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7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10주년 기자간담회’. 폭력적인 송전탑 건설에 신음하다 세상을 등진 주민 2명과 백남기 농민을 위해 참석자들이 묵상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주민 302명, 한전 보상금 수령 거부 백서 1장(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약사)은 10년 투쟁을 1~6기로 나눠 약술했다. 2~4장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에너지 정책과 인권침해, 공동체 침해의 관점에서 조명했다. 마지막 5장에는 주민들의 법정 최후진술과 농성장 일지, 육필 편지와 탄원서, 미술작품과 웹자보, 팻말과 펼침막 도안을 가지런히 모았다. 밀양 송전탑 관련 논문의 목록도 따로 추렸다. 백서와 함께 밀양 송전탑 관련 기록은 부산대 ‘SSK 로컬리티 기록화사업팀’이 만든 웹사이트(mta.localityarchives.org)에서도 자세히 볼 수 있다. 백서가 삼단 같은 여인의 머리처럼 검고 촘촘한 활자로 밀양 10년을 빼곡히 채웠다면, 사진집은 밀양 주민들의 삶과 투쟁, 그리고 다시 삶을 이어가는 현장을 생생히 보여준다. 수확한 대추를 상자에 담는 할머니의 환한 웃음을 담은 컬러사진과 밭 한가운데 서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이 사진집의 처음과 마지막을 차지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지난 10년은 투쟁하기 위한 삶이 아니라 삶을 위한 투쟁이었다는 진실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날 대책위는 새로운 10년을 준비한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돈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 철탑을 뽑아내고, 핵발전소를 이 나라에서 몰아내고 싶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과 ‘정의’입니다.” 대책위가 내놓은 5가지 활동 계획은 이렇다. 초고압 765kV 송전선로로 인한 피해 감시와 한전·정부에 책임 추궁. 에너지 3대 악법(전원개발촉진법, 전기사업법, 송·변전설비 주변 지역의 보상 및 지원법) 개정 운동. 전국 초고압 송전선로와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과의 연대. 밀양 마을공동체의 주민 화합. 자본과 국가 폭력에 신음하는 이들과의 연대. 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는 “마지막 철탑이 뽑히는 날까지 어르신들과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10년 싸움의 고통은 여전히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2008년부터 최근까지 밀양 송전탑 투쟁과 관련해 모두 383명이 입건됐다. 이들 가운데 주민·활동가 69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 집행유예(14명)와 벌금형(39명) 선고가 잇따랐다. 밀양 주민 첫 무죄판결 확정 지난 12월10일에는 의미 있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기소된 주민 가운데 처음으로 무죄판결이 확정된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기소된 강아무개(41)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강씨는 2013년 11월19일 경남 밀양시 단장면 96번 송전탑 건설현장 진입로에서 경찰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설치된 대나무 울타리를 경찰이 제거하려 하자 울타리에 매달렸다. 끌려나가던 강씨가 몸부림을 치다 경찰의 얼굴을 발로 한 차례 걷어찼다는 게 기소 이유였다. 1심 재판부는 강씨의 행위가 소극적인 저항행위에 불과한데다 형법(제20조)에서 정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고 항소심과 대법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12월26일 밀양에서는 송전탑이 지나는 4개 면 주민들이 마을별로 행진을 벌인 뒤 삼문동 문화체육회관에 모여 문화제를 연다. 그들은 매일 외치고 있다. 그들은 지지 않았다고 소리치고 있다. “밀양 주민들은 이미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승리할 것입니다.” 빽빽할 밀(密), 볕 양(陽). 눈물을 타고 전기가 흐르는 곳, 밀양이 돌아왔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