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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부대가 아니라 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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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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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세계화를 부르짖을 때 귓등으로도 듣지 않다가 급기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게 되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정보화사회 어쩌고 하며 인터넷이니 디지털이니 벤처니 할 때 콧방귀도 뀌지 않다가 급기야 컴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 복잡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해지지 않을 수 없다. 뒤로 한참을 처져 앞서 달린 사람들의 먼지조차 가물가물하니 불안한 심정을 넘어 가히 자포자기의 심리가 되고 만다.

네트워크 세상에 시비걸기

다른 세상을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가 어째 너무 빠르고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낙오한 자의 게으른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어쩌다 손에 넣은 휴대폰조차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으니 정보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는 그럴듯한 예언에도 주눅이 들다 못해 협박처럼 들린다. 그런 위협이 제대로 먹혔는지 초고속인터넷망이니 IT(정보기술)산업이니 하며 정보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정부의 초미의 관심이며 신문마다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거리에는 어린아이까지 휴대폰을 들고다니고 게임산업이 번창하며 인터넷으로 장을 보았다는 아줌마가 대견스럽게 소개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정보화사회로 진입하는 것이야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며 잘못된 일도 아니다. 정보화사회의 관건은 잘 구축된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를 유기적으로 재조직하는 데 있다. 생산과 소비와 유통이 빠르고 원활해지며 문화의 생산과 소통이 활발해지는 것은 그만큼 더 역동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니, 이른바 정보인프라를 통해 사회의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네트워크의 핵심은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실체 역시 없다. 비가시적 실체로서 온라인은 산업과 문화의 물적 토대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산업과 문화의 생산과 소비는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정보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생산과 소비의 경제효과가 없지 않다. IT산업에서 보이듯이 그 자체로 경제규모의 외형을 부풀릴 수 있다.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터넷 콘텐츠 사업이나 게임오락 사업 역시 경제적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온라인은 가시적인 실체처럼 보인다. 그뿐이 아니라 동일한 이미지와 문자메시지가 가능한 휴대폰이나 3차원적 그래픽으로 무장된 인터넷의 세계에서 보면 이미 네트워크의 재조직을 위한 일상적 토대가 구축된 듯이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흔한 이메일 주소 하나 갖고 있지 못한 입장에서 보자면 그게 꼭 그렇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거리에 모든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휴대폰을 들고다닌다고 해서 산업 혹은 문화의 생산성이 상승되는 것일까? 앉은 자리에서 물건을 사고 팔고 정보를 얻고 전하는 일이 정말 삶의 구조를 더 편하게 만드는 것일까? 어쩌면 정보의 소통에 집중된 이러한 현상들은 엉뚱하게 다른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왜곡·전이되어 나타나고 있을지 모른다. 예를 들면 서로 별 관련성이 없어보이는 인문학의 위기와 출판계의 불황, 생산직의 기피현상과 중소기업의 구인난, 농촌의 몰락 등등을 살펴보면 정보와 산업과 문화에서 차지하는 생산과 소비의 비중이 오히려 낮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가 유통과 소통의 방법론에 매몰된 나머지 생산의 주체가 사라지고 소비의 방향을 상실한 것은 아닌가? 현실세계의 산업적, 물적 토대인 생산의 메커니즘을 상실해가는 이유를 몽땅 모두가 뜬구름 잡는 세상으로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물적 토대를 상실한 가상의 세계에 대한 지나친 집중이 생산과 소비의 역할, 문화적 생산방식의 역전이라는 사회문화적 현상을 가져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다시 떠올려보는 이광수의 개조론

얼핏 요즈음 정보화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회현상을 보면서 우리에게 현대가 시작될 무렵에 등장했던 개조론을 떠올리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회발전의 물적 토대가 구축되지 않았던 조선사회에 등장한 개조론은 이광수의 논리에서 보이듯이 엉뚱하게도 정신적 개조 운운하는 것이었다. 식민사회의 위기 속에서 개화지상주의자들이 내세웠던 정신적 개조란 물질의 덧없음을 내세우고 현실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보다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도덕을 앞세우는 것이었다. 관념적 개조론은 현대사회의 핵심동력이 물질적 토대에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던 결과이다.

물질이 없는 정신이란 실력도 없이 의지만 굳센 축구선수와 다를 바 없으며 생산이 없는 소통이란 텅 빈 고속도로와 다름이 없다. 정보화사회의 관건이 소통의 무차별적 확산과 속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사회는 정보와 문화와 산업의 생산과 소비가 물적 토대이다. 밥 먹여주는 것은 쌀이지 푸댓자루가 아니다.

김진송/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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