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딸들을 짓밟지 말라!
등록 : 2001-12-12 00:00 수정 :
수은주가 뚝 떨어진 12월7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는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불구하고 일군의 여성들이 모여들었다.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11월25일∼12월10일)을 맞아 여성계에서 여러 행사를 벌였으나 이날 이곳만큼 눈물바람을 일으킨 행사도 없었다. 여성장애인 폭력 피해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가 끝나고 5분 발언대에 오른
이학분(43)씨는 “이 자리에 서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우리의 딸들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가정과 사회에서 당하는 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며 그의 모녀가 겪은 일을 밝혔다.
스물두살난 이씨의 딸 임아무개(정신지체 3급)씨는 한 동네에 사는 집안 삼촌뻘인 50대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지난 10월 초 엄마 이씨는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됐고, 딸은 처음에는 완강히 고개를 젓다가 결국 모든 걸 털어놓았다. 가해자는 9월 말 동네 가게에서 과자를 사먹고 나오던 임씨를 끌고가 10월 초까지 다섯 차례 이상 성폭행했다. 남자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죽인다고 위협해 상황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임씨는 끔찍한 공포 속에서 계속 폭행을 당해온 것이다.
병원 진단 결과 임씨는 자궁파열 위험에 처해 있었고, 머리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난폭하게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가해자는 구속기소된 상태이나 가족을 동원해 온 동네에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다. 여자애가 원래 행실이 문제가 있었다, 돈을 노리고 그렇게 했다는 식의 ‘전형적인’ 내용이었다. 이씨는 “그러면서 뒤로는 얼마면 합의를 해주겠냐고 물어오고 합의 논의중이라는 이유로 재판도 두 차례나 연기됐다”며 “딸하고 함께 혀깨물고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합의하거나 굴하고 싶지 않다”고 울먹였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에서 최근 신고된 45건의 피해사례를 분석한 결과, 피해유형에서는 상습적인 성폭행이 가장 높은 비율(73%)을 차지한다. 발생장소는 주로 집과 동네근처 등 생활 근거지(89%)이고, 가해자는 아는 사람이 대부분(93%)이다. “내 딸을 성폭행하고도 죽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가요? 인식능력이 떨어지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범죄입니다.”(문의: 02-3675-4465)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