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모 작가가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작업실에서 웹툰 사이트 ‘어른’에 연재 중인 <좁은 방>을 그리고 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감옥생활을 하게 된 경험을 만화로 풀어낸 작품이다. 정용일 기자
복병은 늘 그렇듯 의외의 곳에 있었다. “가서 놀아야 할 곳이 너무 많아요.” 한라산, 사려니숲, 386개의 오름. 제주도의 자연에 마음을 빼앗겼다. 놀다보면 작업을 잊고 싶어졌다. 하지만 제주 곳곳을 알아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새 작품을 시작하는 힘이 됐다. “어떻게 보면 제주가 오랜 기간 변방이었잖아요. 그래서 알려지지 않은 역사가 너무 많아요. 대표적인 것이 제주해녀항쟁이죠.” 변방이 선물한 상상력 제주해녀항쟁은 1931년부터 1932년까지 200여 차례 시위에 해녀 1만7천여 명이 참여해 일제의 수탈에 맞서 싸운 항일운동이었다. 김 작가는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회’의 지원을 받아 지난 1월 <제주해녀항쟁>을 펴냈다. 다음 작품으로 준비하고 있는 웹툰 <신들의 섬>도 제주를 모티브로 한다. “제주에는 1만 명 넘는 신들이 있어요. 대재앙 이후 여러 부족을 정벌해 세운 제국이 섬을 침략하는 과정과 여기에 맞서는 신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룰 생각이에요. 주인공은 여자 심방이에요.” ‘심방’은 무속 사제를 일컫는 제주어다. 섬에선 아이디어만 샘솟는 것이 아니다. 어울려 살기도 좋다. 제주에는 ‘괸당’ 문화가 있다. ‘친족’을 의미하는 제주어다. 외지인에 배타적 경향이 있지만 한번 마음을 열고 괸당이 되면 서로서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제주에는 삼무, 즉 세 가지가 없다고 해요. 도둑과 거지, 담장이죠. 그만큼 서로 믿고 도와주는 일이 자연스러운 곳이에요. 이곳 문화를 따르고 어울리면 이웃과 더없이 친하게 지낼 수 있어요.” 사방 곳곳 즐거운 일이 가득한 제주살이지만 아픈 일도 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세월호 참사는 김 작가의 가슴에 응어리를 남겼다. “고향인 전곡도 미군부대가 엄청 많았어요. 범죄도 많았고. 그래서 미군부대가 들어오면 얼마나 마을이 황폐해지는지 잘 알아요. 강정마을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죠.” ‘괸당’으로 함께 살기 그는 제주로 옮겨와 살기 전부터 강정마을에서 열리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 제주해군기지가 지어진 뒤에도 마을 주민들과 매년 열리는 ‘강정 평화대행진’을 함께하며 평화를 향한 제주의 열망을 되새긴다.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이 허망하게 세상을 등져야 했던 세월호 참사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용산 참사 만화를 그리기 위해 유가족분들을 만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저에게도 전해졌으니까요. 세월호 참사도 만화로 그려보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내가 이 거대한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는 올해 초 작업실 근처 김녕 앞바다에 세워진 빨간 등대에 ‘노란 리본’을 그려넣으며 희생자들을 기렸다. 제주가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거대 자본이 섬을 차지하는 것도 걱정이다. 김 작가가 이주할 때만 해도 제주 여러 마을의 학교는 문 닫을 것을 걱정했다. 지금은 마을 구석구석 펜션과 커피숍이 들어섰고 이주민과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제주 이주에 필요한 돈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으로 순식간에 늘어났다. “한 주민이 ‘이제 내 바다가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주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이 섬을 진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어요.”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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