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일상적 보수주의

392
등록 : 2002-01-08 00:00 수정 :

크게 작게

토론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어쩌다 출연자들이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보게 될 때면 착잡하다고 해야 할까, 걱정이 앞선다. 대개는 서로 반대편의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마주 보고 말하게 되는데 논쟁이 격해지면 서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자신들의 입장만을 맹목적으로 이야기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결과는 늘 평행선이어서 토론이 끝날 때쯤 되면 도대체 왜 토론을 벌였는지를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보수주의자는 토론에 강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토론이란 말 그대로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자신의 논리가 더 합당하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설득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서로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를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자리이다. 그걸 보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입장을 어느 한편에 두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논리를 들어보는 계기일 뿐이다. 따라서 토론을 통해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합리적인 의견을 수렴한다거나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바람일 뿐이다. 가끔 토론의 ‘진정한’ 의미를 착각한 출연자들이 상대방의 무지한 발언이나 비논리적인 어거지에 흥분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그 역시 차이를 확인하는 절차일 것이다. 서로 동문서답하듯 겉도는 이야기만 난무하는 경우라도 그걸 보고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아직 우리의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은 토론의 과정이 항상 비슷한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몇 차례 토론 프로그램을 보고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상하게 한쪽에서 몇 가지의 원칙과 논리만을 고수하며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데 반해 다른 한쪽에서는 온갖 말들을 인용하며 별 무관해보이는 논리까지 동원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개 전자는 진보적인 인사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며 후자는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이건 매우 재미있는 현상이다.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이지만, 토론을 보고 있자면 도저히 보수주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거나 한번쯤 이겨본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 관찰한 것이 틀리지 않았다면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보수주의란 일관된 입장을 지니고 있을지언정 일관된 논리를 펼칠 수는 없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흔히 말하듯이 경직된 진보와 유연한 보수 혹은 원칙주의와 무원칙주의의 차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적인 입장에서 토론을 벌였던 사람들이 자주 놓치고 있는 것은 보수적인 입장의 스펙트럼이 놀라울 정도로 넓다는 사실이다. 분명 이론이 없을 것 같은 당연한 주장을 펼친 진보적인 논객에게 토론이 끝나갈 때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시청자의견의 찬반 비율에서 의외로 보수적인 입장에 찬동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다양하지만 보편적인 의견들을 수렴하고 있는 보수적 논객들의 고무줄 논리를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인다.

진정한 보수주의 어쩌고 하는 말장난을 걷어내면 우리 사회에서 보수주의자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기 위해 자신의 입장을 필요에 따라 유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수구세력이나 기득권층을 보수주의자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어떤 의견과 입장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치고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 역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앞장서는 보수보다 더 무서운…

그런데 정작 스스럼없이 보수주의자임을 내세우며 사회의 전면에 나서는 사람들은 오히려 대응하기가 매우 쉽다. 그들은 어느 소설가가 극명하게 보여주기도 했지만 대개 순진할 정도로 맹목적이며 노회하지만 너무 많은 논리적 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공격하기란 사실 너무 쉬운 일이다. 이보다 몇배나 더 어려운 일은 바로 그들이 마음놓고 기대고 있는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일상에서의 보수성이다.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의 시대착오적 행태를 목청껏 비난하기는 쉬워도 착한 이웃이 조심스럽게 안주하고 있는 소시민성을 비난하기는 매우 어렵다. 보수적인 언론과 논객들의 논리를 비판하기는 쉬워도 가까운 친지나 형제들이 지니고 있는 고루함을 설득하기란 난감하다. 사회의 제도적 불합리성을 지적하기는 쉽지만 집안 대소사에서 벌어지는 구태의연함에 목소리를 내기란 무척 어렵다. 인맥과 학맥의 끈으로 유지되는 사회의 한심함을 비난하기는 쉬워도 선배님 어쩌고 하며 다가오는 후배를 물리치기는 더 어렵다.

눈에 드러나게 수구세력임을 자처하며 무식하게 앞장서는 인사들보다 일상 곳곳에서 숨죽여가며 이익을 챙기고 사소한 권력을 휘두르는 좀더 보편적인 일상적 보수주의자들을 대하기는 정말 진땀나는 일이다. 혹시라도 토론에서 이겨보고 싶은 진보적인 논객이 있다면 그보다 먼저 일상의 보수성과 한번 제대로 싸워볼 일이다.

김진송/ 목수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