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지만 공개적으로 스킨십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짜릿하거나 또는 황당하거나
'몸의 정치학'이 90년대 이후 각광받기 시작했지만 그게 사람들의 일상과 겹쳐가는 현상을 찾기는 무척 어려웠다. 혼음이나 프리 섹스와 차원을 달리하는 성적 유희이면서 성의 엄숙주의를 발랄하게 공격해 들어가는 섹슈얼게임이 은근히 퍼져나가고 있다. 키스게임은 몸에 대해, 진실게임은 각자가 집착하고 숨겨온 생각, 마음에 대해 이제와 다른 태도를 취하게 한다. 음습함보다 경쾌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들 게임의 진실을 찾아가본다.
그냥 게임으로 끝나고 마는 ‘쿨’함
한효육(31·가명)씨는 자신을 ‘변방의 B급 작가’라고 부른다. 영화·방송·연극·출판 등 문화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보고 듣고 느낀 걸 이런저런 매체에 싣는 대가로 밥벌이를 하기 때문이다. 1차 생산자의 주변을 맴돌며 ‘기생’해 사는 스스로를 연민의 눈으로 쳐다보면서도 그 편안함에 젖어산다는 그는 언젠가 직접 문화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꿈을 아주 가끔씩 꾼다. 그의 사생활 역시 아웃사이더적이어서 결혼에 대한 판타지와 두려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딱히 애인은 없지만 일로 만나게 되는 여자들과 약간의 성적 긴장감을 갖고 친교를 나누는 정도에 자족하면서 지내는 중이다. 이런 한씨가 애인을 갈구하면서도 단 하나의 애인에 대해 가져야할 충성심에 공포증을 유난히 느끼기 시작한 건 대략 1년 전쯤이다. 이건 은밀하지만 공개적인 섹슈얼게임에 빠져들기 시작한 때와 맞물려 들어간다.
1년 전 이맘때였다. 어두워지기 전에 시작한 술자리가 대충 정리되고 남자 셋, 여자 둘만 남았을 때, 한씨를 포함한 일행은 홍대 앞 클럽으로 자리를 옮겼다. 몸을 흔들며 취기를 수습한 뒤 맥줏집으로 차수를 바꿔 다시 알코올에 젖어갈 쯤,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희한한’ 게임이 시작됐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승자와 패자를 정한 뒤, 나머지가 특정 부위와 방식을 정해주면 승자가 패자에게 그대로 키스하는 놀이였다. 예컨대 “왼쪽 볼에서 윗입술까지 10초간 밀착 활강해”하는 식이었다. 아직 상대방을 잘 모르는 이성에게 입술을 들이민다는 짜릿함과 ‘잘못 걸리면’ 시커먼 남자와 키스를 나눠야 한다는 당혹감이 교차하면서 한씨는 묘한 살떨림을 느꼈다. 처음에는 주뼛주뼛 망설이다 과감히 입술을 들이대는 남녀의 모습이 재밌었지만, 쉼없이 가위바위보하고 입술을 비벼대는 자기들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 주위 시선이 더욱 놀랍기도 했다. 이건 섹스하는 쾌감과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었다. 한씨는 성에 대한 무거운 엄숙주의를 탈탈 털어내는 듯한 느낌과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훨씬 동성의 입술을 자연스레 접하는 모습에서 신선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후유증 없이 게임이 그냥 게임으로 끝나고 마는 ‘쿨’함과 누구나 속마음에 묻어둔 욕망과 일탈심리를 게임이라는 룰을 통해 서로 확인할 수 있는 편안함이 좋았다. 어렸을 때 자위는 나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느꼈던 안도감 같은 거랄까. 대학생들 사이의 ‘왕놀이’
아무튼 이후 한씨는 상대를 달리하며 가끔씩 이 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 사이 “이거 우리 짝지어서 자러 가는 거 아냐”라는 어떤 여자의 ‘질퍽한’ 농담이 게임 중간에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체로 사람들은 공개된 장소에서 이런 게임을 서슴없이 할 수 있다는 해방감에 젖어드는 것으로 만족해했다.
혹시나 성희롱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많아 ‘거부감 없는 사람들끼리 자발적으로 한다’라는 원칙을 정했지만, 탈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한달여 전쯤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른 분위기에서 놀이를 마쳤을 때다. 며칠 뒤 한씨에게 20대 후반의 한 여자에게서 메일이 날아들었다. 편하고 좋은 사람들이어서 거부감은 없었으나 혹시 자기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그런 것 아니었느냐는 항의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한씨는 적잖이 당황했다. 여자와 남자의 처지가 이 사회에서는 다르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듯했다.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냈다.
“…반성을 하게 되네요. 섣부른 짓을 했다기보다 상대방의 처지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거 같아서. 그날 게임의 정도가 과도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은 ○○씨 메일이 아니더라도 저도 했어요. 나 스스로도 그렇고 약간 과열 양상을 보여 저 자신도 당황한 측면이 있어요. 우연한 기회에 이런 종류의 게임을 하게 됐는데, 그 느낌이 참 좋았어요. 이성과 동성의 구분을 인위적으로 없앴다는 것, 이성 사이의 호기심을 게임이란 방편을 빌려 확장시킨다는 것, 어떤 비밀스런 유대감을 가짐으로써 좀더 스스럼없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 뭔가 해서는 안 될 것을 하는 즐거움 등등의 이유로요….”
한 차례 메일을 주고받고 ‘오해’를 풀기는 했으나 1년 만에 처음 생긴 후유증 때문이었을까, 한씨는 이 놀이에 시큰둥해졌다. 그러다가 이런 종류의 게임이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우연히 어울리게 된 대학생들이 ‘왕놀이’라 부르는 이 게임의 ‘보편성’에 대해 들려줬다. 왕과 여러 숫자가 적힌 제비로 뽑기를 한 뒤 정해진 왕이 예컨대 “3번과 7번 키스해”라고 명령하면 그대로 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물론 왕이 섹슈얼한 명령만 내리는 건 아니지만 MT에서 곧잘 하는 놀이라고 했다. 한씨는 또 얼마 전 동네 맥줏집에서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녀 넷이서 스스럼없이 이 놀이를 하고 있는 걸 목격했다. 이 두 가지 일은 한씨에게 서운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안겨줬다. 아웃사이더의 삶이 누릴 수 있는 보헤미안적 놀이를 은밀히 해왔다고 여겼던 한씨가 ‘역시 난 변방의 족속이야’라고 자조하게 됐고, ‘기성 세대가 잘 몰랐던 새로운 친교 방식이었구나, 역시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하다니까’하고 숨을 돌렸다.
정통 페미니즘과 급진적 페미니즘의 관점차
여성의 경우는 한씨와 또 다르다. 오래된 남자친구가 있고 학력이나 외모에서 늘 자신감 넘치게 사는 ‘커리어우먼’ 조은희(26·회사원·가명)씨는 지금까지 세 차례 키스게임을 해봤다. 처음에는 몹시 부담감을 느꼈지만, 3차례 하고 보니 예상보다 별것도 아니고 장난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끝말잇기나 007게임처럼. 하지만 이 게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또다시 이 게임의 참여 여부에 직면하면 어떡해야 할지 나름대로 오래 고민했다.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고, 가장 정치적인 것이 또한 가장 일상적인 것이라 여겨온 평소 소신 때문이었다. 그는 생각 끝에 평소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대학 동창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고, 그 친구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견을 밝혀왔다.
“첫째는 ‘정통 페미니즘’의 관점인데, 이걸로 보면 다소 문제가 있는 게임이야. 일반적으로 여성은 사랑과 섹스를 결합하도록 배우고 행동하도록 강요받는 사회에서 자라는데, 이 게임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장난으로 키스를 하는 게임이기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겠어? 따라서 현실의 부당함과 모순을 바꾸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게임은 남성의 성적 욕구와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임인 셈이지.
이와 달리 ‘급진적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게임이기도 해. 급진적 페미니즘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대해 달라는 요구를 넘어서, 인간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데 종국적인 목표를 두고 있기에, 키스게임은 급진적인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뿐더러, 나아가 페미니즘의 도구로서도 유용하게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즉, 원래 사랑과 결혼(육체적 피델리티)이 결합된 것은 근대에 들어서이며, 이 두 가지 결합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는 거리가 있기도 한 것이지. 누구에게나 키스 욕구가 있고, 더욱이 새로운 사람과 키스를 하는 은밀한 쾌감의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보면 급진적 페미니즘은 이 게임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기를 원할 것 같아.”
조씨는 두 가지 입장 가운데 일단 전자쪽으로 태도를 정했다. 하지만 사고의 깊이와 경험의 폭이 확장되면서, 후자로 변해갈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키스는 부담스러워”
지난 11월29일 늦은 밤,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ㅅ호프 한 구석에서 왕놀이게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까지의 여자 넷, 남자 셋. 숫자가 적힌 담배로 제비뽑기를 해 왕이 정해지자 지시가 떨어진다. “2번이 5번에게 프렌치 키스 15초”, “3번이 4번의 아랫입술을 3초간 깨물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진실게임을 했지만, 두명의 여성이 이 게임에 동참하는 대신 약간의 술을 벌주로 택해 매번 들이켜고 있다. 아무래도 키스는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자정이 조금 넘어 택시 잡기가 수월한 시간이 되어서야 술자리가 파했다. “우리 내일 아침부터 인사는 뽀뽀로 하자구.” 일행 중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이들이 농담 같은 약속을 하더니 각자 집으로 향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설은영
1년 전 이맘때였다. 어두워지기 전에 시작한 술자리가 대충 정리되고 남자 셋, 여자 둘만 남았을 때, 한씨를 포함한 일행은 홍대 앞 클럽으로 자리를 옮겼다. 몸을 흔들며 취기를 수습한 뒤 맥줏집으로 차수를 바꿔 다시 알코올에 젖어갈 쯤,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희한한’ 게임이 시작됐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승자와 패자를 정한 뒤, 나머지가 특정 부위와 방식을 정해주면 승자가 패자에게 그대로 키스하는 놀이였다. 예컨대 “왼쪽 볼에서 윗입술까지 10초간 밀착 활강해”하는 식이었다. 아직 상대방을 잘 모르는 이성에게 입술을 들이민다는 짜릿함과 ‘잘못 걸리면’ 시커먼 남자와 키스를 나눠야 한다는 당혹감이 교차하면서 한씨는 묘한 살떨림을 느꼈다. 처음에는 주뼛주뼛 망설이다 과감히 입술을 들이대는 남녀의 모습이 재밌었지만, 쉼없이 가위바위보하고 입술을 비벼대는 자기들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 주위 시선이 더욱 놀랍기도 했다. 이건 섹스하는 쾌감과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었다. 한씨는 성에 대한 무거운 엄숙주의를 탈탈 털어내는 듯한 느낌과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훨씬 동성의 입술을 자연스레 접하는 모습에서 신선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후유증 없이 게임이 그냥 게임으로 끝나고 마는 ‘쿨’함과 누구나 속마음에 묻어둔 욕망과 일탈심리를 게임이라는 룰을 통해 서로 확인할 수 있는 편안함이 좋았다. 어렸을 때 자위는 나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느꼈던 안도감 같은 거랄까. 대학생들 사이의 ‘왕놀이’

사진/ 키스게임은 몸에 대해 각자가 집착하고 숨겨온 생각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태도를 취하게 한다.(이용호 기자)

사진/ 숫자가 적힌 담배로 제비뽑기를 하는 젊은이들. 이런 식의 키스게임은 대학생들 사이에 '왕놀이'라는 이름으로 꽤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이용호 기자)
|
키스게임이 보편화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직접적인 스킨십이 없는 진실게임은 누구나 들어봤거나 해보았을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 진실게임은 키스게임에 비해 친교와 소통의 놀이라는 성격을 훨씬 짙게 가진다. 타자와의 경계없는 대화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속내를 투명하게 바라보게 해주는 적절한 기회이기도 하다. 진실게임에는 몇 가지 변주가 있지만 가장 흔한 게 ‘있다, 없다’는 유형이다. 술래가 “난 뭐뭐 한 적이 있다”거나 “난 이런저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보기’를 제시하면 나머지가 돌아가면서 자기의 경험이나 생각을 떠올려 “있다”와 “없다”는 두 가지 답 가운데 하나를 택한다. 술래와 일치하는 답이 나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벌칙을 받게 되며, 두 가지 답 가운데 어느 쪽이든 모두 같은 답이 나오면 술래가 벌칙을 받는다. 술래에게 벌칙을 줄 수 있게 하는 건 진실 고백의 수위를 모두와 맞춰나가기 위함이다. 강제력은 없지만 진실한 이야기만 한다거나 “이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여기에 평생 묻어두고 간다”는 게 게임의 전제다. ‘있다, 없다’보다 한 걸음 나아간 게 청문회식 게임이다. 술래를 정한 뒤 그에게 집중적으로 질문 세례를 퍼붓는다. 술래의 답변을 다 듣고 난 뒤, 나머지가 그의 진실성에 대해 ‘예’ 혹은 ‘아니오’라고 돌아가며 의견을 밝힌다. 이때 단 한명이라도 ‘아니오’라는 의견이 나오면 술래가 벌칙을 받게 된다. 성적인 소통의 강도로 따지자면 진실게임은 키스게임을 능가하기에 충분하다. 각자의 성적 경험담과 욕구를 서슴없이 털어놓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때 키스를 해본 적이 있다”는 수준에서 출발하지만 “이 자리에 키스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거나 “이 자리에 자보고 싶은 사람 있다” 등으로 강도가 점차 높아져 각자가 경험했던 독특한 성경험이 봇물처럼 쏟아지기 일쑤다. 강요하지 않아도 점차 상승하는 고백의 강도는 내밀한 경험담을 꺼내보이는 데서 나오는 쾌감과 무관하지 않다. 광고기획사에서 일하는 박수경(25·여·가명)씨는 한 술자리에서 진실게임과 키스게임을 잇따라 한 뒤 한동안 속앓이를 했다. 키스게임이 아니라 진실게임 때문이었다. “정말 진실해져서 내 깊은 속내를 드러내고 나서, 마음속에서 맴돌고 있던 그러나 공식적으로 표면화되지 않았던 단상들이 내 안에서 구체화되고 몇몇 사람 앞에서 표면화되었을 때, 일종의 정서적인 ‘충격’을 받았어요. 스스로의 감상에 젖어 며칠간 헤어나기가 힘들더라고요. 또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흥미나 호기심, 재미보다는 자기 속에 존재하던 미심쩍은 부분들을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의 카타르시스 또는 자기 학대를 위해 게임에 동참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성적인 ‘고백’ 이외의 것으로 범위를 넓히면, 진실게임은 “마음에 혼자 지니고 있기에 버거운 것들, 아프고 그립고 때론 너무 은밀해서 밝은 대낮엔 표현하기 어색한 것들”을 게임(과 술)을 빌려 함께 나누게 해준다. 성적인 고백만으로 게임을 제한할 경우에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나, 그만큼 비밀을 나눌 만한 상대들인가, 또 스스로에게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나, 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피할 수 없다. 진실게임을 진실되게 하고 난 뒤에는 보통 후유증보다 속시원함이, 상대방에 대한 서먹서먹함보다 친밀함이 느껴지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