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일하는 ‘새내기 운동가’
등록 : 2001-12-19 00:00 수정 :
지난 가을 내가 일하는 인권단체에 한 사람이 문을 두드렸다.
신치호(32)씨였다. 그는 상근간사를 하겠다고 했다. 사실 가족 부양의 무게 때문에 서른이 넘으면 인권단체의 일을 그만두는 이들이 많다. 한데 그는 거꾸로였다. 어리둥절해하는 우리에게 그는 “고등학교 마치고 10년 넘도록 가족들과 함께 먹고살기 위해서만 뛰었으니 더 늦기 전에 몇년은 인권운동을 하고 싶다”고 담담히 뜻을 밝혔다.
신씨는 고교 졸업 뒤 공사판 막노동을 비롯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가족들을 부양했다. 형이 천주교 신부여서 노부모를 모시고 가계를 꾸리는 일은 그의 몫이었다. 열심히 일해 집도 장만하고 결혼도 했다. 제법 돈을 모은 다음에는 서울에서 편의점을 5년간 경영하기도 했다. 한번은 그의 편의점에서 큰 싸움이 나 폭력배가 계산도 하지 않고 칼을 들고 나가는 일이 생겼다. 그는 끝까지 쫓아가 칼값 3만8천원을 받아낼 정도로 억척스럽게 뛰었다.
남들은 운동을 정리하는 마당에 특별한 사상적 배경이나 운동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 운동을 전업으로 하고 싶다니. 반신반의했지만 우리는 그의 뜻을 말릴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석달째 상근활동을 하고 있는 신씨는 여전히 집회나 시위에 참가할 때면 어색해한다.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부르며 연습하는 그에게 동생이 어느날 “형은 왜 자꾸 거꾸로 가냐”고 묻더란다. 신씨는 자신의 선택을 이렇게 설명한다. “고등학교 때 말썽은 피우지 않았지만 성적은 거의 꼴찌였습니다. 집안 형편도 어려웠지만 성적 때문에라도 대학진학이 힘들었죠. 제가 돈을 벌 동안 대학생이 된 동창들은 세상 모든 일에 아는 체를 했습니다. 전 자꾸 소외되는 기분이었죠. 벌써 10년도 넘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상해요. 아직도 세상에는 아프고 억울한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이야말로 운동이 더 필요한 것 같은데 친구들은 다들 생업에 바쁩니다. 능력은 안 되지만 이것저것 한숨 돌린 저라도 힘을 보태야 할 것 같았어요.”
신씨가 우리 단체에서 맡고 있는 일은 상담이다. 상담만 시작되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운동이란 지식정보로 포장된 이성이 아니라 공감할 줄 아는 감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서른 넘은 나이에 운동에 뛰어든 새내기 인권운동가에게 나는 아주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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