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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빠, 우리 서울로 올라가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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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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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 자연 속에서 뛰놀며 자라도록 하는 게 아이들에게 최선의 교육환경이 아닐까 싶다. 딸 슬비(왼쪽)와 동네친구 누리.

시골로 생활기반을 옮길 때, 가장 먼저 걱정이 된 건 자녀의 교육환경이었다. 생각 같아선 이왕이면 더 깊은 두메산골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큰아이가 아직 초등학생이므로 학교가 가까운 곳을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학교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얻을 수 있었다.

큰아이가 다니는 연곡초등학교는 일제 식민통치를 받던 때인 1933년에 설립된 학교다. 역사가 제법 깊기 때문에 운동장 가에 수령 100년이 넘은 왕벚나무 다섯 그루가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담장쪽으로는 아담한 수목원까지 조성돼 있다. 더구나 이 학교는 ‘열린 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돼 컴퓨터와 환등기 등 기자재도 대도시의 여느 초등학교도 따라오기 어려울 만큼 최신식으로 갖춰져 있었다.

시골생활에 가장 먼저 환호를 보낸 건 딸 슬비다. 처음엔 도시에서 전학온 아이란 이유로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그런 건 없었다. 고양 신도시에서 한반에 40명이 넘는 콩나물 같은 환경에 있다가, 한 학년에 한 학급뿐인 단출한 곳으로 오자, 일단 아이의 기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시골엔 아이를 키워주는 게 너무 많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란 시구도 있지만, 바람뿐 아니라 자라나는 새싹, 계곡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생식물들, 개구리와 까치와 매미와 나비조차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준다.

집 앞 느티나무에 아담한 둥지를 틀고 사는 까치 부부가 있다. 로터리칠 때 따라다니던 바로 그 친구들이다. 이들은 오월 초순쯤 새끼 네 마리를 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가운데 한 녀석이 그만 날개를 다쳤다. 다른 세 형제는 날개에 힘이 붙어 제법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데, 유독 이 녀석만 집 대문과 울타리 부근을 맴돌며 푸드덕거렸다. 혹시라도 인기척이 나면 까치 부부는 이 녀석 머리 위를 맴돌며 귀가 따가울 정도로 깍깍거렸다.

슬비는 다친 새끼 까치가 안쓰러워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다 빵조각을 뿌려주곤 했다. 일주일쯤 지난 어느날 폭풍우가 심하게 몰아쳤다. 다음날 우리 식구는 무심하게 지나쳤는데, 문득 다친 까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아내가 아무래도 새끼 까치가 지난 폭풍우에 무사하지 못했나보다고 말한다. 난 딸아이가 혹시라도 가슴 아플까봐 “글쎄, 이제 그 녀석도 날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하고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아내의 예감이 맞았다. 며칠 뒤 울타리 아래서 녀석을 찾아냈다. 머리는 이미 육탈이 진행돼 앙증스럽도록 작은 두개골만 남아 있었다. 슬비가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녀석을 제 집이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 묻어주었다.


시골에서 살다보면 굳이 관찰하려 애쓰지 않아도 생명체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삶과 성장과 생존을 위한 투쟁과 죽음. 성장기에 배워야 할 모든 것들이 공기처럼 곁에 있다. 하루의 시간이 어디서 시작돼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구마을이 우주의 한 공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언뜻언뜻 깨달을 수 있다.

내가 휴직기간이 다 끝나간다고 하자 딸아이가 슬그머니 물어왔다.

“아빠, 그럼 우리 이제 서울로 올라가야 해?”

“왜 물어?”

“그냥, 여기서 살면 좋겠어서.”

“여기가 뭐가 좋은데?”

“그냥, 친구들도 좋고, 놀거리도 많고.”

딸아이가 아쉬운 건 피자헛도 맥도널드도 롯데리아도 없다는 점이다. 대신 서울 본가나 외가에 올라갈 때 한번씩 사주는 걸로 만족하겠다니 부모로선 고마울밖에.

앞으로 아이가 더 커가면 아마 새로운 상황과 부닥쳐야 할 것이다. 교육문제도 있고, 아이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고. 그러나 부모의 조건이 허락된다면,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에 도회지의 고샅길이 아닌 황토 흙길을 걸으며 자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일이 어떤 교육이나 교훈보다 더 값진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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