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한남동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강제집행에 대비해 세워둔 기둥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왼쪽부터 소설가 정현석, 운영진 최지안, 송현애, 음악가 이권형, 경인선씨. 류우종 기자
이 순간을 아쉬워하는 딱 한 사람이 있었다. 소설가 정현석씨다. 그는 지난 1월부터 카페에서 먹고 자고 씻는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취재해 르포와 픽션을 넘나드는 소설을 쓸 계획을 갖고 있다. “오늘 변호사 사임서를 받음으로써 (새로운 장르로 개척하려 했던) 소송문학의 명맥이 끊겨버리게 되었어요.” 농담처럼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그는 오랜만에 한시름 놓은 표정이었다. “언론 보도는 법적 다툼에 초점을 많이 맞추는데, 그러다보니 조명되지 않는 상황들이 있다. 연대하는 예술가들이 당하는 부당한 상황에 대해서 말이 없다. 예컨대 집행정지가 떨어졌음에도 운영자 송현애씨 자택에 무단 침입해서 압류 딱지를 붙였던 상황, 이럴 때 사람들이 느꼈던 공포나 심리적 압박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소설가는 소설가의 방식으로, 음악가는 음악가의 방식으로 연대한다. 싱어송라이터 이권형씨는 노래를 한다. 2월18일 오후 4시, 카페에서 ‘강제음악회’가 열렸다. 이권형씨는 강제집행에 맞서는 강제음악회를 일주일에 세 번씩 연다.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부르고 테이블에 음악가가 앉아 있으면 무대로 불러 세워서 같이 노래 부른다. “도시에 산적한 여러 가지 문제 중에 특히 왜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냐면, 내 이야기 같으니까. 사람들이 구석에 몰려 있다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 낭떠러지 끝에 서 있으면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배수의 진을 쳐줘야 한다.” 카페에 모인 음악가들은 카페의 이야기를 담은 컴필레이션 음반을 제작하며 배수의 진을 쳤다. 이권형씨는 <섬>이라는 노래로 참여했다. 파괴가 일상이 된 시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관심이 많아 여러 공간에서 연대를 해왔던 이권형씨는 정현석씨와 함께 이곳에서 잠을 자며 생활하는 연대인 중 한 명이다. 처음에는 너무 추워서 “젊음이 파괴당하는 기분”이었지만 차차 몸이 적응해 공간에 머무는 사람 중 가장 부지런히 씻고 매무새를 다듬는다. 낮에는 히터를 틀어도 발목이 서늘하고 손끝이 시린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머무름의 방식으로 분투한다. 2월18일 만난 카페 운영진 송현애씨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그는 낡고 한적했던 동네가 급격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몸으로 겪어내고 있다. 2010년 처음 한남동에 깃들 때, 카페가 있었던 공간은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숯불갈빗집이었다. 근처는 기념품 가게와 좁은 골목을 채운 다세대주택이 전부였다. 최근 1년 사이 카페 인근에 기업의 자본이 들어간 화려하고 큰 건물들이 들어서고 다세대주택 1층은 세련된 가게들로 촘촘히 채워지고 있다. 송현애씨는 매일 아침 뒷집 벽을 때려 부수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부순다는 것의 의미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 어떤 장소가 파괴된다는 것은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도 함께 파괴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런 충격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송현애씨는 “네 차례 강제집행을 겪은 다음부터 오늘만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내일을 생각하면 버티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카페를 지키는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벌어질 일들을 예측할 수 없지만 각자 잘할 수 있는 일들로 공간을 채워가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으므로 2월18일에는 카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비닐 장막을 거뒀다. 정현석씨는 “곧 봄이 다가오기도 하니까”라고 말했다. 비닐하우스를 걷어내니 카페에서 쏟아져나오는 밝은 불빛이 길가로 바로 쏟아졌다. 그동안 이곳을 폐허처럼 여기며 그냥 지나쳐왔던 행인들이 조금씩 눈길을 주는 듯했다. 평소 저녁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이 조금 많아졌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주거 계급의 문제를 어떤 언어로 설명해야 하는지,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연구를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계속할 예정이다. 소설가는 기록하고, 음악가는 노래를 만들고, 영화인은 찍고, 미술가는 작품을 만들고, 학자들은 포럼을 연다. 그리고 다가올 3월5일은 그런 싸움과 기록의 현장이 꼭 1년째 되는 날이다. 그때도 이 싸움이 지속되고 있을지 사태가 정리될지 알 수 없지만 그날, 사람들은 그간의 상처를 기록한 책의 출간과 음반 발매를 기념하는 작은 행사를 열 계획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카카오톡에서 <한겨레21>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