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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납골공원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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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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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공원에 납골묘지 유치한 남양주시 화도읍 구암3리 주민들의 ‘윈-윈 전략’

사진/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북한강공원. 님비현상을 극복한 납골묘지이다.
한 중견작가가 전하는 이야기 한 토막.

“사는 게 힘들어 그날도 나는 무덤가를 배회했다. 오래된 무덤 앞에서 이름 모를 망자를 벗삼아 술을 마셨다. 사위가 어두워졌으나 삶에 대한 회의를 떨치지 못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찰나, 쫙 미끄러졌다. 사람똥인지 개똥인지 똥더미를 깔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넘어지며 이번에는 누군가 던져 깨진 병조각에 손을 베었다. 젠장. 입에서 욕설이 나왔다. 씨발, 누구야! 때가 어느 땐데 이렇게 쓰레기를 막 버려! 투덜거리면서 내려오다 혼자서 박장대소했다. 내 꼴을 보라지. 반나절 온갖 폼잡고 앉아 실존을 고뇌하며 죽음을 그리던 내가 고작 옷 더럽힌 거, 손 다친 거에 분기탱천했던 거다.”

그래서 이 중견작가가 얻은 결론은 이것이다. “정말 삶과 죽음은 지척에 있다. 아니, 한몸이다.”

방방곡곡 반대로 일관했지만…


죽음만큼 단순한 게 있을까. 우리 모두는 결국 죽는다. 너무나 명확해서 사람들은 도리어 죽음에 신비함의 베일을 씌웠는지 모른다. 이어 수많은 제례와 의식들이 탄생했다. 공동체에 따라 내용과 형식은 달라도 그것들은 죽은 자와 산 자를 이어주는 경건하고 엄숙한 가교이다. 산 자들이 안녕과 평화를 갈구할 때, 고단하고 힘든 일상을 위로받고 싶어할 때, 죽은 자는 말없이 비빌 언덕이 돼준다. 대표적인 것이 무덤이다.

그러나 그 무덤이 ‘내(내 조상) 것’이 아닌 다음에야, 경건하고 엄숙한 묘지는 하나의 혐오시설로 전락해버린다. 올해 내내 득시글했던 서울 서초구 주민들의 시위도 동네에 혐오시설인 장묘사업소(화장장)를 설치할 수 없다는 집단적 반발이었다. 매장묘와는 달리 환경 영향이 거의 없는 납골당·납골묘지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도 이와 다르지 않다.

2002년 1월은 새 장묘법 시행 1년.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1.2배가 묘지로 바뀌는 가운데 ‘금수강산이 아니라 묘지강산’이라는 우려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앞으로 묘지당 3평 이상 쓸 수 없고 최대 60년 이상 매장할 수 없도록(15년씩 3회 연장 가능) 정한 게 큰 변화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첩첩산중이다. 국민들의 60% 이상은 “매장보다는 화장이 좋다”고 여기지만 동시에 국민들의 대다수는 “하지만 시설 설치는 내 동네만 빼고”인 탓이다. 현재 전국의 묘지 중 납골시설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 1%도 채 안 된다. 화장장도 전국에 45곳. 이웃 일본의 화장장이 읍면 단위까지 2천개가 넘는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다. 그나마 서울은 화장장을 단 한 군데도 갖고 있지 못한 세계 유일의 도시이다.

장묘법 개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던 98년부터 전국에 납골묘지 개발바람이 불었으나 현재 허가절차를 마치고 공사중인 곳은 민간업체의 경우 4곳, 종교단체 7곳, 공설 3곳뿐이다. 삼성, LG 등 대기업까지 뛰어들었지만 예정부지 주민들의 반발로 계속 제자리 걸음이다. 2000년 현재 33.7%인 화장률은 2010년에 이르면 60.2%에 다다를 전망이다. 앞으로 쏟아질 뼛가루는 대체 어디에 어떻게 모셔야 하나.

“30억 받을 수 있다”뜬소문 돌기도

사진/ 마을 이장 김창호(왼쪽)씨는 틈나는 대로 공사현장에 올라와본다. '마을산업' 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너나없이 내 동네에 화장터·납골묘지가 들어오는 것을 쌍심지 켜고 반대하는 가운데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솔깃한 소식이 들린다. 화도읍 구암3리 주민들이 북한강공원에 납골묘지를 유치하려고 발벗고 나섰다는 이야기이다.

12월28일 낮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주민일동 명의로 붙은 이 현수막에는 “북한강공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묘지에 들어서자 마을 이장 김창호(50)씨가 반색을 한다. 그는 마실 삼아 하루에 한 차례씩 공사현장에 올라온다고 했다.

마을 주민들이 처음부터 납골묘지 유치를 환영했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반대가 앞섰다. “다른 데 다 놔두고 왜 하필 여기냐”는 의견이 앞섰다. 농사와 민박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70세대 200여명의 주민들은 이곳이 고향이거나 뼈를 묻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다. 주민들이 냉담하게 굴자 땅 매입까지 끝낸 사업자쪽은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그러나 꾸준한 논의 끝에 사업자와 주민들은 윈윈게임 전략을 세웠다.

사업자는 고질적인 물부족 지역인 이곳에 지하수를 뚫었고, 3억여원의 주민발전기금을 내놓았다. 또한 공원 관리 등의 일자리에 주민들을 우선 고용하고 공원 상가를 주민들에게 우선 분양해 생계를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대신 주민들은 찬반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이장 김씨는 “어차피 납골묘지는 대세이다. 어느 곳에든 들어서야 한다”는 생각에 전격적으로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고 전한다. 중간에 고비도 있었다. 3억이 아니라 30억원이라도 받아낼 수 있다는 뜬소문에 주민들 마음이 뒤숭숭해졌을 때였다. 원점으로 돌아가 수없이 전체회의를 거듭해야 했다. 김씨는 “아마도 우리 마을에 외지 사람들이 많거나 뜨내기로 사는 이들이 많았다면 쉽게 결정이 안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벌써 마을 사람 서너명은 현장 인부로 일하고 있다. 이장 김씨는 납골공원 자랑에 침이 마를 새 없다. 보통 크기의 무덤만한 터면 32기까지, 큰 무덤 크기의 터면 최대 400기까지 유골을 안치할 수 있기 때문에 묘지문화의 대안적 모델이라는 것, 그리고 무덤의 형태를 띤 덕분에 정서적·집단적 부작용도 적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그는 “일본 도쿄 같은 데는 납골묘지에서 벚꽃 축제 같은 것도 한다면서요?”라고 이곳을 관광명소로 만들 기대감도 내비쳤다.

조경 공사를 남겨 놓고 있지만 묘비명이 적힌 묘들도 있다. 북한강공원 김인재 과장은 “공사 마치기 전까지 안치할 수 없지만, 계약자 가운데 대뜸 유골함을 들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 부득이 하게 자리를 잡아주고 있다”고 한다.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진 봉분이 하나 눈에 띄었다. 두개의 카드가 트리 옆에 놓여 있었다.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보내는 어린 두 아이들의 편지였다. 할머니에게는 “아빠가 병원에서 오래 고생했으니 잘 돌봐달라”는 부탁을, 아버지에게는 “할머니와 행복하게 지내시라”는 당부를 하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할머니 묘를 개장해와 젊은 나이에 병으로 곁을 떠난 아버지의 유골을 함께 앉힌 듯했다. 이 봉분은 기본봉분으로 모두 16기의 유골함을 넣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기본봉분에 16기의 유골함

사진/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구암3리 들머리에 붙어 있는 환영 현수막. 사업자와 주민들은 오랜 논의 끝에 서로에게 도움되는 사업 프로젝트를 짰다.
북한강공원 관리사무실에 들르니 한 노인이 막 가계약을 한 뒤 차를 마시고 있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사는 김인식(80)씨. 고향인 경북 상주에 선산도 있고, 3남1녀인 자녀들은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포천에 묘터로 쓸 산을 사놓았지만 본인은 납골묘를 쓰는 쪽으로 맘을 굳혔다고 한다. “포천 땅에 묘를 쓰면 고향 사는 장조카는 섭섭해할 테고, 또 매장묘는 영구적이질 않으니 자식들 두번 일 시킬 것 같아. 집사람하고 함께 묻히면 좋지 뭐. 일요일에 애들 데리고 와서 보여준 다음에 완전히 계약하려고.” 뼈를 묻을 자리를 스스로 정한 그는 얼굴이 환해 보였다.

해마다 우리나라의 사망자는 25만명. 죽음이 삶의 뒷면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북한강이 훤히 내다뵈는 산 중턱에서 삶과 죽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니 일상의 각박함이 겨울바람 속으로 하얗게 흩어지는 듯했다.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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