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용(가운데 마이크 든 이) 광주전남지부 부지부장 등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8월17일 광주고법에서 승소한 뒤 판결대로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라”는 요구를 밝히고 있다. 포스코 사내하청노조 제공
홀로 버티는 건 힘들었다. 양씨는 복직 뒤 이전 근무지인 공장 대신 아무도 알지 못하는 다른 사무실로 배치됐다. 그곳에서 감시와 또 다른 징계에 시달리던 그는 복직 1년 만에 더 이상 출근하는 것을 포기하고 세상을 떴다. 지난 5월27일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양씨의 자살에 대해 ‘업무상 사망’으로 인정하는 판정을 했다. 위원회는 “해고와 복직이 반복되는 과정, 복직 이후 이어진 사용자의 법적 대응 및 징계처분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업무와 관련한 우울증이 발생하였고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스트레스로 작용되었다고 보인다”고 판정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는 헌법에 보장된 노조 결성의 자유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었다. 양동운씨는 정규직을 인정하는 판결문을 들고 경남 남해 고향에 묻힌 양우권씨를 찾겠다고 했다. “살아 있었으면 네가 인내하고 참아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진하게 술 한잔 했을 것인데….” 이제 그와 함께했던 동료들은 다시 소송에 나설 예정이다. 양동운씨는 1차 소송 때 함께하지 않았던 23명의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추가로 제기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들의 외로운 싸움은 포스코 노동자 3만6천여 명 가운데 약 2만여 명에 달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도 임금 등의 처우는 정규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포스코 사내하청노조는 말한다. 포스코 사내하청노조의 김정기 조합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정당성을 인정받아 기쁘다고 했다. “포스코는 그동안 우리가 외치는 주장을 이기적 행동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말하는 게 되겠구나라고 사람들이 보기 시작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다른 포스코 노동자들이 우리를 이해할 계기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김정기씨는 포스코 내 다른 노조에서도 문의해온다고 전했다. 산업에도 큰 영향이 예상된다. 한국의 기간산업인 자동차·철강에는 많은 사내하청 노동자가 있다. 대기업들은 그동안 비용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정규직 고용 대신 협력업체의 규모를 키워 질 낮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대기업의 이같은 관행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제동을 걸었고, 철강업계에서 가장 비정규직 규모가 큰 포스코 판결까지 나왔다. 자동차의 경우 이미 2010년 7월에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고, 2년 이상 사내하청으로 일한 경우 직접 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지난해 2월엔 직접 생산라인뿐만 아니라 의장·차체 등 간접 부서의 사내하청도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철강의 경우에는 올해 초 광주지법 순천지원이 현대제철(옛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 161명의 손을 들어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고 인정했다. 기간산업 불법 비정규직 제동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한국 경제의 중심축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의해 유지됐는지, 얼마나 불법이 만연했는지를 보여준 판결”이라고 했다. 이제 기업이 불법 비정규직 고용을 통해 비용을 노동자에게만 전가하는 방식은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대신 사람과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 등으로 방향을 돌릴 것을 요구받고 있다. 포스코는 아직 방향타를 돌리지 않았다. 포스코 쪽은 “판결문이 도착하면 내용을 검토해 대법원에 항소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우권씨가 끝까지 쥐었던 ‘정규직화 소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양씨는 세상을 뜨기 전 유서에 “새들의 먹이가 되어서라도 내가 일했던 곳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 날아서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보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 광양제철소 1문에 그와 함께한 동지들이 한발 더 가까이 왔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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