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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공공의 적, 나쁜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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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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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능가하는 현실.

지난해 극장가를 강타한 조폭영화 시리즈도, 올해 개봉된 <공공의 적> <나쁜 남자>도, 적의와 악의에서 ‘윤태식 게이트’에 미치지 못합니다.

해외에서 아내를 죽이고, 국가기관의 비호로 여간첩 남편 납북기도사건의 피해자로 둔갑하고, 멀쩡하게 사기를 치며 지내오다가 벤처기업가로 변신하고, 기술을 팔아먹고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정·관계와 언론에 대대적인 로비를 벌이고….

패스21 소유주인 윤태식씨는 동시에 자신의 살인혐의에 대한 뒤늦은 추적을 막기 위해 전방위 로비를 펼칩니다. 국가기관과 언론을 대상으로 벌인 희대의 로비극은 거의 성공할 뻔했지만, 다행히 지난 87년 홍콩에서 부부싸움 끝에 아내를 죽인 살인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벤처기업가로 성공할 수 있었는가 하는 대목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 있습니다.

윤태식 게이트로 특히 낯뜨겁게 된 곳은 언론입니다. 한둘도 아니고 종합일간지, 경제지, 통신사, 방송사 줄줄이 굴비꿰듯 엮여 있습니다. 누워서 침뱉기 같지만, 언론이 도맷금으로 욕먹어도 할말이 없게 됐습니다.

패스21 주식을 소유한 20여명의 언론사 간부, 기자, 피디 가운데는 투자목적으로 주식을 매입한 경우도 있겠지만, 기사를 잘 써주고 대가로 주식을 싸게 또는 거저 받은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다가 극히 일부는 윤씨의 살인혐의를 잡고 늘어지거나 덮어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가 있습니다.


중앙언론사라고 하는 이들 신문, 방송, 통신사들은 약점을 미끼로 돈을 뜯어내는 저급한 행태를 ‘사이비 언론’이라고 비판합니다. 윤태식 게이트에 악성으로 개입된 중앙언론사는 ‘하이에나 언론’이라고 불려 마땅할 것입니다. 살인범을 비호하거나 등쳐먹은 꼴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낯뜨거운 일은, 해당 언론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자체조사 결과 대가성이나 문제가 없다”면서 “몸통(국가기관)은 놔두고 깃털(언론)만 쫓냐”고 항변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언론 관련 의혹은 익명처리하거나 아주 작게 보도합니다.

남을 비판하는 일을 하는 언론이 제잘못을 덮고 떠들어댄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지면에 제약이 없는 온라인언론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가 상세한 추적보도로 파수꾼 역할을 하는 것이 그나마 언론계의 위안입니다.

영화 <공공의 적> 개봉을 앞두고 시네마서비스가 네티즌을 대상으로 실시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떠오릅니다. 양심불량자 1위 국회의원, 2위 경제인, 3위 원조교제범에 이어 언론사주가 교육당국자와 함께 공동 4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사기범, 조직폭력배, 불량식품 제조업자 등에 앞서는 수치입니다. 윤태식 게이트에 대한 자체 조처를 엄정히 하지 않으면 언론사주의 양심불량 순위는 더 높아질 것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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