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성소수자 단체 ‘퉁즈’ 활동가 펑즈류(영어 이름 레오·왼쪽), 두쓰청을 1월9일 서울 종로구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12년을 함께한 파트너다. 정용일 기자
대만의 결혼평등(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이들이 2016년 12월10일 대규모 행진을 했다. 대만 입법원이 결혼평등 법안을 심의한다고 알려지자 반대세력이 입법원을 둘러싸고 시위를 벌였다. EPA 연합뉴스
흔히 동성결혼이라 부르는 결혼평등(Marriage Equality) 법안 발의 과정이 궁금하다. 두쓰청 원안은 민법의 ‘남녀’를 ‘배우자’(Spouse)로 바꾸고 ‘어머니, 아버지’를 ‘부모’로 바꾸는 것이었다. 성중립적 단어로 바꾸면 성소수자 권리도 자연스레 보장된다. 그렇게 하려면 300개 이상 법조항을 바꿔야 해서 하나의 특별 조항을 삽입하는 형태로 발의됐다. “동성결혼은 쌍방의 당사자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라 ‘부모1, 부모2’로 부르게 된다는 정보를 반대세력이 퍼뜨리고 있다. 대만에서도 일부 개신교의 반대가 극렬하다고 들었다. 펑즈류 한국과 비슷하다. 한국의 반동성애 세력이 퀴어 퍼레이드를 가로막고 차량 아래로 눕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대만은 그만큼 극렬하진 않다. 대만에서 개신교 인구 비율은 5% 정도다. 불교와 도교 신자들은 동성애를 혐오하지 않는다. 종교적 이유로 동성결혼을 두려워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반대가 젊은이들의 인권의식을 자극했다. 2016년 말 뮤지컬을 함께한 성소수자 행사에 20만 명이 참여했다. 우리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수였다. 한국의 지역구 의원들은 교회의 압력에 시달린다. 의원실에 전화해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라, 동성애를 조장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펑즈류 대만도 그렇다. 그들은 어디서나 시간이 많은가보다. (웃음) 반대집회에서 목사가 전화를 독려한다. 하지만 압력이 일방적이진 않다. 결혼평등법을 지지하는 이들도 “고맙다”고 전화한다. 대만에선 10년마다 대규모 인구조사가 있는데, 2014년 조사에서 50% 이상이 ‘동성결혼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특히 젊은 층의 지지율이 높다. 30대 이하에서 80%가 동성결혼을 지지했다. 직전 조사인 2004년에 비해 매우 높아진 수치다. 대만에선 2004∼2014년에 큰 변화가 있었다. 2004년 성평등 교육 법안이 도입되면서 중·고등학교에서 성평등은 물론 성소수자 인권교육이 가능해졌다. 우리는 교안을 제공하고 강의를 나가서 정확한 정보를 알렸다. 타이베이·가오슝 등 동성 파트너 등록증 발급 변화는 공짜가 아니다. 가슴 아픈 사연이 변화의 동력이 됐다. 지난해 자크 피쿠 대만 국립대 교수가 자살했다. 프랑스인인 그는 대만인 동성 파트너와 35년을 동거했다. 그렇게 오래 함께 대만에서 살았지만 파트너가 죽자 그는 단지 외국인일 뿐이었다. 혼자 남은 그는 아무런 법적 권리가 없었다. 파트너의 암 치료법에 대한 결정도 하지 못했고, 함께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야 했다. 대만인 파트너의 가족이 모든 권리를 독점했다. 그의 투신은 동성결혼의 필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동성결혼 법제화가 진행 중이지만, 타이베이·가오슝·타이중 등 주요 시정부는 이미 동성 파트너 등록증을 발급하고 있다. 여기에 등록하면, 파트너가 사고를 당하거나 아플 때 배우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2004년 성평등 교육법 제정도 공짜가 아니었다. 당시 “여자 같다”고 놀림을 받던 한 남학생이 중학교 화장실에서 숨졌다. 머리 뒤 상처 외에는 다른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잘못 미끄러져서 숨졌다면 있어야 할 흔적이 몸에 없었다. 그 학생은 반친구들의 놀림을 당한 뒤 화장실에 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운동과 함께 성소수자 단체가 성평등 교육 법제화를 주장했다. 두쓰청은 “2004∼2014년 변화의 가장 결정적 이유는 성평등 교육 시행”이라고 말했다. 보수적인 국민당의 성평등 교육 도입 반대가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당에 따라 반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동성결혼 법안에 국민당의 일부 젊은 의원들은 찬성한다고 한다. 국민당은 민진당보다 더 보수적인 정당이다.
대만의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 견줘 더 가시적이고 조직적이다. 펑즈류(왼쪽), 두쓰청은 “대만에서 동성결혼은 평등과 인권의 문제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정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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