올 정도이다.(이용호 기자)
프레시안 박태견 경제부장은 “술이든 골프든 유독 ‘밝히면’ 어떻게든 소문이 나게 돼 있다. 당사자만 자기 허물을 모를 뿐이다”며 기자들의 자기반성을 촉구했다. 박 부장은 아울러 “홍보실에서는 이런 관리문건이 무덤까지 갖고 갈 절대 비밀이라고 하지만, 이 비밀을 쥐고 있는 오너가 절체절명의 궁지에 몰렸을 때도 과연 이것이 비밀이 될까”라고 반문했다.

관행으로 묵인된 촌지수수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유혹은 개인의 결단으로 극복할 수 있다. 사회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감시해야 할 언론인에게 이 결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덕목이다. 그러나 개인의 결단과 양심을 존중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그 누구라도 무력할 수밖에 없다. 구속된 기자를 잘 아는 한 경제지 출신 기자가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의 한 구절은 울림이 크다. “내가 만약 그 시점에 그의 자리에 있었더라면. 상상만으로 아찔하다. '우리 회사 기자 인사고과는 영업과 기사가 6 대 4’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간부들, 때론 편집국 인사 때 이런 불문율이 실증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구속된 기자도 이런 분위기에 그대로 편승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건 개인비리가 아니라 언론의 조직비리가 아닌가.”

윤태식 사건은 언론이 스스로 자정능력을 벗어났음을 증명하고 있다. ‘골프 자정선언문’을 낸 기자협회 한국방송지회 소속 한 기자는 “서로가 감시자가 돼서 문제를 고발하고 낯뜨겁게 하자”는 글을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한 일간지 기자는 “접대를 유난히 밝히는 기자가 직속 선배인데 기사 규모나 중요도를 평가할 때 어디까지 믿고 따라야 할지 헷갈릴 때가 많다”고 털어놓는다. 유형을 달리해 불감증에 걸려 있는 촌지문화가 취재-데스크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드는 꼴이다. 윤태식 사건으로 돌아본 ‘기자와 촌지’ 문제는 한국 언론에게 하나의 작은 틈새일 수도 있다. 그 틈새를 메우지 않고 그대로 두다가 언론 전체가 붕괴할지 누가 알겠는가. 틈새가 균열을 만들어 거대한 빙하를 무너뜨리듯.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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