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사이 제공
“성소수자 활동을 지원하라” 길(30)
대기업을 다니다 2015년 12월에 퇴사했어요. 일하지 않는 1년 동안 중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 게이 인권단체에서 재정팀장을 맡아 일했어요. 그런데 최근 다시 취업하려니 1년 동안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 되더군요. 면접 보러 다니는데 면접관이 “쉬는 동안 뭘 했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더라고요. 제가 해온 활동을 회사에 드러내기 힘든 사회 분위기가 있으니까요. 성소수자는 자신이 열정을 쏟아 열심히 해온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소수자 활동을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상시적으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주말에 뭐 했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안 했다고 말하거나 거짓말을 꾸며 얘기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려요. 이런 상황이 취업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지속적으로 반복되죠. 대선 후보들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은 성소수자로서 하는 활동을 마음 편하게, 기업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군형법 안에 남아 있는 동성애 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를 못박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해요. 제도적 뒷받침이 우선해야 사회적 인식이 개선될 수 있으니까요. 또 정부에서 성소수자 활동을 많이 지원해줘야 해요. 그렇게 되면 일반인들의 인식도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기업도 이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성결혼을 제도화하라” 백팩(26) 동성결혼 제도를 얘기하고 싶어요. 성소수자가 모인 공동주택에서 애인과 함께 3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저희는 결혼한 것과 마찬가지로 깊은 관계고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몇 달 전 애인이 갑작스럽게 심장 수술을 받았어요. 수술을 하려면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잖아요. 저희 둘 다 본가가 서울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함께 사는 제가 보호자가 되어 서명하면 좋았을 텐데 그럴 수 없었죠. 중요한 수술에 사실상 배우자인 사람이 같이 가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이런 상황이 더욱 피부로 와닿은 것은 애인이 수술 뒤 중환자실에 들어가 있을 때였어요. 연락이 안 되니까 답답하고 심장 수술이 워낙 위험하니 무서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다 잘못되면 죽음조차 지킬 수 없으니까요. 20년 같이 산 커플도 죽음의 순간을 지켜보지 못하고 사별하는 일이 더러 있다고 들었는데 직접 겪으니 정말 무섭더라고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해요. 예를 들어 제 소유의 집에서 애인과 함께 살다가 제가 죽으면 애인한테는 그 집에 대한 권리가 전혀 없습니다. 부부는 무촌이라고 하죠. 피를 나눈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예요. 그런데 성소수자 커플은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 부부로서 법적 권리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껴요. 대선 후보들에게 꼭 하나 얘기하고 싶은 게 바로 이겁니다. 동성결혼을 제도화해달라는 거예요.
“복지를 특정 종교단체에 맡기지 말라” 김찬영(31) 친구사이 대표 2014년 서울 성북구에서 학교나 친구 관계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상담하고 지원하기 위한 공간인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를 만드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역 안에서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거든요. 이 계획은 서울시의회에서도 모범적 사업으로 호평받아 예산이 편성됐어요. 그런데 성북구의 대형 교회 목사들이 모여 이 센터를 만들지 못하도록 김영배 성북구청장을 압박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결국 구청장은 주민들의 요청에 의한 사업인 이 계획을 ‘예산 불용’ 방식으로 무산시켰습니다. 당시 저는 성북구 주민이어서 구청장을 만나 항의했지만, 구청장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해해달라”고만 했어요. 제가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당시 그 일을 겪으면서 제 존엄도 훼손당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시기를 거쳐온 사람으로서 성소수자 청소년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고통을 겪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의 복지시설 가운데 많은 수가 특정 종교단체를 통해 운영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 발생하면 종교단체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복지시설에서 다 빠지겠다며 지자체를 압박하곤 해요. 국가가 담당해야 할 복지 시스템을 특정 종교에 맡겨두니 우리 같은 소수자가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죠. 복지 예산을 국가가 좀더 신경 써서 편성해야 해요. 복지 관련 업무는 국가나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대선 후보들에게 요구하고 싶습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