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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에너지 공룡’을 잡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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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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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에너지 공룡’ 엔론을 죽였는가?”

미국 경제주간지 <포춘>의 세계 500대 기업에서 18위, 시가총액만도 600억달러(78조원)에 이르던 세계 최대 에너지기업 엔론그룹이 12월2일(현지시각)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회사 회장 케네스 레이(59)는 엔론이 저지른 분식회계와 돈놀이의 실패, 부당 내부자거래의 장본인으로 지목받으며, 세간의 비난을 한몸에 사고 있다.

레이의 지휘 아래 있던 엔론은 지난 97년∼올해 봄 사이에 순이익에서 5억6800만달러를 부풀렸고, 부채에서는 76억2800만달러를 줄였다. 부실기업을 사들인 뒤 계열사에 떠넘기면서 본 손실을 재무제표에 올리지 않았고, 파생상품 투자를 벌이다 10억달러의 손실을 보고도 주주총회에서 얼버무려 주주들을 우롱했다.

투자자들은 엔론과 레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더욱이 레이는 회사가 속으로 곪고 있던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사이 부시 정부의 친에너지기업 정책을 등에 업고 엔론의 주가가 치솟자 스톡옵션을 행사해 1억달러 이상을 챙긴 것으로 드러나 투자자들의 분노를 더 일렁이게 했다.

그러나 레이는 휴스턴의 에너지 수송업체였던 엔론을 지난 85년 휴스턴천연가스 등과 합병해 세계 최대 에너지기업으로 일궈낸 인물이기도 하다. 엔론은 그해 가스판매에 대한 규제가 풀리자 가스 공급업체와 생산업체 사이에서 중개상 구실을 하면서 성장했다. 90년대 초에는 전력판매에도 뛰어들었고, 인터넷 열풍을 등에 업고 통신대역판매 사업에도 손을 뻗쳤다.

레이는 ‘신개념의 경영인’으로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워싱턴 정계에도 폭넓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지난해 미국 대선 때 엔론의 이름으로 조지 부시 캠프에 수천만달러를 헌금해 환경보호를 위한 발전소와 정유소의 건설 규제를 푸는 데 성공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엔론의 부실과 분식회계를 적발하자, 레이는 경쟁자였던 다이너지와 합병을 통해 자신의 치부를 덮어보려고 했으나 결국 무위로 끝났다. 그는 앞으로 80년대 ‘정크본드의 황제’ 마이클 밀켄과 ‘인수합병의 거장’ 이반 부스키의 전철을 되밟아갈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집안의 숟가락까지 경매처분당했고, 끝내는 ‘콘에어’를 타야만 했다.

강남규 기자/ 한겨레 국제부 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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