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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북녘 장례식에 노모를 보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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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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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정용 기자)

노모는 아직도 모른다. 아들이 마지막 소원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사실을. 노모가 받을 충격 탓에 ‘차마’ 사망소식을 알리지 못했다. 아들의 부고는 지난 1월10일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날아들었다.“불굴의 통일애국투사이며 신념과 의지의 강자인 비전향 장기수 신인영 동지는…. 2002년 1월7일 72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하였다.”

북으로 송환된 지 1년4개월 만이다. 서른두해를 감옥에 갇힌 채 지내고 나서였다. 장기수모임 통일광장 권낙기 대표는 지난해 8월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에서 신 선생을 만났다. 권 대표는 “그때는 ‘얼굴 좋아지셨다’고 인사 드릴 정도였는데…”라며 황망해했다. 신 선생은 송환되기 전부터 골수암으로 투병생활을 해온 터였다. 권 대표는 방북 당시 들은 신 선생의 마지막 소원을 전했다.

“어머니께 ‘이 사람이 당신 며느리고, 이놈들이 당신 핏줄’이라고 인사시켜 드리는 게 신 선생의 마지막 소원이었지요. 그 한을 못 풀고 가셨으니….”

아들의 마지막 소원은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기도 했다. 꿈에도 그리던 아들을 풀려난 지 두해 만에 다시 북으로 떠나보낸 뒤, 고봉희 여사는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내가 여태껏 살아온 건 감옥에 있는 아들에게 내 손으로 따뜻한 밥 한끼 먹이기 위해서였어. 이제 며느리, 손주 보는 게 내 생명줄 이어가는 힘이야.”

마지막 소원은 마지막 한으로 남게 됐다. 그러나 ‘죽은 사람 소원 풀어주는’ 길이 없지 않다. 노모가 북의 며느리와 손자를 만날 기회는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신인영씨의 남쪽 가족들은 방북 신청을 위해 1월13일 통일원을 찾았다. 통일원 관계자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면서도 “북의 초청장이 있으면 방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북한 당국의 초청장이 꼭 필요한 상태. 하지만 가족들은 “북한 당국에 알릴 길이 막막하다”고 안타까워한다.


“며느리, 손자, 손녀를 만난 자리에서 말씀드리는 게 그래도 충격을 줄이는 방법 아니겠습니까? 어머니는 어제도 ‘언제쯤이면 북에 가볼 수 있냐?’고 물으셨는데….”

분단은 반세기 동안 어머니와 아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노모의 방북길을 열어주는 일. 남과 북이 손 모아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노모는 올해 아흔여섯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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