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일산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김동현·신동헌·김형준씨(왼쪽부터). 이들은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외면한 <귀향>에 자신들이 모은 돈을 영화 투자금으로 내놓았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작은 카센터를 운영하는 김동현(41)씨가 영화 <귀향>의 시나리오를 다 읽은 뒤 덮었다. 그동안 그는 위안부 문제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까지 죽였나?”하며 놀랐다고 한다. 그제야 자신의 13살 딸의 나이와 14살에 끌려간 영화 속 정민이의 나이가 겹쳐 보였다. 그는 고심 끝에 아내에게 말했다. “이 돈 없어도 우리 살지?” 카센터 일 외에 가욋일을 더 해서 어렵게 모은 돈이다. “대출이자를 갚을 수 있고, 집 평수를 약간 넓혀갈 수도 있는 정도”의 돈이었다. 아내는 오히려 남편이 <귀향>이란 영화를 얘기하는 게 신기하다. 딸이 지난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과제를 받았을 때 아내는 딸과 함께 위안부 피해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귀향>의 제작발표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아내는 그때 “이 영화가 만들어지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불쑥 이 영화에 관한 얘기를 꺼낸 것이다. 남편은 카센터의 고객인 <귀향>의 임성철 PD로부터 이 영화의 제작 상황을 들었다. 김씨는 제작비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귀향>에 3500만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우리에게 큰돈이죠. 하지만 이 영화가 역사적 자료가 될 수 있으니 오늘이 아닌 ‘내일’을 보고 투자했습니다. (선택을) 믿고 함께해준 아내가 고맙죠.” 그래서 기자는 ‘이상한 인터뷰’를 하는 중이다. “내가 살면서 영화에 투자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람들, “먹고살기에도 빠듯하다”는 사람들, 영화 제작과 무관한 삶을 살던 이들과 ‘영화 투자’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관련된 사람이 없어 관심이 없었는데… 신동헌(41)씨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가깝게 지내던 김동현씨의 얘기를 듣고 <귀향>을 알게 됐다. 그는 결혼자금으로 모아둔 돈의 일부(1천만원)를 <귀향>에 내놓았다. 그는 누수 여부를 탐지해 이를 수리(배관 설비)하는 일을 한다. 투자는 손실의 위험을 동반하는 법이다.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읽었어요. 짠했습니다. 조정래 감독님이 13년간 이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는데 내가 투자해서 만들어지면 더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조카가 있습니다. 조카와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그 일을 당한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스포츠센터의 김형준(42) 관장은 보디빌딩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트레이너다. 주변에서 이 영화에 대한 투자를 말린 이도 있었다. “상업적으로 성공할 소재가 아니다”라는 이유였다. 그는 3500만원을 이 영화에 투자했다. 주택청약을 위해 넣은 돈을 빼내 투자금에 보태기도 했다. 그는 “가치 있는 일에 동참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내가 희생하지 않고는 안 되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 4~6월 <귀향> 촬영이 진행될 때 일본군 장교 역을 맡아 보조출연까지 했다. 그도 많은 사람들처럼 위안부 문제를 “전쟁 중에 일어난 범죄 정도로 알았고, 나와 관련된 사람이 없으니 관심이 크지 않았다”고 했다. 이제 그는 이 문제를 바라보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자신의 스포츠센터에 잠시 다녔던 <귀향>의 임성철 PD를 통해 시나리오를 받아 읽은 뒤 “울었다”고 한다. “초경도 하지 않은 소녀를 데려가 하루에 수십 명의 일본군을 받도록 성노예를 강요했어요. 병에 걸리거나 하면 불에 태워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아픈 역사이지만 역사의 진실을 알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묻히면 어떡하나’란 생각을 하게 됐죠. <귀향>이 이 문제를 더 공론화하고, 일본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는 계기가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임 PD는 이들 3명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 이번에 영화 PD를 처음 맡은 그는 몸이 붓고 뼈가 80~90대 노인 수준으로 약해지는 ‘쿠싱병’이란 희귀병을 앓으면서도 제작비 마련을 위해 뛰어다녔다. 촬영 초반, 시민들의 영화 제작 후원금이 고갈됐을 때 카센터를 운영하며, 배관 설비를 하며, 트레이너를 하며 모은 돈을 보내준 이들의 도움 등으로 고비를 넘겼다. “그분들에게 제작 상황을 말씀드렸을 때 불편한 기색으로 ‘아, 됐어’라고 했으면 저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와 깊은 사이도 아니었던 분들이 ‘왜, 무슨 일 있어?’란 표정으로 고민을 해주셨던 겁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외종손인 임 PD는 그들의 따뜻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김동현씨, 신동헌씨, 김형준씨가 대기업 투자·배급사들이 시나리오에 대한 투자를 결정할 때 적용하는 평가 기준을 아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 투자·배급사들은 평가 항목별로 점수를 매겨 투자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혀 다른 일을 해왔던 이들 3명이 <귀향>에 투자를 결심한 기준은 거의 일치했다. ‘어린 소녀들의 얘기가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영화도 이대로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픈 역사이지만 진실을 알려야 한다, 그래서 꼭 개봉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어떤 수치로 계량화할 수 없는 마음들 김동현씨는 시민의 힘으로 <귀향>이 만들어지는 움직임에 대해 “(우리들의) 조그만 반란”이라고 표현했다. 그 작은 반란은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과학적인 투자 평가 기준이 아니라,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느끼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점수나 어떤 수치로 계량화할 수 없는 그 마음들. 글·사진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한겨레21>은 <귀향>의 제작비 마련을 위한 1차 뉴스펀딩에 이어 후반작업비와 전국 상영 비용을 마련하는 2차 뉴스펀딩(‘우리 딸, 이제 집에 가자’)을 포털 사이트 ‘다음카카오’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제작비를 마련하고 전국적인 극장 상영까지 직접 만들어가는 시도는 영화계에서 처음 진행되는 문화운동입니다. 이 기사는 <한겨레21> 독자를 위해 뉴스펀딩에 게재되는 글을 다듬어 실은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