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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의 작은, 거대한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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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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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영일 아침 훈련소 대신 인권위 사무실을 찾은 오태양씨의 ‘불온한’ 꿈

사진/ 오태양씨가 국가인권위에서 진정접수를 하는 모습. 그는 총을 들어야 하는 현실 대신 평화를 향한 꿈을 선택했다.(박승화 기자)
입영일 아침이 밝았다. 오태양씨는 논산행 입영열차에 오르는 대신,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12월17일 아침 9시20분. 인권위가 위치한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 1층 로비는 오태양씨를 격려하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속에는 오태양씨의 큰누나와 여동생도 함께 있었다. 이틀 전, 오씨는 가족들에게 병역거부 결심을 알린 터였다. 큰누나는 “마음은 아프지만, 우리 가족은 태양이의 결단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담담합니다.”

지인들과 인사를 나눈 뒤 오씨는 호소문을 들고 인권위 기자실로 올라갔다. 진정 접수에 앞서 ‘사회봉사로써 병역의무를 이행하고픈 젊은이가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문’을 읽어내려갔다.

사회단체들, 일어서다


“저를 통해 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개인적 구제’를 넘어 1만여 병역거부 피해자들과 1600여 병역거부 수감자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양심의 결단으로 고뇌하는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용과 구제’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오씨 옆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의 이석태 변호사가 배석했다. 이 변호사는 “재판과정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의 정당성을 알려나가겠다”며 “헌법 학자, 평화 운동가 등 각계 전문가들을 법정 참고인으로 부르고, 위헌법률제청 신청도 낼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변호사를 비롯한 민변 소속 변호사들은 오씨의 변호인단을 구성해 변론에 나설 계획이다.

짧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오씨는 진정서를 접수했다. 접수를 받은 인권위쪽은 “인권위 사무처가 구성되는 대로 조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답변했다. 접수를 마친 오태양씨는 영등포구 신길동의 서울지방병무청으로 향했다. 병역기피 죄목으로 구속될 위기에 놓인 청년이 제발로 병무청을 찾은 것이다. 병무청 입구에는 오씨의 어머니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혹시나 병무청에서 바로 구속되지 않을까 마음이 놓이질 않아서…”라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소신이 있다면, 그대로 하세요. 우리는 법대로 처리할 테니까.”

상담을 받기 위해 찾아온 오씨에게 돌아온 병무청의 답변은 짧고 냉담했다. 서울지방 병무청 징병과쪽은 “3일 동안 조사를 한 뒤, 고발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병무청의 고발 시점에 따라 구속 시점도 달라진다. 대개 1∼3주가 걸린다. 병무청이 고발 조치를 취하면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거쳐 재판이 이어지게 된다. 같은 이유로 구속된 여호와의 증인들은 1년6개월∼2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있다. 병무청 문서실에 호소문 접수를 마친 오태양씨는 서울 보문동의 노숙자 쉼터로 향했다. 스스로 대체봉사를 할 사회복지기관을 물색해놓은 것이다. 구속되기 전까지, 그는 노숙자들의 수발을 드는 일을 할 계획이다. 다음날, 사회단체의 지지성명이 이어졌다. 평화인권연대, 참여연대, 민주노동당 인권위원회 등은 성명서를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보장과 대체복무제 입법을 촉구했다. 사회단체들은 ‘(가칭)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책위’를 구성하고 활동에 나선다.

‘종교의 문제’라는 틀을 넘어

오씨의 선언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는 ‘여호와 증인만의 문제, 이단종교의 교리’의 틀을 벗어나게 되었다. 논쟁의 초점도 평화주의와 군사주의 사이의 본격 격론으로 옮아갈 전망이다. 청년 평화주의자 오태양씨의 고백글, ‘나에게는 진정 꿈이 하나 있습니다’는 짧은 시로 마무리된다.

“그리하여/ 저에게는 진정 꿈이 하나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전쟁과 가난의 고통이 사라지는/ 꿈 말입니다/ 그리고 걸어갈 것입니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총 든 군인이 아닌 자원봉사자로 만나/ 인류의 꿈과 희망에 대해/ 지구의 생명과 평화에 대해/ 웃고 이야기하며/ 함께 어깨동무할 수 있는/ 그 날을/ 염원하며 말입니다.” 40년 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이 오늘을 바꾸었듯, 오태양씨의 꿈도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그가 먼저 한발을 내디뎠다. 2001년 12월17일, 첫눈 내린 거리 위에.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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