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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빌딩숲 쌓아올린 노동자의 푹 파인 삶

④ 건설노동자의 굴삭기: 허물어진 터를 메우고 파헤쳐진 땅을 다독이는 30년 경력 강정애 굴삭기 기사… “우리를 사장이라 부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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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07 21:00 수정 : 2015-10-09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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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씨가 팔을 높이 들어올려 땅을 힘껏 내리친다. 펄 흙이다. 팔 끝에 달린 바가지로 물기 품은 흙을 한 삽 들어올린다. 몸통을 왼쪽으로 돌려 흙을 쏟아붓는다. 허리를 180도 돌려 다시 땅을 내리친다. 몸을 앞뒤, 좌우로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흙을 퍼올린다. 쌓인 흙이 산을 이룬다. 바가지를 들어 흙이 무너지지 않게 손등으로 살며시 밀어올린다. 쓰다듬듯 토닥거린다. 바가지가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간다. 무언가를 살포시 담는다. 포구에서 스며든 바닷물이다. 배수로에 쏟는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배곧신도시 지하 2층, 지상 7층 상가 신축 공사 현장. 강정애(53) 기사의 애인이자 분신인 굴삭기(삽차)가 지하 8m 땅속 세계를 종횡무진 누빈다.

손끝에서 빚어지는 32개 굴삭기 동작

지하에서 흙을 넘겨받은 중형 굴삭기가 흙을 옮긴다. 지상에 있는 대형 굴삭기가 큰 바가지에 흙을 퍼담는다. 삽질 열 번 만에 흙을 가득 실은 5.5t 트럭이 어디론가 떠난다. 짐을 실은 덤프트럭이 들어온다. 바닥에 잡석을 쏟아놓는다. 자갈과 시멘트 조각들이 지하로 굴러떨어진다. 굴삭기 바가지가 잡석을 반쯤 담아 흩뿌린다. 쌓여 있던 자갈이 넓게 펼쳐진다. 바가지를 빗자루처럼 좌우로 쓴다. 울퉁불퉁한 바닥이 평탄해진다. 진흙 덩어리가 떨어져 있다. 갯벌에서 게를 잡아채듯 삽을 들어 진흙을 살짝 낚아챈다. 바가지를 좌우로 흔들자 잡석이 떨어지고 진흙만 남는다. 굴삭기가 쌀을 일어 돌을 골라내는 조리로 변신한다.

배관공 두 명이 7m 높이 에이치(H) 빔 위를 걷는다. 강관을 연결해 용접한다. 굵은 쇳덩어리인 강관은 흙이 붕괴되지 않도록 버팀목 구실을 한다. 흙막이공사가 끝나면 바닥에 철근을 박고 콘크리트를 부어 본격적으로 건물을 올리게 된다. “모든 공사의 기초가 흙막이공사입니다. 기초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방수가 안 되고 균열이 가는 부실 시공의 원인이 되는 거죠.” 한 늙은 배관공이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한다.

어느덧 점심시간. 노동자들이 현장 사무소로 쓰이는 컨테이너로 모여든다. 배관공, 기중기·굴삭기 기사들이다. 인근 식당에서 주문한 점심이 배달된다. “우리 강 여사 일 잘하지. 타워크레인에는 여자들이 간혹 있지만, 굴삭기 기사는 드문데, 강 여사가 웬만한 남자들보다 훨씬 낫다니까.”

지하 공사장에서 정애씨가 헐레벌떡 뛰어 올라온다. 붐대(굴삭기의 팔·늘어나고 줄어드는 부분)를 움직이는 실린더(기통·피스톤이 왕복 운동을 하는 원통 모양의 장치)가 말을 듣지 않아 오전 작업에 애를 먹었단다. 바가지가 흘러내려 정교하게 작업을 하지 못한 것이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굴삭기를 정비한다. 크레인 기사가 20kg이 넘는 실린더를 들어 공사장 바닥에 내려준다. 망치로 실린더를 고정해놓은 핀을 뽑는다. 점심을 일찍 먹은 동료들도 합세한다. 40분을 꼬박 매달려 실린더를 교체했다.

정애씨가 굴삭기 운전석에 앉는다. 철판을 잘라 용접한 맞춤형 신발장에 흙투성이 안전화를 벗어놓고 실내화로 갈아신는다. 레버를 잡은 양손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그녀의 손끝에서 32개의 동작이 만들어진다. 바가지가 잡석을 조금 건진다. 물을 살짝 퍼올린다. 힘이 없어 흘러내리던 바가지가 손에 착 달라붙는다. 이제야 그녀의 분신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땀범벅이 된 얼굴로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다시 지하 세계로 향한다.


삽날로 사과 쪼개기는 손쉬운 작업

‘포클레인’은 굴삭기를 만드는 프랑스 회사 이름이다. 한국에 처음 상륙한 녀석인데 ‘바바리’처럼 보통명사가 됐다. 정애씨 굴삭기의 신발은 바퀴가 아니라 무한궤도다. 펄이나 산길을 도로처럼 운전하기 위해 영국에서 고안됐다. 장갑은 바가지라고 불리는 버킷로 땅을 파고 흙을 나르는 가장 흔한 장비다. 암석을 깰 때는 브레이커, 건물을 부술 때는 크러셔 장갑을 쓴다. 버킷이 고무장갑이라면 브레이커나 크러셔는 권투장갑쯤 된다. “방송에서 김병만씨가 삽날로 사과를 쪼갰는데, 굴삭기 3~4년 하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산에 길을 낼 때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단을 잡거나 비스듬한 경사 각도를 만드는 일이 어렵죠. 정교한 작업은 오랜 숙련이 필요해요.”

정애씨 나이 스물넷, 1986년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해였다. 어릴 적부터 공구를 가지고 놀기 좋아했던 그는 서울에 올라와 고향 오빠에게 굴삭기를 배웠다. 조수 시절을 거쳐 부기사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들의 세계인 건설 현장은 여기사를 쉽사리 받아주지 않았다. 여자가 아침부터 현장에 들어오면 재수 없다고 했다. 면허증보다 실력이 먼저였지만 여자는 예외였다. 그녀는 면허증을 따 오롯이 실력으로 승부했다.

정애씨가 부기사로 받은 첫 월급은 14만원, 일반 회사 여직원과 비슷했다. 대신 생기는 게 많았다. ‘호박 구덩이’(일반 건물의 터)를 파러 가도 담배 한 갑, 장갑 한 켤레, 잡비 1만원을 ‘따박따박’ 챙겨줬다. 돈을 쓸 만큼 쓰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도와드릴 수 있었다.

딸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경력 단절’을 겪고, 다시 굴삭기 일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장비를 빌려 일하다 1997년 3200만원짜리 소형 굴삭기를 할부로 구입했다. 당시 건설회사는 굴삭기 기사가 한 달 일하면 두세 달 뒤에 3~5개월짜리 어음을 끊어줬다. 일해주고 7개월 뒤에야 현금이 손에 들어왔다. 굴삭기를 구입해 처음 들어간 건설현장. 회사가 어음을 왕창 발행해놓고 부도를 냈다. 할부금, 어음, 굴삭기 유지비, 생활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4년 동안 빚을 갚기 위해 밤낮으로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야 했던, 그녀 인생의 첫 번째 시련이었다.

10년 뒤 정애씨는 조그마한 아파트를 장만했다. 2010년 가을, 그녀가 일하던 현장의 원청회사 대주건설이 부도가 났다. 투입했던 장비까지 5천만원을 떼였다. 빚을 갚기 위해 송도신도시에 들어가 주야로 일했다. 어느 날 새벽,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다 잠이 들었다.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차를 들이받았다. 치료비와 합의금을 물어주기 위해 아파트를 팔았다. 살맛이 나지 않았던, 그녀의 두 번째 시련이었다.

지천명이 되어서야 만난 노동조합

그녀가 다졌던 빌딩은 우뚝 솟았는데, 그의 인생은 곤두박질쳤다. 그녀의 땀방울을 적신 도시는 마천루가 되었는데, 그의 삶은 바닥을 쳤다. 아무 잘못도 없이 돈을 떼이고, 삶이 파였는데, 그녀 곁에 대한민국 정부는 없었다.

대주건설 부도 때였다. 현장에서 보니까 같은 기사인데 노조원들은 해결이 되는 것 같았다. 동료들에게 물어물어 노조를 찾아갔다. 여자 혼자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는데 누군가 내 울타리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조합 활동 하면서 혜택을 많이 봤어요. 어디 가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현장에서 잘못된 점 얘기해도 불이익 당하지 않도록 노조가 힘이 돼주거든요. 체불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조가 있어서 체불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건 정말 큰 재산이에요.”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에 이르러서야 만난 노조(전국건설노동조합)가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정애씨는 얼마 전에도 돈을 떼였다. 한 현장에서 월대(건설기계 월 사용임대)로 일하다 다음 현장에서 일할 때까지 공백 기간 동안 날일 거리(일 사용임대)로 하루이틀 일을 한다. 며칠 있다가 입금해주겠다고 해서 기다리다 전화를 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미루다 연락이 끊긴다. 잡으러 가면 일을 못한다. 그녀는 서비스했다 치고, 언젠가 얼굴 보면 술 한잔 사라고 하고 만다. ‘노가다’의 현실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4년 체불임금은 1조3천억원으로 2009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임금 체불 진정 건수는 19만5783건으로 사상 최다였는데, 2015년 7월 기준 11만6916건이 접수돼 지난해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7월 말까지 노동부의 지도를 통해 해결된 금액 비율은 44%로 2008년 이후 가장 낮았다. 일을 시키고 돈을 떼어먹은 일이 20만 건에 육박했지만 구속된 사업주는 28명뿐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정애씨와 같은 건설기계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어서 정부의 체불임금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등록된 기계가 굴삭기 13만9천 대, 덤프트럭 5만5천 대, 레미콘 2만 대다. 이들 중 장비를 몇 대씩 가지고 기사를 고용한 ‘사장님’도 일부 있지만, 정애씨처럼 굴삭기 한 대로 일하는 ‘노동자’가 대부분인데, 정부는 이들을 개인사업주로 취급한다.

“우리는 사장님이라는 말을 무지 싫어해요. 기사를 부리는 게 사장이고, 우린 기사예요. 노동자라고요.” 소사장, 지입차주, 개인사업주…. ‘사장님’이라는 이름 뒤에 4대 보험, 퇴직금, 각종 수당이 사라진다. 사용자의 책임과 의무가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정애씨가 ‘사장님’이라고 불리길 싫어하는 이유다.

FTA로 굴삭기 기사들은 더 심한 경쟁에

소래포구 너머로 해가 뉘엿거린다. 깎고 파고 덮고 다지기를 계속하던 삽날이 멈춘다. 질척거리던 갯벌이 평탄한 자갈밭으로 변했다. 정애씨가 애인과 이별하는 시간, 내일의 노동을 위해 둘 모두에게 필요한 휴식이다. 한동안 정애씨는 하루 8시간 노동을 했다. 하지만 건설 경기가 나빠지면서 스리슬쩍 9시간으로 늘었다. 일거리가 줄어들어 10시간씩 일하겠다는 기사들까지 생겼다.

‘이명박 4대강’ 공사로 건설기계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지난 7월23일 국토교통부는 덤프트럭·콘크리트믹서트럭·콘크리트펌프카를 공급 과다 장비로 지정해 2년간 매년 등록 대수의 2%만 신규 등록을 허가하기로 했다. 장비 과잉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기사들을 위해 공급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굴삭기는 제외됐다. 미국 사업자가 한국에서 굴삭기 대여업을 할 수 있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12장 ‘국경 간 서비스’ 항목 때문이다. 국제통상 마찰 때문에 1년 뒤에 다시 논의를 한다. 그런데 2년 내에 굴삭기 9천 대가 추가 공급된다. 이씨 때문에 건설기계를 만드는 두산·현대·볼보는 떼돈을 벌고 굴삭기 기사들은 길거리에 나앉는다.

정애씨가 그녀의 분신과 헤어져 집으로 향한다. 내년이면 굴삭기와 연애 30년이다. 판자촌 있던 자리는 아파트가 솟았고, 허허벌판은 빌딩숲을 이뤘지만, 정애씨와 동료들의 삶은 판잣집 신세 그대로다. 파헤쳐진 땅을 다듬고 허물어진 터를 메우는 노동이 집 짓는 이들의 파인 삶을 어루만지는 날은 언제쯤 올까?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

*국립국어원은 '굴삭기'가 일본어투 용어라는 이유로 '굴착기'로 순화해서 쓸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굴삭기란 단어를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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