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위하여
등록 : 2001-12-26 00:00 수정 :
앞날을 예측한다는 것, 새해 소망을 한다는 것이 파도가 드는 백사장에 그림을 그리는 것 같습니다.
불과 2년 전 세상은 런던의 밀레니엄 돔에서부터 남태평양 카리바시 섬에 이르기까지 새 천년을 축복했습니다. 전쟁과 이념대립, 환경오염 등에 시달린 세기와 결별하고 새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4년 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할 때, 민주·인권과 동서화합을 기대하고 자신했습니다. 더 거슬러올라가 1900년, 20세기의 새벽에 서구는 놀라운 세기가 열릴 것이라며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한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졌습니다. 양차대전을 겪은 인류는 21세기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국민의 정부에 가졌던 기대는 실망과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올해는 내로라 하는 전문기관들도 예측이 더욱 어렵다고 합니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럭비공 같은 외생변수가 있는데다가, 디지털로의 산업변환 등 워낙 변화가 커서 차라리 점을 치는 게 낫다고 합니다. 울리히 벡이 말한 대로 대형 트레일러를 몇개 매단 열차가 탈선 1보 직전에 질주하는 현대 자본사회의 모습이 투영됩니다.
하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것이 희망입니다. 사람이 주인이고 성찰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울리히 벡도 그런 위험 속에 기회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를 끌어당기는 자본주의의 마력이 클수록, 분단의 수렁이 깊을수록, 지역주의의 유혹이 짙을수록, 그것을 제어하고 타파하고 치유하는 길항력도 커진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인간이고 태초부터 내재된 염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독자 편지’에서도 확인됩니다.
정치는 미우나 고우나 새 질서를 만들어가는 힘이고, 국내적으로 변화를 좌우할 대선이 올해 있습니다. 그동안의 선거는 세습왕자처럼 지정된 후보들이 골목대장 같은 ‘유력신문’들의 호위 속에 치른 ‘그들만의 선거’였습니다. 유권자는 봉이고, 지역주의, 여론조작, 논공행상이 주인행세를 했습니다.
몇 가지 변화는 직선제에 이은 제2의 선거혁명 가능성을 예고합니다. 인터넷, 텔레비전 등 전자기술의 발전과 여성의 정치세력화 등이 그 변수입니다. 사실 선거는 10% 안팎의 부동표가 향방을 가릅니다. 인터넷과 텔레비전 직접토론 등으로 유권자들이 원형극장에서 검투사 구경하듯 후보자를 낱낱이 확인하고 검증하고 확약받는 선거가 된다면, 족쇄인 지역주의도 선거 이후의 연고주의도 극복될 것입니다. <한겨레21>은 그런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
2002라는 숫자가 안정감을 줍니다. 독자 여러분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