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 싸우며 인술 베푼다
등록 : 2001-12-12 00:00 수정 :
“암인 줄은 전혀 몰랐지요. 명색이 의사라면서 미련해가지고는, 허허.”
오흥룡(43·충북 제천시 청전동) 박사(의학)가 직장암 3기 선고를 받은 건 지난해 10월6일. 그 이전부터 평소와 약간 다른 증상이 있긴 했다. 암 선고를 받기 2주 전쯤 대변에 피가 섞여나오고 통증이 심했던 것이다.
“인근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담당의사가 그냥 치질이라고 하더군요. 다 알면서도 환자의 심정을 감안해서 일단 숨겼던 겁니다. 한 다리 건너서 금방 알게 됐지만요.”
서울 출신으로 한양대 의대를 졸업한 오 박사는 지난 92년 제천시 서울병원 정형외과 과장을 맡으면서 이곳에 정착했다. 이듬해 제천에서 서울 정형외과를 개업한 뒤 지난해에는 시 의사협회장까지 맡는 등 9년여 동안 지역 의료계를 이끌어오던 터였다.
암 선고도 대단히 당황스런 일이었거니와 하루아침에 의사에서 환자로 처지가 뒤바뀐 현실도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수술과 이어지는 항암치료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겨웠다.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져나가고 몸무게가 평소보다 12kg이나 빠질 정도로 수척해졌다.
“첨에는 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금방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나라고 암 걸리지 말란 법 없지 않나’ 하면서 말이죠. 그뒤부터 뭐, 담담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환자의 아픔을 직접 느끼는 소중한 경험으로 삼으면서….”
고통스런 수술과 치료과정에서 자신보다 훨씬 더 큰 시련을 겪고 있는 환자들이 많다는 사실이 새삼 절실했다. 오 박사는 치료기간 틈틈이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무료 진료활동을 펴기 시작했다. 한번은 가족과 의료진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멀리 네팔 히말라야 산맥의 한 마을을 찾아가 인술을 펴기도 했다. 또 지난 12월4일에는 인근 단양군 어상천면 보건진료서를 찾아 의료혜택에서 소외돼 있는 70여 주민들을 진료해주기도 했다.
“암이란 병이 참 힘든 게 특효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완치도 어렵다는 점입니다. 나았다가도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요. 한 2, 3년은 지켜봐야 한다는데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은 ‘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허락하는 한 오래도록 환자들 곁에 있을 작정입니다.”
오 박사는 요즘 들어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문을 닫았던 병원을 다시 개업하는 일이다. 아직 완치를 장담하기는 이르지만 몸이 많이 회복돼 새싹돋는 내년 봄쯤이면 가능할 듯도 싶다. 빠졌던 머리카락도 많이 났고 몸무게도 평소의 77kg으로 돌아와 용기를 얻고 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