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류’ 열풍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문화가 일본의 그것보다 훨씬 건강하고 따뜻하며, 아름답기 때문이다. 일본이 주도하던 아시아의 대중문화를 한국이 대체해간다는 것은 아시아가 그만큼 건강하고 따뜻하며, 아름답게 변화해간다는 것을 뜻한다. 거듭된 우경화의 종국적 결과로 옹졸해질 대로 옹졸해진 일본문화에 비해서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뿜어내는 대중문화의 열기는 얼마나 개방적이고 발랄한가. 아시아는 일본의 복고주의적 퇴행과 폐쇄성 대신 한국 대중문화의 활기와 개방성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80년대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 오늘의 우리 대중문화가 발휘하고 있는 활기의 최대 공로자들이 80년대 세대라고 나는 확신한다. 군사독재와 권위주의문화의 토양 속에서는 결코 오늘의 우리 젊은 세대가 보여주는 폭발적인 활기가 출현할 수 없다. 불의에 대한 굴종과 권위에 대한 복종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건강하고 따뜻하며, 아름다운 문화는 태어나지 않는다. 권력에 편승해서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도록 강요하는 권위주의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옹호했던 80년대 세대는 학교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억압에 대항해서 싸웠다. 가슴에 붙은 대학 배지를 스스로의 손으로 떼고 공장에 갈 수 있었던 80년대의 태내에서 문화적 엘리트주의를 대체하는 대중문화의 긍지가 태동했다. 현재 문학과 영화를 비롯한 문화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들의 압도적 다수가 80년대 세대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철옹성 같은 독재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 있었던 용기와 더불어 지금 존재하는 것이 전부라는 것을 결코 믿지 않았던 영혼의 자유로움을 80년대 세대들은 지니고 있었다. 재수없는 호칭 386 최루탄 속에서 눈물흘렸던, 수배에 쫓기며 새우잠을 잤던, 프레스기 앞에서 철야로 지친 눈을 부비며 노동했던, 냉기뿐인 감옥에서 겨울을 지냈던, 자신의 몸을 던져 싸웠던 80년대 세대들은 오늘의 ‘한류’ 열풍에서 마땅히 긍지를 지닐 자격이 있다. 한류? 그거 거의 내가 만들다시피한 거라고 오늘 저녁 술자리에서 호기 한번은 부려도 괜찮겠다. 비록 미국이 외국인을, 그것도 영토 밖 함정에서까지 군사재판을 해서 처형 가능하도록 하는 ‘애국법안’을 만든다는 거지 같은 소식이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제발 ‘386세대’라는 재수없는 호칭은 입에 담지 말자. 광주항쟁세대나 6월항쟁세대라는 호칭은 너무 센가. 그렇다면 ‘80세대’ ‘80년대 세대’까지 양보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80년대’의 정체성을 쏙 빼버리고 출생연대와 나이에 학번으로 대학 안과 밖을 울타리 친 ‘386세대’라는 모욕적 호칭에 동의하지는 말자. 80년대가 어떤 시대였으며 그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정체성이 무엇이었는가. 우리 사회가 일본처럼 퇴행해가지 않도록 해야 할 몫이 아직 80세대에 남아 있다. 방현석/ 소설가









