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사람과 이야기해보면 현재 한국에서 민족주의를 처음부터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일본에서 특히 지식인들은 내셔널리즘, 민족주의에 대한 저항감이 강하고, 또 내셔널리즘, 민족주의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심지어 그것이 때때로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한 거부감으로 직접 연결되어, 자기들은 내셔널리즘이나 민족주의를 초월하고 있다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최근 일본에서 <병으로서의 한국 내셔널리즘>이라는 작은 책이 출간되었다. 읽어보니 한국의 민족주의나 민족주의적 감정의 과잉을 재미 본위로 다룬 것으로, 자기들 즉 일본인의 내셔널리즘이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였다. 전후 일본이 아시아를 망각하고, 전쟁책임이나 전후보상을 애매하게 하였고,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재군국주의화 움직임 등을 보여온 것을 보면 일본인이야말로 내셔널리즘의 포로가 돼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지만, 정작 일본인 자신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필자가 보는 바로는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자각없는 내셔널리즘’이나 ‘천황 숨기기 내셔널리즘’에 물들어 있는 것 같다. 식민지 경험, 남북분단의 역사와 현실을 고려할 때, 한국에서는 오히려 민족주의 사상과 이념을 항상 재개념화하는 작업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민족주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데올로기란 원래 두개의 다른 의미를 부여받는다. 하나는 피지배자에게 현실의 사회관계를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한 담론을 재생산하는 허위의식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이 경우 국가나 민족, 국민, 계급이라고 말하는 것은 고정적, 관념적으로 취급되고 그것은 다수자, 강자 중심의 지배질서가 되고 만다. 또 하나는 일상생활이나 투쟁을 통해서 국가나 민족, 국민, 소수자, 젠더, 계급, 역사인식 등을 둘러싼 기존의 사회적 경계를 파괴하고, 다시 짜맞추는 문화적 아이덴티티로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이데올로기는 생성적인 것으로 항상 재개념화하는 작업을 동반하는데, 그 입지점은 소수자, 주변자, 피지배자, 피억압자쪽에 있다. 투쟁의 과정 속에서 발전 현대 한국의 과제는 민주주의를 한층 발전시키고, 남북 평화통일의 추진, 그리고 그에 관련된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여러 사람들과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하루하루의 노력, 즉 투쟁하는 과정에서만 국가나 민족, 국민, 계급은 의미있는 것이 된다. 또 그것들 상호관계가 변화하고 전화하는 것에 의해 그것들을 뛰어넘는 길이 명확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결코 ‘병’이 아니라 나날이 새롭게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많은 ‘민족’적인 과제라고 불리는 것들은 ‘민족’을 소리높여 외칠 필요없이, 또 ‘민족’의 이름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일도 없이, 단지 자기에게 부여된 나날의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즉 우리 자신이 자기 모습을 바르게 해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윤건차/ 일본 가나가와대 교수·서울대 초빙교수(사상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