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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구제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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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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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의 공론화를 바라는 오태양씨의 입대 거부 열흘 째

사진/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전해지는 오태양씨의 일기는 항상 이 문장으로 끝난다.
“도무지 잡아가질 않네요. 허허….”

입가에 담담한 미소가 번졌다. 2001년 12월28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구 보문동의 노숙자 쉼터, ‘아침을 여는 집’ 앞. 오태양씨는 자줏빛 개량한복을 입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입대를 거부한 날부터 꼭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지난 12월19일 송파구청에서 “입대 안 했느냐”는 확인 전화가 집으로 온 뒤 아직 아무런 조치가 없는 상태다. 그를 따라 ‘아침을 여는 집’으로 들어갔다.

종교계 지지는 아직도 먼 길


“올 한해도 무사히 끝났습니다.”

10여명의 사람들이 케이크에 불을 켠 채 둘러서 있었다. ‘아침을 여는 집’의 2001년 종무식이었다. 아침을 여는 집 이윤주원 소장이 반갑게 맞이했다. 이윤 소장은 “여기는 노숙인, 정신지체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이 모이는 곳”이라며 “오태양씨 같은 소수자가 소수자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해서 흔쾌히 받아들였다”며 웃는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오씨가 살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오태양씨는 “첫날밖에는 제대로 봉사활동을 하지 못했다”며 부끄러워했다. 12월18일, 도착한 첫날부터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일이 생겼다. 그는 ‘아침을 여는 집’에 머물고 있는 한 노숙자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자활사업으로 운영하는 붕어빵 리어카를 뺏기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황급히 달려갔다. 노숙자는 먼 곳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다행히 붕어빵 리어카는 옆에 있었다. 노숙자를 위로하고, 기계를 정돈하고 다시 자리를 잡았다. 리어카를 밀면서 자꾸 눈물이 났다. 어릴 적 노점상을 하던 어머니가 단속반에 쫓기던 기억이 스쳤다. 거리를 헤매다가 행려병자로 돌아가신 아버지도 떠올랐다. 그는 요즘 불공을 드릴 때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신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기도한다.

역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머니다. 집을 나오던 20일에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돕기 금식’ 약속을 깼다. 어머니가 챙겨주신 아침을 오랫동안 먹지 못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집을 나온 뒤 아직 한번도 들르지 못했다. 어머니는 매일 전화를 해 “춥지는 않냐, 밥은 먹었느냐”고 묻는다. 추위를 심하게 타는 아들이 걱정돼서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냐?”는 물음도 빼놓지 않는다. 혹시 아들이 강제연행당하지 않을까 조바심치는 것이다. 어머니는 평소처럼 시장에서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다른 가족들의 지지도 여전하다. 큰누나는 사회단체 회의에도 빠지지 않을 만큼 적극적이고, 연극영화과에 다니는 동생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중이다.

첫날 이후로는 주로 종교계 인사들을 찾아다녔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날까지 30여개 단체의 사람들을 만났다. 조계사 종무소, 실천불교승가회, KNCC 인권위원회, 천주교 인권위원회 등을 찾아다녔다. 하루에도 서너 군데씩 부지런히 다닌 덕분에 지난해 12월27일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확보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간담회’에 상당수 종교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상자기사 참조). 그러나 아직 종교계의 지지는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 종교계 사회단체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이해하고 지지한다”면서도 “종단이나 단체 차원에서는 아직 깊은 논의를 해보지 못했고, 엇갈린 판단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입장을 정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얘기한다. 오씨는 “당장의 지지와 구제는 바라지 않는다”면서 “나를 계기로 종교계 내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공론화’되기만 해도 만족한다”고 밝혔다. 그는 스스로를 구속된 1594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대변인으로 생각한다. 힘들 때마다 오씨는 ‘갇혀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내 형제와 다름없다’는 다짐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오씨는 불교신자지만, 허물없이 다른 종교행사에도 참석해왔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의 정진우 목사가 있는 ‘월곡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끝난 뒤에는 20여명의 젊은이들과 대화 시간을 가졌다. 남성들은 대부분 예비역이었다. 오씨는 “처음에는 ‘대체복무가 마련되면 누가 군대를 가겠느냐’고 반발하던 청년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 나중에는 ‘나도 돕고 싶다’며 나서더라”고 흐뭇해했다. 12월20일에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집회에도 참석했고, 23일에는 반전 평화의 전통이 뿌리 깊은 퀘이커 예배에도 다녀왔다. 종교행사에 다녀올 때마다 수형생활중 종교활동이 금지돼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교도소에서 ‘종교행사를 할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격려를 해주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여성은 “돕고 싶은데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며 지원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지지 메일도 하루에 10여통씩 쌓인다. 하지만 오씨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비판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오씨 이야기가 올라 있는 ‘인터넷 한겨레’, ‘오마이뉴스’, 사이버 참여연대, 불교정보센터의 게시판에는 비판하는 글이 상당수 올라 있다. 대개 ‘병역기피를 종교와 양심으로 포장하지 말라’, ‘한국은 유구한 호국불교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불상생 계율을 오도하지 말라’는 비판이다. 오씨는 “찬성이든 반대이든 개의치 않는다”면서 “나를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이뤄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씨의 바람과는 달리 언론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다. 한 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 담당자는 “출연해달라”고 연락했다가, “내부 논의 결과 어렵게 됐다”고 번복하기도 했다. 12월24일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차인태의 라디오 초대석>에 나간 것이 유일한 방송 출연이었다.

앞으로는 봉사활동에 전념할 것

사진/ <젊은 불자를 위한 수행론><간디 자서전>. 오씨가 집에서 가지고 나온 책 목록이다.(위), 오태양씨의 병역거부 선언을 계기로 시민사회단체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아래).
오씨는 “이제 만나뵐 분들은 대충 만난 것 같다”면서 “앞으로는 좀더 봉사활동에 정성을 기울이겠다”고 활짝 웃는다. 그동안 종교계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오씨의 머리 속에는 ‘과연 봉사활동보다 알림일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올바른가’ 하는 고민이 떠나지 않았다.

오씨에 대한 법적인 조치는 좀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전례에 비추어보면, 입영 거부에서 구속까지는 1∼6개월이 걸린다. 일단 병무청이 병역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하면 수사가 시작되는 것. 아직 병무청은 오씨를 고발하지 않은 상태다. 오씨와 함께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며 후회하지 않는지 물었다.

“주위 분들이 염려하듯이 내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공언한 것이 나의 자유를 옭아매는 굴레가 될 수도 있지요. 앞으로도 내가 말한 바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평생 부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이 섰기 때문에 선언을 한 겁니다. 부끄럽고 모자라지만 항상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수밖에요.”

오씨와 걸어가던 창동역 주변의 거리에서 <이등병의 편지>가 흘러나왔다.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비록 군입대를 거부한 오씨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참 많은 상념이 떠오른다”고 되뇌인다. 어머니 얼굴도 떠오르고, 친구들 생각도 간절해진다. 입영 거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오태양씨의 손가락에는 아직 봉숭아 끝물이 남아 있다. 지난해 봄 수행을 하면서, 부처님을 따르는 삶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새긴 것이다.


시민사회단체 팔 걷다

2001년 12월27일 참여연대 강당에서는 평화인권연대, 참여연대 등 9개 단체 주최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확보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간담회’가 열렸다. 오태양씨의 병역거부 선언을 계기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내부의 인식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아직 시민사회단체 안에서조차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공론화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날 간담회에는 실천승가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민가협 등 20여개 가까운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행사로서는 지금까지 가장 다양한 단체가 참여한 행사였다. 오태양씨 등 양심적 병역거부권 확보에 관심있는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이었다.

간담회는 발제로 시작됐다.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최정민씨가 간단하게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운동의 현황을 발표했고, 오태양씨가 열흘 동안의 활동을 보고했다. 두 사람의 발표가 끝난 뒤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 토론에서는 ‘양심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 질문부터 ‘군사주의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출되었다. 특히 원불교 관계자는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도 양심에 포함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주목을 끌었다. 이 질문은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에 종교계 사회단체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를 담고 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정진우 목사가 답했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를 잘 모르고 옹호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1600명이 감옥에 있는 반인권적 현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비록 그들이 여호와의 증인이더라도. 더욱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필요하다면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2시간 가까이 이어진 토론이 끝나고 사업제안이 이어졌다. 간담회를 개최한 9개 단체는 2002년 1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확보를 위한 연대모임 발족’을 제안했다.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10만인 서명운동도 함께 제안되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활동가들은 공감대를 표시했다. 앞으로 이날 간담회를 개최한 단체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양심적 병역거부권 획득을 위한 운동이 전개될 전망이다. 오태양씨 병역거부선언에 힘입어 바뀐 현실이다.



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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