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경남 밀양 송전탑 피해 주민들이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 조사 보고서 발표를 유심히 듣고 있다. 정용일 기자
한국전력, 찬반 주민 갈등 유발 ① 정보 공유 및 협의 과정에서 공공성 결여 보고서를 요약하면, 한국전력은 정보 접근의 사각지대에 있는 주민들을 협의·설득·설명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오직 ‘합의서 도장’을 받을 대상으로만 인식했다. 이 때문에 비공식적 일대일 만남으로 합의를 종용했다. 선물·접대·향응이 수단이었다. 2005년 처음 열린 주민설명회 참석 인원은 송전선로가 지나는 5개 면 인구 2만1천여 명의 0.6%인 126명뿐이었다. 이장의 역할이 큰 농촌 공동체의 특성도 악용했다. 송전탑 건설에 찬성하는 이장들이 정보를 독점하도록 했다. 나머지 주민들을 정확한 정보에서 배제했다. 마을 보상금을 이용한 주민의 갈등도 증폭시켰다. ‘합의-보상금’ 구도로 주민들을 내몰았다. “돈이 웬수다”라는 자탄이 나올 정도였다. ② 자본과 공적 권력을 동원한 일방적 합의 연구팀은 주민 구술을 통해 한국전력의 ‘대응 매뉴얼’도 분석했다. ‘주민 성분 파악 → 이장, 반대운동 대표자 포섭 → 마을 내부에 협력 주민 구성 → 협력 주민에게 권한·지위 주고 막대한 보상 → 합의·비합의 주민 구분해 보상금 차등 지급 → 자녀 등 주민 약점 파악해 압박 → 주민 내부 갈등 유발 → 분열 뒤 개별 접촉 재시도’. 한국전력은 주민 단합을 막을 핵심 수단으로 돈과 약점을 이용했다. 밀양시청 고위직 공무원들도 이 시도에 동원됐다. 송전탑 설치에 반대하는 것을 ‘마을을 분열시키는 행위’로 매도했다. 보상금과 지급 방식도 마을 단위로 달리했다. 그렇게 마을 갈등을 유발했다. 2014년 6월 행정대집행 때 정점에 이르렀던 폭력적인 공사 강행은 주민들에게 수치심과 분노감을 안겼다. 나아가 한국전력은 의도적으로 주민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발언과 행위를 자행했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③ 마을 자치 역량 훼손과 마을공동체 해체 세대 사이, 토박이 주민과 이주민 사이, 찬성과 반대 주민 사이에 갈등이 지속됐다. 마을공동체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찢어졌다. 집 앞 도로·상하수도 공사나 사소한 말다툼도 민원이나 쟁송으로 비화하기 일쑤였다. 달집 태우기, 윷놀이, 계모임 등 공동체 문화도 사라졌다. 마을에서 마주쳐도 외면하거나 아예 마을회관에 나가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연구팀 김영희 교수는 “마을 전체가 화약고 같다. 작은 불씨 하나만 던져도 화르르 타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밀양, 이대로 잊히는가 민변 환경위원회 최재홍 변호사는 정책·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공공정책 및 공공사업 갈등 조정 지원법’(가칭) 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주민 참여 보장, 갈등 해결 과정에서 사업 일시 중단, 조사권 및 조정 절차 위반자에 대한 불이익 조처를 제시했다. 밀양 마을공동체 파괴와 관련해 한국전력에 대한 전면 감사와 책임 규명도 요구했다. 법령도 아닌 한국전력 내부 사규에 근거해 ‘고무줄 보상금’을 책정해 사실상 주민들을 매수하고, 피해 주민들의 굴복을 강요하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문제점이 심각하기 때문이라는 게 최 변호사의 설명이다. 지난 3월2일 밀양을 비롯해 당진·횡성·군산·청도 지역의 송전탑 피해 주민 2024명과 국회의원 11명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초고압 송전선로 주민 재산 및 건강 피해 실태조사’를 청원했다. 또한 2013년 졸속 제정된 ‘송·변전 시설 주변지역 지원 및 보상에 관한 법률’(송주법)의 개정도 요구했다. 주민들이 바라는 건 ‘에너지 민주화’다. 밀양 송전탑 피해 주민들이 국회에 다녀간 이튿날(3월24일) 종합일간지 어디에도 기사가 실리지 않았다. 이대로 잊히는가. ‘밀양’이 위험하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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