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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열혈고딩들의 ‘역사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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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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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종수 기자)

“첨엔 저 혼자 뛰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먼저 나서요.”

서울 중경고등학교 박중현 교사는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중경고에 역사탐구반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 3월. ‘일제시대 남만주 철도’를 주제로 대학원 논문을 쓸 만큼 동아시아 현대사에 관심이 많았던 박 교사가 중경고로 옮겨오면서 만들어졌다. 애초 역사 따위는 고리타분하다고 여겼던 13명의 아이들은 점점 열혈 역사학도가 돼갔다. 박 교사는 “발로 뛰는 교육의 결과”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역사교과서 왜곡 규탄 집회에 몇번 참여했거든요. 구호도 따라 외쳐보고 유인물도 나눠주면서 느낀 게 많았나봐요.”

아이들은 집회에 참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적은 것에도 놀랐다고 한다. 유인물을 나눠줘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젊은이들 속에서 ‘옛날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집회에 나온 정신대 할머니들의 증언에 눈물짓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해야 할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징용 피해자들과 정신대 할머니들의 증언을 비디오에 담아 보자.”

“피해자들과 그 자손들의 사연을 책으로 엮어내면 어떨까?”


“책과 비디오를 잘 만들어서 역사수업 보조교재로 나눠주면 좋을 텐데.”

아이들 사이에서 쏟아져나온 제안이다. 한껏 치솟은 일본에 대한 분노는 ‘우리안의 책임’을 되돌아보며 한 단계 더 성숙해졌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친일문제를 통해 ‘과연 우리의 책임은 없었는가?’를 반성하게 된 것이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문제, 이주노동자 차별 등을 돌아보며 부끄러운 우리의 오늘도 인식하게 됐다.

지난 10월, 일본인 교사와 만남은 한-일관계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또다른 계기가 되었다. 일본 안에서 태평양 전쟁 희생자를 돕는 그들을 통해 “일본인들이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내친 김에 올 겨울방학에는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다. 일본에 남아 있는 징용·징병 피해자들도 만나고, 일본 학생들과 함께 ‘한일역사 공동수업’도 가진다. 체류 기간 동안, 일본 학생들 집에 민박을 하며 생활 속의 공감대도 넓힌다. 어느새 13명의 중경고 역사탐구반 아이들은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감정적인 반일을 넘어, 한-일관계의 미래를 여는 디딤돌로 자라고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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