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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김창석] ‘허준호 롱코트’를 질질 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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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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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렛일에서 독자개봉 시사회 사회까지… 영화 <화산고> 홍보마케팅 참여기

개봉날 서울 메가박스에서 주연배우 소개행사를 진행하는 모습. 왼쪽부터 김형종(심마 역), 권상우(송학림 역), 신민아(유채이 역), 장혁(김경수 역)씨.
“그냥 나가서 전단 돌리는 걸로 생각하면 안 돼요. 잠재적인 관객층의 반응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가 어떻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도 중요합니다. 질문도 ‘이 영화를 아느냐’에서부터 ‘어떻게 접했느냐’, ‘볼 생각이 있느냐’ 등 단계별로 구체적으로 던져야 하고요. 여러분들이 들은 얘기를 가지고 광고문구를 고쳐야 하니까 한눈팔면 안 됩니다.”

신촌에서 전단을 돌리다

전단 돌리기? 나는 대표적인 블록버스터 한국영화인 <화산고>의 홍보마케팅에 참여해보려고 여기에 왔는데 고작 전단을 돌리라니…. 그것도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들과 함께…. 11월24일 오전 10시 서울 삼성동 ‘싸이더스’ 사무실에 앉아 있던 나는 기분이 약간 언짢아졌다. 전체적인 마케팅 컨셉과 셀링 포인트를 잡아내고, 광고문구와 포스터 카피를 뽑고, 이벤트 아이디어를 내는, 그런 ‘있어 보이는’ 일을 하는 게 나의 바람이었다. 그런데 이건 너무나 비껴나 있었다.


설상가상이라고 기획팀에서 이 영화를 담당한 김성우 과장은 또 하나의 제안을 했다. <화산고>에서 배우 허준호씨가 입었던 롱코트를 직접 입어야 홍보효과가 좋다는 것이었다. 영화배우 허준호가 입던 옷을 내가 입어야 하다니! 나로 말할 것 같으면 172cm의 키에 비해 삶의 무게가 쌀 한 가마니(80kg) 이상으로 다가와버린 몸이다. 땅바닥을 동경한 나머지 아래로 흘러내린 엉덩이는 신체결함 수준이다. 그 큰 얼굴은 또 어떻게 숨길 것인가. 롱코트라서 엉덩이는 숨겨지겠지만 코트가 땅바닥에 끌리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을 것인가. 옆에 있던 대학생들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즐거워했다. 한 학생은 “내가 입은 교복이 장혁이나 신민아가 입었던 건지도 몰라” 하며 좋아했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교복과 롱코트가 내 몸에 안겨졌다. 신촌으로 무작정 떠났다. 함께 출발한 배윤희 과장은 연세대 앞을 지목했다. 왜 하필이면 모교 정문인가. 교수님을 보거나 아직 학교에 남아 있는 친구나 선후배를 만날 가능성도 있었다. 아, 시련의 연속.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기자다. 지금은 취재중이다. 홍보맨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자. 아직 영화가 개봉되려면 3주일 남았는데 누가 알아볼 것인가.”

무조건 머리를 크게 숙이고 인사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영화 <화산고>입니다.” 대학생들이라 전단을 잘 받아주는 편이었다. ‘개무시’하면서 끝까지 받지 않는 이들도 물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슬슬 자신감이 생겼다. 신호등 앞에 무리를 지어 서 있는 학생들에게 능글맞게 달라붙어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화산고>는 당시 개봉 3주 전(당시 예정 개봉일은 12월14일이었다)이었지만 뜻밖에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극장 예고편이나 텔레비전 영화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반응은 세대에 따라 편차가 심했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서는 열광적인 분위기가 많았다. 홍보전단을 보자마자 “야, 화산고다” 하며 환호성을 올리는 이들도 있고 홍보물을 받지 못한 이들 가운데 직접 찾아와서 받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주로 “재미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보는 장르다” “외국영화 보는 느낌이 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정적인 얘기도 있었다. “10대들이나 보는 유치한 영화”라거나 “만화 같은 느낌이라 보기 싫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1천장의 전단을 거의 다 나눠줄 무렵 등 뒤에서 “어? 저거 허준호가 입고 있던 옷인데…”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애써 무시했다. 어디를 가나 눈썰미 좋은 친구들은 있는 법이니까.

<해리포터…>와의 경쟁 위해 긴급처방

거리홍보에 나서기 전 아르바이트생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일이 끝난 뒤 “영화가 70% 이상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잘될 것 같다”고 큰소리를 치자, 유 과장은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이 정도 규모의 영화라면 한달 전에 이미 인지도가 절반을 훨씬 넘어야 한다”면서 “<무사>의 경우 개봉 직전에 인지도가 90%였다”고 조심스러워했다.

홍보마케팅의 기본 뼈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학원무협 블록버스터가 전체의 컨셉이었고, 관객층은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를 아우르는 젊은 층으로 잡혀 있었다. 여성관객보다는 남성관객층의 선호도가 높을 것이라는 전망이란다. 내가 개입할 만한 여지가 별로 없었던 셈이다.

기획팀에서는 인지도보다는 호감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개봉예정 영화들을 놓고 가장 보고 싶은 영화를 가려내게 하는 ‘최우선 선호도 조사’는 대박 가능성을 비교적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는 지표 가운데 하나다. <화산고>의 경쟁작은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두사부일체> 두 작품이었다. <두사부일체>도 만만치 않았지만, 결국 <해리 포터…>와의 싸움이 관건이었다.

신문이나 잡지의 광고전략도 <해리 포터…>와 <화산고>를 비교하는 분위기로 가져갔다. 그래야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전세계를 강타한 <해리 포터…>의 돌풍은 무서웠다. 선호도 조사결과도 6:4 또는 5.5:4.5 정도로 다소 밀리는 상황이었다. 결국 <화산고>의 개봉을 12월14일에서 8일로 일주일 앞당기는 긴급처방이 내려졌다. 모든 일정이 앞당겨졌다.

가장 시급한 것은 시사회였다. 시사회야말로 마케팅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다. 전문가와 일반관객을 통한 ‘시장조사’와 ‘직접 홍보’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12월5일 서울극장에서 기자시사회가 있었다. 기자로서 기자들을 위한 시사회를 준비한다는 게 어색했다. 그날도 역시 포스터를 세우고 홍보물을 나눠주는 허드렛일을 맡았다.

시사회를 하게 되면 가장 떨리는 사람들은 역시 감독과 배우들이다. 김태균 감독을 영화관 앞에서 만났다. “새로운 개념의 영화라는 얘기들이 많던데 기대된다”는 덕담을 건넸다. “보고나서 영화를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아이디어 좀 달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비교적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다.

대박과 중국집 매상과의 관계

12월5일 기자시사회가 열리던 날 서울극장 앞에서 김태균 감독을 만났다.
기자시사회의 경우 기획팀에서 체크해야 할 부분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메인매체’ 기자들의 행보를 살피는 것. 인터넷 매체들의 급증에 따라 현재 영화 기사를 다루는 매체들의 숫자는 줄잡아 500여개에 이른다. 메인 매체는 중앙일간지와 영향력 있는 주·월간지, 그리고 스포츠일간지의 영화 담당기자를 일컫는다. 기획팀의 한 관계자는 “이른바 메인매체 기자들은 티켓을 따로 부탁하지 않고, 시간보다 늦게 와서도 ‘표 없으면 가고’ 하는 식으로 큰소리를 치지만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다”고 일러준다.

시사회를 통해 내가 홍보하고 있는 신제품을 처음으로 음미했다. 생각보다 새롭고 재미있었다. 시사회 도중 기자 관객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폭소가 10번 이상 터져나왔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걱정, 즉 ‘괜히 얘기 안 되는 영화 홍보한다고 나섰다가 독자들한테 욕 먹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상당부분 누그러졌다. 물론 후반편집이 지루하게 돼 있고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이 영화가 주는 ‘새로움’의 느낌을 상쇄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화산고>를 본 직후 2000년 칸영화제에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영화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그 말이. 영화·게임·만화 등을 넘나드는 <화산고>의 미덕은, 아마 이 영화가 미래영화가 선사해줄 오락의 단면을 미리 보여주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홍보맨은 더욱더 의식화되어갔다.

12월8일 드디어 개봉일을 맞았다. 영화 개봉일 <서울극장> 앞과 그 주변은 영화인들의 잔치마당이다. 영화 관계자들은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카페인 팡세에서 관객이 얼마나 모여들지를 두고 가슴 졸인다. 대박이 터진 예감은 극장 뒤편에 있는 ‘선인장’이라는 중국집의 매상에서도 읽혀진다. 충무로 사람들이 개봉행사를 마친 뒤 이곳에 들러 공짜로 자장면이나 짬뽕 등 간단한 식사를 시켜먹고 나가기 때문이다. 흥행이 잘되는 영화의 경우 이 집의 매상이 치솟아야 한다. <화산고>의 경우도 그랬다.

오후에는 내가 직접 맡은 개봉행사를 치러내야 했다. 개봉일 주연배우 소개행사의 진행을 맡은 것이다. 장소는 서울에서 흥행지표를 매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극장으로 자리잡은 서울 삼성동의 메가박스 1관. 오후 3시 김성우 과장이 강남역 근처 씨티극장에서 시범을 보였다. 간단했다. 배우들 이름을 간단히 부르고 인사를 시킨 뒤 행운추첨을 통해 관객에게 선물을 주는 게 전부였다.

‘저 정도라면 나도 가뿐히 해낼 수 있지. 아니야, 나는 저것보다 훨씬 잘해야지.’ 사실은 그 전날 배우소개 준비를 해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예를 들어 “관객 여러분, 11개월 동안 와이어에 매달려 살았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배우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쎄서 슬픈 사나이, 김경수 역의 장혁씨입니다” 하는 식으로 준비를 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기획팀에서 내가 하는 취재 내용을 미리 말하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아, 너무 길어지는데…. 영화 예고편 두편이 나간 뒤 갑자기 불이 켜지면서 내가 무대로 올라갈 차례가 왔다. 500여명에 가까운 관객의 집중도가 높아진 건 당연했다.

개봉날, 주연배우 소개행사 사회를 보다

허준호씨가 입었던 롱코트를 입고 서울 연세대 정문 앞에서 영화홍보 전단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서 취재기자로 일하고 있는 김창석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저희 주간지에 기자가 뛰어든 세상이라는 꼭지가 있는데요….” 설명이 길어지면서 목소리의 떨림은 더해갔고 배우소개 순서가 됐는데도 준비한 인사말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김경수 역의 장혁씨 소개합니다” 하는 식으로 간단하게 돼버렸다. 배우소개 순서가 끝나고 경품 추천을 위해 배우들을 한명씩 거쳐가는데 허준호씨가 씩 웃으면서 한마디했다. “수고가 많으시네요.” 애정을 듬뿍 담은 말이었지만,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개봉 첫 주말 관객이 50만명이었다. 성공적인 수치였다. 그러나 개봉일 1,2,3회를 매진시키면 홍보마케팅 업무가 끝났다고 여겼던 이전 시기에 비해, 지금은 개봉 뒤에도 영화의 힘을 받쳐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화산고>로서도 12월14일 개봉하는 <해리 포터…>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12월14일 나는 다시 서울극장으로 나섰다. 이날은 <해리 포터…>가 개봉하는 날이었다. 입장객에게 <화산고> 만화책과 O.S.T 음반을 무료로 나눠줬다. <화산고>는 두 번째 주말을 보낸 17일 현재 전국 관객 115만명에 이르렀다. <화산고>는 21일 개봉하는 흥행예상작 <바닐라 스카이>와 <몬스터 주식회사>와 다시 한번 겨뤄야 한다.


순제작비 48억, 마케팅비 15억

“영화의 적들이 너무 많아졌다.”

싸이더스 영상사업부문 기획팀 김성우 과장은 영화 마케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최근의 경쟁상태를 이렇게 정리했다. 특히 복합상영관의 급증으로 인해 700여개로 늘어난 스크린을 확보하는 싸움은 한마디로 전쟁상태라고 한다. “금요일날 개봉해서, 토요일날 (작은 규모로) 관을 바꾸고, 일요일날 내리고, 월요일날 프린트 돌려받는다”거나 “금요일날 개봉파티하고 월요일날 쫑파티한다”는 우스갯소리는 이런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당장 최근의 상황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화산고>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두사부일체> 등 세 영화가 차지하는 스크린 수만 해도 550개에서 600개 사이다. 나머지 100개를 가지고 다른 영화들이 나눠먹는 형국이다. 12월21일 개봉하는 <몬스터 주식회사>나 <바닐라 스카이> 등 큰 영화들이 스크린을 100개 이상씩 갖고 싶어한다면 기존의 3개 영화가 선점하고 있는 부분을 내줘야 한다. 내려지는 영화를 결정하는 기준은 직전 주말성적과 주중성적이다. 개봉 첫주 4천개 이상의 극장에서 동시 개봉하고 첫주 흥행성적이 1억달러를 넘어서면 대박이 터진 것으로 쳐주는 최근 할리우드의 단기승부 방식이 한국에서도 보편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케팅 전략도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 개봉을 앞당기기 위해 유료시사회라는 변칙이 쓰이는가 하면, 개봉예정인 <이것이 법이다>의 홍보팀은 20만명의 네티즌들에게 ‘살인예고장’을 이메일로 보내 말썽를 빚기도 했다. 비용도 논란거리다. 순수제작비의 30∼50%에 해당하는 비용이 홍보마케팅에 쓰이면서 영화 자체의 힘보다는 광고비가 흥행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화산고>는 순제작비 48억원에 마케팅비는 15억이었다.

최근에는 특히 지방에 대한 홍보마케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배급시스템이 직배로 바뀌면서 지방관객이 얼마나 드느냐가 흥행의 주요 변수가 돼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이전에는 50:50 정도였던 서울:지방 관객 비율이 지금은 30:70 또는 40:60 정도로 바뀌고 있다. <조폭 마누라>의 경우 서울 관객은 100만명이었던 데 비해 지방관객은 500만명이었다. <화산고>의 경우도 이같은 흐름에 따라 주연배우들이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지방 대도시의 시사회에 직접 내려갔다.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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