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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호텔 뷔페 뒤 고단한 칼질

① 호텔 요리사의 칼: ‘셰프 전성시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 엉터리 연봉제 도입한 사 쪽과 싸우며 최고급 호텔 요리 만드는 일식요리사 고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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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18 20:35 수정 : 2015-08-2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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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노동 도구, 즉 연장을 갖고 있습니다. 연장은 일하는 사람들의 분신입니다. 연장에는 노동의 본질, 역사, 그리고 희로애락이 깃들어 있습니다. 노동하는 사람을 노동의 연장을 통해 가까이 들여다보는 ‘연장傳(전)’은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박점규가 글을 쓰고 후원회원 노순택이 사진을 찍습니다. 자신의 ‘연장’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트위터 계정  @ccomark , 전자우편   ccamcy@gmail.com)

흰 조리복 위에 남색 줄무늬 타이를 묶는다. 위생모를 쓰고 ‘앞치마 휘날리며’ 주방문을 연다. 서울 명동 세종호텔 일식요리사 고진수(42)씨의 출근이다. 조리대에서 회칼을 꺼낸다. 칼날을 살피고 숫돌을 꺼내 칼을 간다. 식탁 위로 신선한 생선이 올라온다. 연어, 농어, 점성어, 참치를 손질한다. 예리한 칼날이 생선 표면을 스칠 때마다 그의 눈이 빛난다. 손님 접시에 오를 생선회의 쫄깃한 식감을 결정하는 순간, 18년 경력 요리사도 긴장한다.

초밥에 쓸 새우와 오징어, 생선을 손질하고 홍어삼합과 초계탕을 준비한다. ‘쿨 음식’(찬 음식 요리) 준비가 다 되어갈 무렵 점심시간이 끝났다. 뷔페를 철수하고 그릇을 치운다. 새벽 6시에 출근한 오전조 조리사들은 퇴근을 준비하고, 잠시 숨을 돌린 그는 ‘핫 음식’(불을 사용하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심해 생선 메로를 해체해 양념구이를 준비하고 단호박찜과 훈제오리를 만든다. 화기가 주방을 휘감는다. 저녁 6시 뷔페 시간이 다가오면 손놀림은 더욱 빨라진다. 주방과 뷔페식당을 쉴 새 없이 오간다. 음식을 세팅하고 즉석 코너를 준비한다. 지난 8월2일 일요일 밤. 서울 명동의 야경을 배경으로 일품요리를 기대하며 뷔페를 예약한 100명의 손님들을 위한 요리 준비가 모두 끝났다.

다음날 아침까지 살아 있게 하는 칼질

접시를 든 가족, 연인, 아이들이 코너를 순회한다. 진수씨가 회칼을 든다. 얼음물에 담근 손으로 점성어를 쥐고 회를 뜨기 시작한다. 숨이 멎은 듯 적막감이 감돈다. 바깥썰기와 안쪽썰기에 따라 생선회 색깔과 모양이 바뀐다. 밥을 든 왼손, 회를 든 오른손이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각양각색의 초밥이 손님 접시 위에 오른다.

그는 보통 네 종류의 칼을 쓴다. 큰 데바칼로 생선의 목을 치고 작은 데바로 뼈와 살을 바르고 일명 ‘사시미(생선회)칼’로 회를 뜬다. 한식요리는 채소칼을 사용한다. 최고급 요리인 복어는 칼날이 얇고 칼끝이 납작한 복어회칼을 쓴다.

“가장 중요한 건 활어의 신경을 살아 있게 하는 거예요. 잘 갈린 날카로운 칼로 섬세하게 작업이 이루어지면 다음날 아침까지도 생선의 신경이 살아 있어 식감이 좋습니다.”


요리사에게 칼은 생명이다. 데바칼은 거친 숫돌, 회칼은 고운 숫돌로 갈아서 날을 세운다. 고운 숫돌은 가운데가 오목하게 파이지 않게 거친 숫돌로 갈아 평평함을 유지한다. 스테인리스강과 달리 탄소강 재질의 회칼은 녹이 잘 슨다. 물기를 깔끔하게 제거하고 별도의 칼집에 보관한다.

지금 진수씨의 보물 1호는 단골손님이 선물한 것이다. 10년 전이었다. 한국에 올 때 늘 세종호텔에 묵었던 재일동포 세키구치상은 진수씨가 만든 해산물 요리를 즐겼다. 일식당 조리대 앞에 앉아 요리사와 얘기를 나누길 좋아했다. 명동에서 맥주를 함께 마시기도 했다. 어느 날 그가 선물을 건넸다. 일본에서 사온 회칼이었다.

“선배들이 데바칼로 생선 목 치고 비늘 제거하기, 탕거리 만들기, 초밥 쥐기를 거쳐 사시미를 제대로 잡기까지 10년을 배워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면 칼 한 자루 들고 어디를 가도 먹고산다고 했죠.”

하루 광어 100마리, 우럭 250마리를 잡으며

그가 칼을 잡은 지도 18년이 흘렀다. 그의 고향은 박정희의 도시 경상북도 구미다. 종갓집 맏며느리인 어머니는 아들을 부엌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반도체를 만드는 LG실트론 구미공장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지내던 그를 요리의 세계로 유혹한 건 어느 작은 식당이었다. 고향 인근 왜관의 명동칼국수에서 맛본 만두와 김치 맛이 그의 미각을 사로잡았다. 그길로 회사를 그만뒀다. 명동교자 본점의 오픈 멤버였던 가게 사장님에게 월급 대신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매달렸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 1년을 월급 한 푼 없는, 요즘 말로 ‘열정 페이’로 살았다.

배운 기술로 어쭙잖게 식당을 차렸다가 2년 만에 쫄딱 말아먹고 고향을 떠난 그는 요리사 친구의 소개로 우동 전문점과 일식집에서 일하면서 일식의 매력에 빠졌다. 하지만 경험이 짧은 요리사에게 회칼을 만질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올림픽대교 북단의 대형 음식점으로 옮겼다. 하루에 광어 100마리, 우럭 250마리를 잡으며 기술을 갈고닦았다. 2001년 11월 세종호텔에 들어와 일식당 ‘후지야’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식요리사와 복어요리 자격증을 땄고, 2년6개월 만에 정규직이 됐다.

숙박음식점업 비정규직 비율 83%

먹는 방송(먹방)에서 요리하는 방송(쿡방)까지 요리사(셰프) 전성시대다. 방송 화면을 평정한 무림의 고수들이 연장통을 열어 칼을 꺼내들고 시청자에게 요리의 신세계를 시연한다. 불과 몇 년 사이 상전벽해다. 2013년 개봉한 영화 <족구왕>에서 주인공이 다니는 식품영양학과는 ‘찌질한’ 남자들이 전공을 포기하고 공무원시험 공부를 하는 학과였다. 지금 호텔조리, 외식조리, 푸드스타일리스트, 식공간연출 등 조리 관련 학과는 인기 학과다. 한국조리학회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조리학과는 36곳, 2년제 전문대에는 120곳이나 된다. 요리 전문 고등학교와 직업전문학교, 사이버대학까지 합하면 200곳이 넘는다. 지난해 경기대 외식·조리학과의 경쟁률은 30 대 1, 경희대 관광학부는 19 대 1이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업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요리사가 중학교 여학생에게 4위, 남학생에게 5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요리사들의 삶은 화려하지 않다. 하루 10시간, 주 6일 노동에 월급은 최저임금이고 10년이 지나도 200만원을 넘기 힘들다. 5명 미만 사업장이 많아 요리업계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다. 요리사의 임금과 근로조건에 대한 실태 조사도 없다. 표준임금도, 요리사들을 대변하는 산업별노조도 없다. 그나마 호텔 요리사는 나은 편이지만 최근 비정규직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 호텔롯데는 비정규직 비율이 45%, 호텔신라는 49%라고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 지난 7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표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숙박음식점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131만 명 중에서 비정규직은 109만 명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무려 83%였다. 전 산업 중에서 비정규직 수가 도매소매업(110만 명) 다음으로 많았다.

“텔레비전에서 요리는 신나는 오락이며, 요리사는 늘 행복하게 비친다. 천만의 말씀이다. 요리사의 대다수는 여전히 실직 불안과 저임금, 기술 습득에 대한 부담, 치열한 경쟁의 고통을 안고 일한다.” 요리연구가 박찬일 셰프는 요리사가 고통스럽고 가장 취약한 직업이라고 말한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지만, 최악의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 요리사다.

오후 4시부터 1시간은 요리사들의 식사 시간이다. 식사 시간에도 주방에서 초밥을 만들고 생선을 삶아 건지고 설거지를 하고 있다. 5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일을 정리하고 6층 직원식당에서 밥에 달걀찜을 넣고 고추장을 비벼 허기진 배를 채운다. 후배 요리사 셋도 허겁지겁 식당에 들어와 찌개에 밥을 말아 입으로 밀어넣는다. 식판을 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 지하 로커룸으로 뛰어 내려가 이를 닦고 다시 2층 주방으로 향한다. 오늘 100인분 요리를 만든 노동자는 7명, 그중 펜추리(설거지하는 노동자)를 포함해 비정규직이 3명이다.

1978년 문을 연 세종호텔 ‘은하수’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급 한식 뷔페다. 호박죽 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여, 죽을 먹기 위해 은하수를 찾는 노부부도 있었다. 요리사들도 최고의 맛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호텔 경영자들의 관심은 돈이었다. 은하수를 ‘엘리제’로 개명하고, 요리사 수를 계속 줄여나갔다. 23명이 일하던 한식당 요리사는 15명으로 줄었고, 그중 7명이 비정규직이다. 은하수 주방장이었던 30년 경력의 한인선 셰프는 노조 활동으로 밉보여 출장 뷔페로 쫓겨났다. 일식당을 없애고 중식당을 만들어 11명이 일하던 식당은 주방장과 계약직 4명만 남았다.

연장·야간 수당까지 포함해 칼로 자른 연봉제

“사람이 없다보니 칼을 갈아야 하는 요리사가 청소와 설거지에 매달려야 해요. 시간에 쫓기다보면 음식을 미리 해둘 수밖에 없어요. 당연히 신선도와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진수씨가 20대 중반 젊은 요리사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대학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스타 셰프’를 꿈꾸며 하루 11시간, 휴일과 연말, 젊은 청춘을 고스란히 주방에서 보내고 있는 후배들의 월급은 연장근무를 모두 포함해 140만원 안팎이다.

매일 호텔에 들어오는 재료의 무게는 25kg이 넘는다. 냉동실까지 들고 나르는 일이 계속된다. 뷔페가 열리는 3시간 동안은 꼼짝없이 서서 일한다. 허리, 무릎, 손목에 치명적인 노동이다. 주방은 차갑고 뜨거운 것들로 가득하다. 냉동식품 얼음날에 베이고 끓는 기름에 데는 일도 흔하다. 몸 곳곳에 있는 화상의 흔적은 요리 노동의 고단함을 말없이 웅변한다.

밤 10시 퇴근 시간. 진수씨가 후배들을 위해 칼을 갈아놓는다. 일식 요리사들이 공용으로 쓰는 회칼은 2년이 지나면 낡아서 더 이상 쓸 수 없다. ‘셰프 전성시대’에 요리사의 신세가 공용 회칼보다 못한 것 같아 서글프다. 1인당 6만원이 넘는 최고급 요리를 만들면서 정작 자신은 5분 만에 국에 만 밥을 목구멍으로 밀어넣어야 하는, 요리사의 슬픈 노동이다.

최근 세종호텔은 연봉제를 도입해 연장·야간·휴일 수당을 모두 연봉에 포함시켰다. 2013년 4500만원이던 동료의 올해 연봉은 2992만원으로 30% 줄었다. 세종호텔 노조위원장인 고진수씨가 조합원들과 함께 매일 호텔 앞에서 싸우는 이유다.

지난 4월 서울 남영역 앞 허름한 호프집 주방에서 셰프복을 입은 진수씨가 칼을 잡았다. 대형 연어 한 마리가 작은 토막으로 분해됐다. 진수씨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을 위한 후원주점에서도 주방장이다. 평소 먹기 어려운 연어샐러드를 만들었다. 연어요리를 맛본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쌍용자동차, 코오롱,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후원주점의 주방장도 그였다. 오는 9월4일 투쟁 1천 일을 맞는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후원주점에서도 그는 칼을 든다. 고진수의 칼은 고단한 노동 넘어 연대의 도구로 진화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칼질이다.

기륭전자 후원주점의 요리사

퇴근한 진수씨가 아들 경빈이와 요리 방송을 본다. 진수씨는 아들이 아빠를 닮은 셰프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의 아내는 질색을 한다. 아내가 질색하지 않는 요리 노동, 그래서 진수씨는 오늘도 싸운다.

글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사진 노순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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