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주는 물론 예술성이나 창의성도 있어야 하는 작업이에요. 이태리 구두장이들은 하루에 다섯 족 정도 만든다고 해요. 신발 한 켤레가 500불 이상이니까 소량 생산해서 제값 받고 파는 거죠.” 고등학교 1학년 나이부터 37년 동안 구두를 만든 홍노영씨는 구두 만드는 일이 자랑스럽다. 제화공의 손끝에서 구두의 맵시가 연출되기 때문이다. 종훈씨가 열 손가락을 펴서 보여준다. 첫째 마디에 지문이 보이지 않는다. “주민등록증 만들 때 지문이 안 나와서 몇 번씩이나 찍었어요. 얼마 전 여권 만들 때도 컴퓨터가 지문을 인식하지 못해 엄청 애를 먹었죠.” 멋진 수제구두는 구두장이의 지문으로 만들어진다. “제가 구두를 처음 배우던 1970년대 말 구두 한 켤레가 1만2천원이었고 마진율이 70%를 넘었어요. 그 시절 명동의 멋쟁이들은 모두 구두장이였어요.” 노영씨가 지나간 시절을 떠올린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손기술 좋은 구두장이들은 먹고살 만했다. 금강제화 공장이 성수동에 있던 시절, 금강 본사에서 일하는 제화공의 한 달 봉급은 15만원, 금강에서 하청받아 일하는 제화공은 30만원을 벌었다. 회사에 매여 일하기 싫어하는 구두장이들은 성수동 작은 구둣방에서 구두를 만들었고, 구두 기술자들은 그만한 대우를 받았다. 금강과 함께 3대 구두 업체인 엘칸토, 에스콰이어와 백화점 고급 구두 소다, 텐디, 리소페도 모두 그의 칼판을 거쳐갔다. 27만원짜리 구두 한 켤레 공임비는 1만2천원 일반 구두는 합성피혁을 소재로 기계를 이용해 대량 생산한다. 반면 수제구두는 겉감과 안감 모두 천연 가죽을 이용해 만든다. 재단→갑피→저부→완제품으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공정이 구두장이의 손과 구두 재봉으로 만들어진다. 중창이라고 부르는 신발 바닥도 발바닥의 곡선을 살리기 위해 얇은 쇠를 두드려 만들기 때문에 기성화에 비해 가볍고 튼튼하다. 고객의 주문에 맞춰 만드는 맞춤형 수제화는 서울 염창동과 성수동, 대구의 수제화 골목에서 만들고, 유명 구두회사의 수제화는 성수동에서 만들어진다. “제 손으로 만든 구두가 도심을 누비는 걸 보면 가슴이 뿌듯하죠.” 설 명절에도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멋들어진 구두들이 유명 상표를 달고 상점에 진열되어 멋을 아는 주인을 기다린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신자유주의 세계화 바람이 구두업계를 휩쓸었다. 사업주들은 인건비가 싼 중국과 동남아로 빠져나갔다. 구두 대기업들은 공장에서 구두를 만들던 정규직 노동자를 ‘소사장’으로 대체했다. 성수동 제화공들이 만드는 구두의 납품 가격도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7월 서울시 산하 연구기관인 서울연구원은 광복 이후 70년간 서울의 변화상을 정리했다. 1948년 서울에서는 목수와 제화공의 임금이 현재 화폐 기준으로 각각 월 12.1원, 10.7원으로 회사원(9.3원), 공무원(4.4원)보다 많았다. 70년 후인 2014년 사무종사자(회사원, 공무원)의 평균 월급은 301만원인 데 비해 제화공(섬유 및 가죽 관련 기능 종사자)의 월급은 183만원에 그쳤다. 설 명절 노영씨와 동료들이 만든 수제구두는 매장과 홈쇼핑에서 27만원 안팎으로 팔린다. 그런데 신발 한 족을 만드는 인건비는 얼마일까? 구두회사는 광고비와 재고 부담을 이유로 구두 한 족당 공임비로 갑피와 저부공장에 각각 5500~6000원을 준다. 판매가의 4.4%가 40년 경력 구두 기술자의 몫이다. 수제구두는 디자인이 까다로워 신발 한 족 만드는 데 1시간 넘게 걸린다. 설을 앞두고 네 명의 제화공이 하루 15시간씩 이틀을 꼬박 만들어 단화 100족을 납품해 55만원을 받았다. 1인당 하루 일당이 7만원, 시급 4700원인 셈이다. “우리 아들이 극장 알바하는데 야간까지 하면 8500원 넘게 주더만. 30년 넘게 일했는데 알바보다 못하다니까. 아침 7시에 나와서 밤 10시까지 일하는데 하루 10만원을 못 벌어요.” 종훈씨가 긴 탄식을 내뱉는다. 구두장이의 신세가 이렇다보니 일을 배우려는 젊은이가 없다. 쉰 살이 넘은 종훈씨가 이 동네 막내다. 서울시가 ‘제화의 거리’를 조성하고 수제구두 공동판매장을 만드는 등 여러 지원을 하고 있지만, 하루 15시간 ‘본드 냄새’를 마시며 커피전문점 알바보다 못한 대우를 견디겠다는 청년이 있을 리 없다. “구두 대기업들이 공정한 거래만 해준다면 후배들도 장래를 걸고 일을 배워볼 수 있을 텐데,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어요. 결국 이 좋은 구두 기술이 사장되는 거죠.”
“손재주는 물론 예술성이나 창의성도 있어야 하는 작업이에요. 이태리 구두장이들은 하루에 다섯 족 정도 만든다고 해요. 신발 한 켤레가 500불 이상이니까 소량 생산해서 제값 받고 파는 거죠.” 고등학교 1학년 나이부터 37년 동안 구두를 만든 홍노영씨는 구두 만드는 일이 자랑스럽다. 제화공의 손끝에서 구두의 맵시가 연출되기 때문이다. 종훈씨가 열 손가락을 펴서 보여준다. 첫째 마디에 지문이 보이지 않는다. “주민등록증 만들 때 지문이 안 나와서 몇 번씩이나 찍었어요. 얼마 전 여권 만들 때도 컴퓨터가 지문을 인식하지 못해 엄청 애를 먹었죠.” 멋진 수제구두는 구두장이의 지문으로 만들어진다. “제가 구두를 처음 배우던 1970년대 말 구두 한 켤레가 1만2천원이었고 마진율이 70%를 넘었어요. 그 시절 명동의 멋쟁이들은 모두 구두장이였어요.” 노영씨가 지나간 시절을 떠올린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손기술 좋은 구두장이들은 먹고살 만했다. 금강제화 공장이 성수동에 있던 시절, 금강 본사에서 일하는 제화공의 한 달 봉급은 15만원, 금강에서 하청받아 일하는 제화공은 30만원을 벌었다. 회사에 매여 일하기 싫어하는 구두장이들은 성수동 작은 구둣방에서 구두를 만들었고, 구두 기술자들은 그만한 대우를 받았다. 금강과 함께 3대 구두 업체인 엘칸토, 에스콰이어와 백화점 고급 구두 소다, 텐디, 리소페도 모두 그의 칼판을 거쳐갔다. 27만원짜리 구두 한 켤레 공임비는 1만2천원 일반 구두는 합성피혁을 소재로 기계를 이용해 대량 생산한다. 반면 수제구두는 겉감과 안감 모두 천연 가죽을 이용해 만든다. 재단→갑피→저부→완제품으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공정이 구두장이의 손과 구두 재봉으로 만들어진다. 중창이라고 부르는 신발 바닥도 발바닥의 곡선을 살리기 위해 얇은 쇠를 두드려 만들기 때문에 기성화에 비해 가볍고 튼튼하다. 고객의 주문에 맞춰 만드는 맞춤형 수제화는 서울 염창동과 성수동, 대구의 수제화 골목에서 만들고, 유명 구두회사의 수제화는 성수동에서 만들어진다. “제 손으로 만든 구두가 도심을 누비는 걸 보면 가슴이 뿌듯하죠.” 설 명절에도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멋들어진 구두들이 유명 상표를 달고 상점에 진열되어 멋을 아는 주인을 기다린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신자유주의 세계화 바람이 구두업계를 휩쓸었다. 사업주들은 인건비가 싼 중국과 동남아로 빠져나갔다. 구두 대기업들은 공장에서 구두를 만들던 정규직 노동자를 ‘소사장’으로 대체했다. 성수동 제화공들이 만드는 구두의 납품 가격도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7월 서울시 산하 연구기관인 서울연구원은 광복 이후 70년간 서울의 변화상을 정리했다. 1948년 서울에서는 목수와 제화공의 임금이 현재 화폐 기준으로 각각 월 12.1원, 10.7원으로 회사원(9.3원), 공무원(4.4원)보다 많았다. 70년 후인 2014년 사무종사자(회사원, 공무원)의 평균 월급은 301만원인 데 비해 제화공(섬유 및 가죽 관련 기능 종사자)의 월급은 183만원에 그쳤다. 설 명절 노영씨와 동료들이 만든 수제구두는 매장과 홈쇼핑에서 27만원 안팎으로 팔린다. 그런데 신발 한 족을 만드는 인건비는 얼마일까? 구두회사는 광고비와 재고 부담을 이유로 구두 한 족당 공임비로 갑피와 저부공장에 각각 5500~6000원을 준다. 판매가의 4.4%가 40년 경력 구두 기술자의 몫이다. 수제구두는 디자인이 까다로워 신발 한 족 만드는 데 1시간 넘게 걸린다. 설을 앞두고 네 명의 제화공이 하루 15시간씩 이틀을 꼬박 만들어 단화 100족을 납품해 55만원을 받았다. 1인당 하루 일당이 7만원, 시급 4700원인 셈이다. “우리 아들이 극장 알바하는데 야간까지 하면 8500원 넘게 주더만. 30년 넘게 일했는데 알바보다 못하다니까. 아침 7시에 나와서 밤 10시까지 일하는데 하루 10만원을 못 벌어요.” 종훈씨가 긴 탄식을 내뱉는다. 구두장이의 신세가 이렇다보니 일을 배우려는 젊은이가 없다. 쉰 살이 넘은 종훈씨가 이 동네 막내다. 서울시가 ‘제화의 거리’를 조성하고 수제구두 공동판매장을 만드는 등 여러 지원을 하고 있지만, 하루 15시간 ‘본드 냄새’를 마시며 커피전문점 알바보다 못한 대우를 견디겠다는 청년이 있을 리 없다. “구두 대기업들이 공정한 거래만 해준다면 후배들도 장래를 걸고 일을 배워볼 수 있을 텐데,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어요. 결국 이 좋은 구두 기술이 사장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