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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원하는 게 꼭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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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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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달콤쌉싸름한 가면놀이, 진실게임에 관한 진실

사진/ 진실게임은 원초적 본능의 1막 1장이다. 영화에서 진실 게임을 벌였던 마돈나.
진실게임에 관한 진실

마돈나의 <진실 혹은 대담>이란 영화에 보면 마돈나가 동료 친구들과 진실게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자신의 차례에 술래가 되자 진실쪽을 택하는데 친구들은 그녀에게 “태어나서 가장 사랑한 남자가 누구”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그녀는 술을 한 모금 쭉 들이켜고는 주저없이 ‘숀 펜’이라고 시원스레 대답한다. 숀 펜은 주먹 세고 성질 더럽기로 이름난 할리우드의 배우이자 마돈나의 전 남편인데 그런 그를 그녀는 몹시 사랑했었나보다.

H 감독의 ‘악명높은 진실게임’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해보았을 진실게임에서 재미있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쪽을 택한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차례가 되면 처음 키스해본 남자라든가 화장실의 무용담 혹은 비행기 내에서의 은밀한 유혹 같은 진한 이야기 등을 내놓으며 “나도 이랬어” 하는 히든 카드와 쇼킹한 무용담으로 주위 사람의 ‘야코’를 죽이는 것이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꼭 진실일까?

오히려 진실게임은 사람들이 타인과 느끼는 벽이 얼마나 두터운지, 동시에 이를 넘어선 자기 개방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침잠해 있나 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외모가 출중하다거나 서로 닮은 접근성의 원칙 외에도 자기 개방을 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느끼는 때가 많다고 한다. 즉 진실게임은 야금야금 그 사람의 사생활에 침투해서 어느덧 서로에게 호감이라는 교두보를 만드는 가장 빠른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진실게임에서 가장 악명 높기로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명감독인 H 감독이 있다. 그의 진실게임은 정교하고 잔인하기로 이름이 높은데 예를 들면 이렇다.

“지금 6·25 같은 전쟁이 터졌다. 적군이 물밀듯이 내려와 당신네 집안에 들이닥친다. 그리고는 당신을 인질로 잡아 머리에 총을 겨누고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자 이 자리에서 내 손에 죽든지 이 중에 아무나 하나와 자든지 해야 한다. 어떡할래?’”

그러면 술에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은 대부분 죽느니 누구와 자는 쪽을 택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렇면 감독은 빙긋 웃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본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중 누구와 자고 싶나?”

심지어 샤를르 테송 칸영화제 집행위원장하고도 프랑스어로 진실게임을 했다는 이 전설의 사나이는 술만 먹으면 사람들에게 이렇듯 정교하고 생생한 질문으로 자신의 욕망을 되짚어보게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고보니 그의 영화 자체가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에 대한 거대한 진실게임은 아니었던가?

아무튼 그 게임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한참 웃었던 적이 있었다. 예를 들면 세련되고 지적으로 보이는 여자 기자가 내 보기에는 촌티가 줄줄 나는 아저씨를 고른다든가, 혹은 그 반대로 평소엔 조디 포스터를 제일 좋아한다던 사람이 사실은 마구잡이로 자빠뜨릴 수 있는 타입의 여성을 성적 판타지로 삼는다든가.

관음하고 관음당하는 난장 한 마당

진실게임은 우리가 남의 사생활을 일시적으로나마 관음하고 자신 역시 그 관음의 대상이 됨으로써 느끼는 쾌감이 가장 합법적으로 의식의 틈을 비집고 올라온 난장 한 마당이다. 룸살롱에서 게임에 질 때마다 옷 벗기 내기를 하며 노는 것과 뭐 그렇게 다르냐고 할지 모르지만, 진실게임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역설적으로 인간관계를 유희화하지 않고 진실해지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관한 통찰이다.

그러니 자신이 너무 진실해서 진실게임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 진실게임은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얼굴과 얼굴을 부대끼며 관계맺고 싶어하는 원초적 본능의 1막1장,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소동처럼 우리가 대인관계에서 덮어쓰고 있는 가면을 벗어버렸을 때의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쌉싸름한 가면놀이이다.

심영섭/ 임상심리학자 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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