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죽음의 미스테리
김정남
등록 : 2017-02-20 15:50 수정 :
죽은 김정남이 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를 쫓는다는 걸까. 북한이 사주한 걸로 추정되는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살해 사건을 두고 보수 언론이 보이는 태도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김정남의 비극적 최후에 모든 보수 언론이 입을 모아 야권 대선 주자들을 성토하기 시작한 거다.
따져 보면 유아적 논리인데, 이런 식이다. ‘김정은은 이복형을 잔인하게 살해할 만큼 비이성적이고 잔학무도하다. 그러므로 미사일 발사 버튼도 충동적으로 누를 것이다. 따라서 사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야권 대선 주자들은 한반도 사드 배치에 부정적이거나 불명확한 입장이다, 입장을 밝혀라! 제발 밝혀라!’
전제부터 잘못됐다. 악마에게도 합리성은 있다. 김정은이 김정남 암살을 승인했다면 이는 천륜에 어긋나는 나쁜 짓일지 모르겠으나 무슨 계산과 판단이 작용한 게 당연하다. 언론이 추정하는 건 크게 두 줄기다.
첫째, 북-중 관계의 문제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 설정만으로도 골치 아픈 중국이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에 공개적인 반대 입장을 밝히게 된 효과라는 것이다. 중국은 김정남을 ‘유사시의 대안’ 정도로 여기고 보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 직후 일본은 ‘중국 역할론’을 제기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북한의 이번 실험은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로 한발짝 더 다가간 것이기에 미국에도 위협적이다. 중국이 김정은 체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으로 ‘김정남 카드’를 쓰기로 한다면? 김정은의 입장에선 만일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둘째, 김정남의 망명 문제이다. 김정남의 오랜 후견인은 장성택·김경희 부부였다. 김정은 체제에서 장성택은 물리적으로 제거됐고 김경희는 정치적으로 불능화됐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김정남은 김정은에게 ‘살려달라’는 편지도 보냈다고 한다. 코너에 몰린 김정남에게 ‘망명’을 제안하는 시도가 있었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이명박 정부가 2012년 김정남 망명을 추진한 것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도 장성택 처형 이후 같은 일을 시도하려 했으나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접었다고 한다. 국내 정치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게 된 국정원은 요즘 북한 사람들을 국내로 데려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지난해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한동안 종편(종합편성채널)의 단골 출연진이었다. 김정남이 망명했다면 종편들은 거의 ‘김정남TV’가 되어 김씨 일가에 대한 시시콜콜한 잡담으로 날을 지새웠을 것이다. 물론 국정원은 김정남 망명 공작이 없었다고 밝혔다.
여러 사정을 종합해보면 복잡한 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외교적 대책을 모색하는 게 우리 과제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대북정책이나 사드 배치 문제는 이런 맥락에서 다뤄질 사안이다. 특히 미국·중국과의 관계에서는 여기에 관련된 결정 하나하나가 모두 ‘카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여당과 보수 언론은 다짜고짜 신앙고백을 강요한다. 이 문제에서 성모마리아와 다름없던 박근혜 대통령이 외교와 대북관계를 어떻게 망쳤는지 보면서도 이런다면 학습 능력이 없는 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미국조차 대통령 취임 4주 만에 소련의 후예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적의 적은 우리 편’이란 식의 단순한 해법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